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행물윤리위원회의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 

청소년 유해매체지정과 번복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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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10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El arte de volar) 한국 출간.


간윤 심의에서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청소년 유해매체로 결정


도서출판 길찾기, 간윤 결정에 항의 시작. 페이스북 페이지를 거점으로 관련한 비판 글을 꾸준히 게시하고 소식 알림. facebook.com/synctoon


여성가족부에서 심의 결정 고시.(일주일 후 814일 자로 실효 고시)


실효 발생에 앞서 도서출판 길찾기, 심의에 대한 항의의 의미로 서점가에 일시품절 요청.


위키트리 소셜방송 <박경신의 진실리포트>에서 박경신 교수, 박주민 변호사와 함께 청소년유해매체 지정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자가당착 전철 밟나" 주제로 토론.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저자 안토니오 알타리바의 첫 연대 편지 수신.


실효 발생. 이 날을 기해 재심의 신청.


<한겨레신문>에서 스페인 예술만화, 한국선 청소년 유해물이라는 제목으로 보도. (이후 <프레시안>(817), <에이코믹스>(819), <중앙일보>(823), <주간경향>(92, 인터넷판 830)을 비롯해 후속기사와 칼럼이 이어짐.)


알타리바 작가의 두 번째 연대 편지 수신.


간행물윤리위원회 재심의.


간윤, “청소년 유해간행물이 아닌 것으로 변경 결정 공문 발송.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초판 2쇄 발행. 판매 재개.







출판사 직원으로서, 또 만화 평론가로서 조금 고생은 했지만 결과가 좋아서 다행입니다.


2쇄 특별 선물 노트에 포함하고 싶었으나 조금 오버인 것 같아서 뺐던 일지를, 서재에라도 기억할 수 있도록 담아 둡니다.


이 상황과 관련해 에이코믹스에 기고했던 글도 약간 수정해서 옮겨둡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제도 자체에 대한 논의가 일어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알라디너 분들도 서재를 통해 이 사건을 많이 알려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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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출판사 직원/만화비평가의 고백


(에이코믹스에서 게재한 제목은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은 왜 청소년유해매체가 되었나: 어느 출판사 직원/만화비평가의 고백")




지난 수요일, 드디어 재심 청구를 마무리했다. 이제 약 2주 후에는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이 한국에서 쓴 ‘청소년 유해물’이라는 오명이 벗겨지길 기대한다. 벗겨지지 않으면 긴 싸움이 될 거다. 행정소송도 간다. 그것만도 6개월에서 1년은 걸릴 테니, 내가 길찾기에서 퇴사하기 전에 끝을 못 볼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1년 예정으로 작년 1월부터 길찾기에서 일했다. 길찾기에서 발행하던 잡지 ‘싱크SYNC’에 만화비평을 기고한 인연을 이어가다, 작년 석사 과정을 끝내고 여유가 생긴 참에 싱크 및 색깔있는책들 업무를 맡기로 하고 월급쟁이가 되었다. 그러니까, 비평가가 외도를 하고 있는 중이지만, 대학원 공부와 글쓰기를 위해 애초 예정대로 2월까지만 길찾기에서 일할 것이다.

모양새는 좀 우스우나, 일은 즐겁다. 비평가의 눈으로 보아 훌륭한 작품을 알리는 이중 정체성의 그럴싸한 통합을 매 작품마다 즐기고 있다. 입사해 바로 내놓은 <체르노빌의 봄>(엠마늬엘 르파주)과 다음 작품인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 모두 그랬다. 진지하고 깊이 있는 만화가 비빌 구석이 적은 한국 시장에서 초판을 소화했고 좋은 평가를 얻었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가장 기쁜 건, 간단히 말해 ‘작품과 독자가 만나는 바로 그 일’에 내가 일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 내 비평과 연구의 관심은 작품과 독자의 만남에 있다. 작가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좋은 작품이 그 작품의 매력과 가치를 알아보는 눈 밝은 독자에게 읽히는 만남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또 좋은 작품을 접한 독자가 작품의 의미를 포함하고 넘어서는 이해와 깨달음을 이루어내는 만남은 얼마나 감동적인가. 조금 오글거리게 표현했지만, 이것이 바로 내가 글을 통해 계속해서 살피고 모색하고 싶은 만남들이다. 그런데 이런 만남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좋은 작품이라도 묻히기 쉽고 눈 밝은 독자가 좋은 책을 발견하는 일 역시 쉽지 않다.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상품으로 유통되는 작품과, 상품으로 작품을 만나지 않기가 더 어려운 소비자-독자들. 때로 비평가는 그 사이에서 둘 사이를 중매해야 한다. 바로 에이코믹스처럼.

