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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게 - 제144회 나오키상 수상작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달과 게 / 소설 / 미치오 슈스케 / 북폴리오 (2011)
미치오 슈스케. 잘 모르는 작가입니다. 일본에서 가장 권위있는 상 중 하나인 나오키상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 역시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저 저의 눈길을 끈 것은 장르문학의 대가였던 작가가 자꾸만 순수문학 쪽으로 관심의 외연을 넓히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소설, '달과 게'가 바로 그러한 순수문학을 향한 작가의 열망의 결실이라니 한번쯤 읽어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지요.
신이치. 하루야, 나루미, 쇼조, 스미에.
이 소설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의 이름입니다. 초등학생인 신이치가 주인공이며, 하루야와 나루미는 신이치의 친구입니다. 쇼조는 신이치의 할아버지, 스미에는 신이치의 엄마입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소설은 철저히 주인공인 신이치의 시점에서 진행됩니다. 작가는 집요할 정도로 신이치의 내면을 파고 들고, 순전히 신이치의 의식의 변화에 따라 소설은 앞으로 나아갑니다. 3인칭을 사용하고 있지만 '신이치는'이라는 주어를 '나는'으로 바꾸어도 무방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1인칭에 가깝습니다.
병든 아빠 때문에 도시에서 살다가 시골로 전학 온 신이치는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왕따를 당합니다. 결국 아빠는 병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엄마인 스미에는 생계를 위해 일을 시작합니다. 할아버지 쇼조가 신이치를 챙기려 노력하지만, 신이치는 점점 학교는 물론이고 집에서도 외톨이가 되어갑니다. 이런 신이치가 유일하게 소통하는 대상은 비슷한 처지의 전학생 하루야 뿐입니다. 매일매일 학교가 끝나면 바닷가로 달려가 소라게를 잡아 불로 태우며 소원을 비는 것이 이 두 친구의 유일한 낙입니다. 그렇게 여느날처럼 하루야와 바닷가에서 노닐던 신이치는 낯선 남자의 자동차에 탄, 엄마로 보이는 여자를 보게 됩니다. 처음에는 긴가민가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신이치는 그 여자가 바로 엄마임을 확신하게 되고, 낯선 남자가 다름아닌 나루미의 아빠라는 사실까지 알게 되는데...
이처럼 이야기는 별게 없습니다. 초반부에 이 정도의 설정을 소화한 소설은 더 이상 플롯이랄게 없을 정도로 심심하게 흘러갑니다. 작가는 소설의 많은 부분을 신이치와 하루야, 그리고 나루미가 소라게를 잡아 키우는 과정을 묘사하는데 할애합니다. 묘사는 집요할 정도로 자세하고 치밀해서 읽는 이들이 마치 세 아이들의 옆에서 지켜보는 느낌이 들 정도이고, 그 사이사이 주인공 신이치가 하루야와 나루미를 상대로 느끼는 유치하고 치사한 감정들 또한 신이치의 내면을 도려내서 내보인 것처럼 적나라합니다.
이 소설의 묘미이자 미덕은 바로 이러한 신이치의 내면을 훔쳐보는데서 발생합니다. 너무나 치사하고 유치하지만 초등학생만이 느끼는 감정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신이치의 초조와 불안, 시기와 질투, 증오와 분노, 망설임과 비겁함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내면 깊숙이 간직하고 있는 보편적인 감정들입니다. 특히 자신보다 어른스럽고 의젓한 동성친구인 하루야에게 느끼는 열등감과 풋사랑의 상대인 나루미가 하루야를 바라보는 눈길에 질투심을 불태우는 부분에서 자신의 유년시절을 떠올리며 공감하지 않을 독자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이 정도의 감정은 다른 성장소설들에서도 익히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것들입니다. 이 소설이 가진 진정한 강점은 신이치가 느끼는 감정들이 단순히 유년시절 누구나 겪는 성장통의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입니다. 신이치의 내면은 아이의 것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황폐하며 시간이 갈수록 그 정도는 심해져만 갑니다. 급기야 저 정도로 무너진 영혼으로 어떻게 삶을 계속 영위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신이치는 위태로워 보입니다. 이러한 신이치의 불안과 피폐는 물론 아빠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를 둘러싼 인물들과의 비정상적인 관계 속에서 그 상태가 더욱 악화되고 만 것이지요.
