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에 한번 <주간경향> '만화로 본 세상' 코너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습니다. 올해부터 시작했는데 아직 알라딘서재에는 한편도 옮겨두지 않았네요. 이제 하나씩 옮겨둘까 합니다. 시작은 최근에 오사 게렌발의 <7층>으로 쓴 글입니다.


(지인이 찍어서 보내준 출간본 사진)

(인터넷판에서도 볼 수 있지만, 이 서재 포스팅 버전으로 봐주시길 바랍니다.)



"폭력의 연애를 끊고 ‘세상 밖’으로 나와라"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지만... 이 제목은 제가 하려던 이야기와는 결이 전혀 다릅니다. 칼럼 제목을 데스크에서 바꾸는 일은 일상다반사라 그러려니 하는데요, 이번 칼럼 제목과 소제목은 좀 많이 이상해서 여기 서재에서라도 제가 붙인 제목이 아니라고 해명을 좀 해둬야겠다 싶네요. 번거로우시더라도 여기 이 글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송고 후에 본문도 약간 수정했습니다.) 글을 좀더 깔끔하게 쓰지 못해 데스크에서 오해한 걸 거예요. 제가 부족한 탓입니다. "재건의 고된 작업"을 시작해야 할/지금도 경험하고 있는 희생자들과, 또 '우리'와 나누고 싶은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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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층>, 떠날 곳이 있다.

언젠가 TV에서 가수 김경호가 긴 머리 때문에 겪었던 고충을 이야기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지하철에서 여성으로 오인당해 추행을 당한 게 한두 번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소름 끼쳤겠네’ 정도의 감흥과 함께 웃어넘겼었다. 그런데 최근 페이스북에서 다른 머리 긴 남성의 성추행 경험담을 읽을 때는 감흥이 전혀 달랐다. 여성으로 오인된 남성이 그런 불쾌한 경험을 여러 차례 겪었다는 것은, 여성들이야말로 그처럼 잦은 성추행을 경험하고 있다는 뜻이 아닌가. 예전과 달리 거기까지 내 생각이 미쳤던 것은 글 자체의 초점이 거기 있었던 덕도 있지만 최근 들어 여성의 경험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 기회가 늘어나고 있는 데 이유가 있다. ‘나는 페미니스트다’ 해시태그, ‘메르스 갤러리’ 사태 등등 여성들의 목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리는 요즘이다. 그만큼 남성인 내가 낯섦 속에서 얻는 깨달음도 크다.

깨달음은 곧 놀라움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것, 모르고 있던 것이 정말 많았다. 남성인 나의 경험과 대조해보니 더 놀라웠다. 여성들이 경험하는 폭력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흔한데 반해, 나는 비슷한 경험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나는 택시 기사에게 옷을 왜 그렇게 입었냐고 핀잔을 들어본 경험이 없다. 차를 직접 몰더라도 ‘운전 못하면 집에나 있으라’는 식의 폭언을 들은 적도 없다. 대중교통에서 누가 내 엉덩이를 만져서 소스라쳤던 경험도 없으며, 어두운 골목길에서 성폭행을 당할까봐 무서웠던 적도 없다. 그러니 그런 불쾌한 경험을 하고서, 지인에게 “옷을 그렇게 입으니 그런 일을 당하지” 따위의 헛소리를 듣고 말문이 막힌 적도 없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최근 지속적으로 공론화가 이어지고 있는 ‘데이트 폭력’ 사례들에서처럼, 애인이나 배우자에게 맞아본 적도 없다.

그러니 나는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게 되었을 뿐, 여성이 경험하는 현실이나 그 감정을 안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저 모르는 일에 대해 함부로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문제를 제기하는 여성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뿐이다. 그러면서도 “그 어떤 여성도 데이트 폭력에 희생당하지 않기”를 바란다던 한 피해자 여성의 바람이 이루어지도록 돕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그러기 위해 마침 만화를 조금 더 아는 사람으로서 ‘우리’에게 건넬 작품이 있다.

(오사 게렌발, <7층>, 우리나비)


스웨덴 작가 오사 게렌발의 <7층>은 실화다. 작가가 대학 시절 겪었던 고통스런 기억을 담아낸 이 이야기는 폭력에 물든 연애 경험이 어떻게 오사를 바꾸어 가는지, 그리고 그 가운데 무엇이 이 고통스러운 연애를 끊을 수 없게 만드는지를 충실하게 묘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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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는 원래 ‘블랙 오사’라고 불릴 만큼 검정색을 좋아하는 여성이었다. 옷도 눈화장도 머리도 모두 까맣게 치장한 오사였지만 학교에서 뭇사람의 환심을 사는 ‘멋진’ 닐과 사귀게 되면서부터 그녀는 표백되어간다. 그것이 닐이 원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둘만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닐이 원하는 대로, 그의 마음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 오사는 친구들과 점점 더 멀어진다. “이제부터 너와 나만 생각해.” 이 달콤한 사랑의 말이 사실은 독점욕의 발로임을 독자는 금세 지각할 수 있다. 하지만 작품 속의 오사는 그것이 사랑이라고 믿는다. 그렇기에 닐 외에는 아무도 없으며 온 자아를 닐의 시선에 가둔 오사는 외양과 정신 모두 더 이상 오사가 아니게 되었다. “넌 변해야 한다고!” 닐이 말했기 때문이다. 검정색과 좋아하던 음반과 추억이 깃든 물건들까지 모두 버리고서, 오사는 닐을 만나기 위해 이전의 자신과 헤어져야 했고 사회에서도 멀어져야만 했다.

