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필, <검둥이 이야기> 1, 2, 길찾기, 2013

나는 윤필이 <야옹이와 흰둥이>로 데뷔하며 웹툰 세계에 불어넣었던 새롭고 남다른 숨결을 잊을 수가 없다. 재미와 웃음 코드가 대세이던 시절, 윤필은 감동이라는 말로만은 설명되지 않을 어떤 감응을 작품 속에 담고 찾아왔다. 거의 유일하게 비슷한 감응을 선사하던 <신과 함께>의 주호민 작가가 그를 발견하고 트위터에서 추천했던 것은 어쩌면 필연이었을 것이다. <야옹이와 흰둥이>에 이어 <흰둥이>로 일하는 사람과 동물들의 삶을 착하면서도 정직한 시선 속에 담았던 그가 이번에는 <검둥이 이야기>로 돌아왔다. 이전 작품들보다 더 진지하고 더 아픈 감응을 촉발하지만 부담스럽지 않다. 더 깊고 긴밀해진 그림과 문장의 만남이, 또 이야기의 힘이 독자를 자기도 모르는 새 울게 만든다. 그리고 그것이 끝이 아니다. 그 눈물을 닦고 책장 너머로 시선을 돌리면 수많은 검둥이들이 환히 드러나 보인다. 내가 미처 보지 못하고 있었던 세계를 만나는 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검둥이 이야기>의 힘이다. 이 풍성한 만남을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레이 폭스, <한 사람>, 미메시스, 2013

이 특별한 만화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한 사람>(원제: One soul)은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독자를 감응케 한다. 맨 처음 작품을 펼치면 검은 칸들이 가득 차 있다. 의아함 속에 페이지를 넘기면 펼침면 좌우 18개의 구획된 칸 속에서 흰 점들이 피어난다. 생명이다. 그 각각의 생명이 살아가는 일생이 그 칸 안에서 이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독특한 방식으로 묘사되는 18개의 인생을 펼침면 안에서 한 눈에 조망하고, 또 페이지를 넘기며 그 성장사를 목도하는 것은 실로 놀라운 경험을 제공한다. 흡사 나의 전생과 후생을 한 눈에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때로는 신이 되어 인간세상을 내려다보는 것 같기도 하기 때문이다. 읽기 경험 자체도 특별하다. 최소 20회를 읽어야 온전한 이해가 가능한 형식이기 때문이다. 기존 만화의 문법을 뛰어넘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읽기의 방식까지 창출해낸 것이다. 물론 그만큼 낯설고 다소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그 낯섦이야 말로 기쁨이며, 그 낯섦을 넘어 작품을 조금씩 알아가다 보면 새로운 세계가 열릴 것이다. 



이희재, <낮은풍경>, 애니북스, 2013

나는 풍경 바라보기를 즐기지 않는다. 산과 바다가 주는 풍광은 숭고하지만, 내가 보고 겪고 살아야 할 것은 우리네 인간들의 삶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빅이슈>에 연재되고 있는 ‘빅판이 있는 풍경’ 코너는 새로웠다. 자연만이 아닌 사람이 담긴 풍경이어서다. 한국 만화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어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이희재 선생님의 풍경화첩, <낮은 풍경>도 그렇다. 자연만이 살아있는 경치로서의 풍경이 아니라, 사람과 문화가 살아있는 진짜 풍경이 그의 친숙하고 농익은 붓질 속에 담겨 있다. 그가 동료 원로 만화가들과 함께 미얀마와 중국 심양과 등을 여행하고서 남긴 풍경을 보다 보면 진짜 <꽃보다 할배>가 여기 있었구나 싶기도 하다. 작곡가 윤이상의 생가를 찾아가 남긴 꼭지는 묘하게 민족적이면서도 보편적이다. 국내의 풍경 인사동, 남대문, 부여 등등도 모두 사람과 건축물과 자연이 한데 담겨 인간을 드러낸다. 백미는 역시 촛불(2장)이다. 2008년 촛불의 자리에서 이 60대의 만화가가 포착한 시민들의 밝고 따뜻하며 진지한 표정들은, 실로 뜨겁다. 이 풍경, 이희재가 낮은 데서 그린 이 풍경 속에 발을 디딘 이후로, 나는 더 이상 풍경을 자연을 담는 낱말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빅판이 있는 풍경’에서도 이희재 작가의 꼭지를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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