아이는 아이대로, 그리고 어른은 또 어른대로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상처를 안고 있고 그 내상을 어떻게든 견디려 애쓰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습니다. 신이치는 아빠의 죽음과 엄마의 (외도라고 할 수 없는) 외도 때문에, 하루야는 아빠의 폭력 때문에, 나루미는 엄마를 죽음으로 몰고 간 쇼조를 향한 증오와 아빠의 (역시 외도라고 할 수 없는) 외도 때문에 불안해하고 힘들어 합니다. 또한 어른인 쇼조는 자신 때문에 나루미의 엄마가 죽었다고 자책하고 괴로워하며, 신이치의 엄마인 스미에는 이 소설에서 가장 멀쩡해 보이고 꿋꿋해 보이지만 실상은 남편의 죽음의 여파에서 가장 자유롭지 못하며 도덕적으로 사실 그렇게 부끄러워 할 일이 아님에도 새로운 인연과의 만남에 조심스러워하며 괴로워 합니다.
신이치는 이렇게 상처투성이 인물들에 둘러싸여 정상적인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한 채 고립되어 갑니다. 유일한 소통의 대상이었던 쇼조마저 상처받은 나약한 인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는 아예 마음을 닫아버립니다. 소통을 위해 노력할수록 서로를 할키고 미워하며 되려 상처는 더욱 커지고 덧나기만 하니 신이치가 할 수 있는 일은 입을 다물고 철저히 홀로 견디는 것 뿐입니다.
이 순간, 작가는 신이치의 내면에 깃들어 있는 불안과 걱정들을 토로하고 잠재적으로는 소통할 수 있는 매개체로 소라게를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소라게를 태우며 소원을 빌면 그것이 이루어진다는 설정과 일견 아이같은 순진함으로 그걸 진지하게 믿으며 진짜로 소원을 비는 신이치와 하루야. 두 사람은 자신의 소원을 소리내어 말하지 않지만 각자의 소원이 무엇이었는지 충분히 짐작하며 서로의 처지와 상황을 연민하고 동정합니다. 그렇게 닫혀있던 세상이 열리자 신이치는 하루야와의 진심어린 소통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구원할 수 있다는 망상을 갖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드디어 자신의 소원을 하루야가 대신 이루어주리라 믿어의심치 않으며 마지막 소원을 소리내어 빌게 됩니다. 12살짜리 어린아이이기에 생각할 수 있지만 그래서 더욱 더 끔찍한, 소원을 말입니다.
한 편의 이야기란 결국 그 이야기를 지은이가 만들어낸 세계의 총체입니다. 소설은 특히 그러한 세계의 '완성도'가 다른 어떤 매체보다 더 공고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공고한 세계를 건설한 소설가의 작품을 읽다보면, 이 사람의 세계에서는 내가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겠구나, 하며 안심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달과 게'는 그러한 안도의 마음이 언제 깨어질까 점차 조마조마해지는 소설입니다. 분명히 걱정했던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 안온한 세계라고 확신했었음에도 뒤로 갈수록 그러한 믿음이 부서지며 마음을 졸이게 되는 것입니다. 안온하고 평화로운 세계에서 더없이 위험하고 무서운 세계로의 돌변. 작가는 신이치라는 12살 어린아이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지옥도를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절대 알고 싶어하지도 않고 인정하고 싶지도 않는 나약한 인간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하고, 지옥은 마음으로부터 옵니다. 세상은 비정하고 인간은 나약합니다. 그렇다면 희망은...
희망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