“닐은 내가 변하도록 도왔고 그렇게 변해감으로써 나는 마침내 그에게 인정받는 연인이 될 수 있었다.” 이제 남자친구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오사에게, 닐은 더욱더 뒤틀린 사랑을 행사한다. 오사의 자그마한 몸짓 하나, 숨소리 하나가 모두 닐의 질투심을 자극했다. 텔레비전을 보다가 한숨을 한번 쉬었을 뿐인데도 닐은 오사가 그 순간 화면에 등장한 남자를 원한다고 생각한다. “더러운 년!” 오사는 닐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소리 내지 않고 숨 쉬는 법을 터득”해야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오사의 염색한 검은 머리가 자랄수록, 그래서 검지 않은 머리가 더 길어져갈수록 닐의 폭력도 더 심해져만 갔다. “창녀”라는 심한 욕설에 오사가 참지 못하고 발끈하자 드디어 닐은, 오사를, 때렸다.

“규정1: 그가 날 때린다면 그를 떠날 것. 규정2: 그가 날 때린다면 그를 떠날 것.” 오사도 안다. 하지만 떠날 곳이 없다. 모든 게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하도록 “길들여져” 버린 오사는, 모든 사회적 관계를 끊어낸 오사는, 오직 생각만 할 수 있을 뿐 실제로 떠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사는 그렇게 믿는다. 바깥은 없다. 넌 “역겨워.” 넌 “끔찍해.” 넌 “저속해.” 닐의 말대로 자신을 바라보게 된 오사와 “왜 자꾸 나를 돌게 해? 날 미치게 만들지 말라고!!!” 말하며 무너져가는 오사의 목을 더 세차게 조르는 닐만이 있다. 이것은 사랑이 아니다. 하지만 오사에겐 그것밖에는 없다. 떠날 곳이란, 없다.

이렇게 끔찍한 연애가 어떻게 끝나게 되는지는 길게 말하지 않으려 한다. 끔찍한 연애가 그만큼 끔찍한 논리와 합리화에 의해 지속되었다면, 단절은 정말 갑작스럽게 기적처럼 비논리적으로 찾아왔기 때문이다. 이것은 직접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어쨌거나 나는 여기까지 읽으며 지금까지 공개된 많은 데이트 폭력의 주인공들이 말하지 않은 것들을 아주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피해 여성들이 이별을 선택하기 어려웠던 이유, 공론화를 결심하기 어려웠던 이유가 <7층> 안에 빼곡했다. 그들 스스로도 돌아보며 ‘바보 같았다’고 말하듯, ‘사랑’의 폭력 속에서 피해자를 붙잡아버린 주박은 경험해보지 않은 이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하다. 이것을 나는 <7층>의 서사와 이미지 속에서 겨우 짐작할 수 있었다. 이것을 아는 것이 ‘우리’에게 중요하다.

‘우리’에게 다시금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이다. 기적처럼 없다고 생각했던 바깥으로 나오자마자 오사는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된다. 그녀에게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고 생각했던 주변 사람들이, 남아있었다. 오사가 아버지와 여자 교수님에게 상황을 알리자 그들은 사려 깊고 신속하게 움직였다. 아버지는 오사를 구출해 주었고, 교수님은 학교 내에서 닐과 만날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하고 오사에게 병원에 가고 경찰에 신고할 것을 권유한다. 의사의 진료도 경찰의 조사도, 이후의 재판도 모두 오사를 제대로 돕는다. 그렇게 일단락이 나고 오사는 샅샅이 흩어진 스스로를 주워 모은다. 재건은 너무나도 어렵지만, 그녀는 혼자가 아니다. 없다고 생각했던 떠날 곳과 함께, 그녀는 재건의 작업들을 이어나간다. 그리고 이 작품, <7층>이 그 재건의 마지막 단계였다. 그래야 도처에 널린 닐과 마주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경험을 하며 갇혀있는 이들에게 바깥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 창문 밖의 신호가 바로 <7층>이다. 뛰어내릴까를 고민했던 바로 그 자리에서, 오사는 열어 보인다. 그녀들이, 떠나갈 바깥을.

‘떠날 곳이 있다.’ 이 말을 거짓말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그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2015.6.26 송고

2015.7.7 <주간경향> 1133호


(오사 게렌발, <7층>, 우리나비)

(오사 게렌발, <7층>, 우리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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