그런데 이 일을 ‘글’로만 하기도 어렵다.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이 바로 그렇다. 제도적 문제로 인해,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이 독자와 만나는 일이 어려워졌다. 나는 글로도 만남을 돕지만, 정치적으로 제도적으로 그 과정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또 개선할 수 있도록 뛰고 있다. 그냥 비평가였다면 글로 지원하고 응원하는 데서 끝났을지 모르지만, 마침 이 책을 펴낸 출판사 직원인 까닭에 비평가보다는 조금 더 발로 뛴다. 그리고, 비평가인 까닭에 직원 치고는 회사의 이익보다 더 큰 것을 바라보게 되고 말았다.

이와 관련하여, 내가 이 사건에서 각별히 주목하고 있는 것을 강조하며 이 산만한 글의 중심을 잡아볼까 한다. 간단히 말해 ‘청소년 유해매체’라는 낙인과 실질적 효과가 문제다. 18금 영화와 달리 서적은 간행물윤리위원회(이하 간윤)의 결정과 여성가족부의 고시를 통해 ‘청소년 유해매체’로 유통된다. 이때 그냥 ‘청불’(청소년 구독/관람 불가)이 아니라 ‘청유물’(청소년 유해물)임을 명확히 하는 것은 중요하다. 영상물등급위원회가 영화의 심의를 전담하고서 최근 3년간 18금 영화는 더 이상 청유물로 여가부의 고시를 받고 있지 않기에 ‘청불’이다. 하지만 만화를 포함한 서적은 ‘청유물’로 고시되면 ’19세 미만 구독 불가’ 표시를 붙임과 함께 ‘청유물’로 유통된다. 포털에서 18금 영화와 19금 도서를 하나씩 검색해 보면 이게 어떤 차이인지 알 수 있다. 18금 영화는 ‘성인만 보는 영화’이지만 19금 도서는 ‘청소년에게 유해한 도서’라는 것이 명백히, 반복적으로 알려진다.

결국 출판물에서는 청유물이라는 공식적인 낙인이 여러 방식으로 독자와 작품의 만남을 방해하는 실질적인 일들이 (영화보다 더 심하게) 일어난다. 이 사안에 한해 문제를 주체별로 간단히 나누면, 1) 작가 창작에서의 자기검열 효과, 2) 출판 및 유통에서의 곤궁, 3) 독자가 받는 피해까지 크게 세 가지 방향이다. 앞서 밝혔듯 내 이중 정체성의 관심은 2)와 3) 사이에 있으니 이를 중심으로 정리해 보자. 다음은 ‘유해’라는 단어가 주는 그 불쾌한 느낌을 필두로 해서 시작되는 방해의 목록 일부다.

 

1. 온라인에서 성인 인증을 해야 작품에 관한 ‘정보’를 열람할 수 있다. 인증 없이는 표지도 보기 어렵고 리뷰에조차 접근하기 어렵다. 성인 인증은 로그인만으로 끝나지 않고 아이핀 인증이나 전화 인증을 거쳐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 절차를 다 거치고서야 구매를 할지 말지 검토할 기준이 되는 책의 정보를 볼 수 있다.

2. 오프라인 서점에서는 ‘청유물’끼리 꽂혀있어야 하며 이 서가는 서점 직원의 감시·감독이 용이한 곳이어야 한다. 청소년이 이용할 수 있는 서적과 같이 진열하는 건 불법이다. 대형서점의 경우 검색대에서 청유물 작품이 어디 꽂혀있나 검색하면 청유물이라서 알려줄 수 없다며 직원에게 문의해 보라는 결과가 뜬다. 직접 문의해 본 적은 없으나, ‘민증을 까야’ 하는 상황이 일어난다고 한다.

참고: https://twitter.com/sync_comics/status/368210396437442560

3. 앞뒤 표지 우상단에 ’19세 미만 구독 불가’라는 결코 예쁘지 않은 빨간 딱지를 붙여야 한다.

4. 누구나 볼 수 있는 공간인 한 어디에서도 광고를 할 수 없다. 그렇지 않은 공간이 대체 어디지?

(위 사항들에 대해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가상의 일화들로 정리해 둔 바 있다. 참고:http://goo.gl/bCiU1U)

  

지금까지 나열한 것은 물론 청소년보호법 상 청유물에 대한 청소년의 접근을 제한하기 위한 조치다. 하지만 이는 성인 독자의 접근 역시도 제한한다. 귀찮게 만들고 꺼림칙하게 만들며 민망하게 만들며 알기 어렵게 만든다. 또 우리는 예쁜 책을 가질 권리가 있는데, 이 빨간 딱지가 붙은 책은 예쁠 수가 없다. 지하철에서 떳떳이 읽기도 어렵다. 청소년 보호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왜 그것을 위해 성인들이 작품을 훼손당한 채로 만나야 한단 말인가. 게다가, 광고가 없는데다 서가도 따로 구분되어 있는 책을 무슨 수로 만날 것인가. ‘청유물’로 지정된 대부분의 책들이 게토화 되고 매니아들의 정보망에 기대어 판매되고 있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청소년을 보호하면서도 성인 독자의 권리를 최소한으로 제한할 대안들이 많다는 걸 생각하면 현 제도는 정말 괴상하다. 이를테면 결제 과정에서만 성인 인증을 요구해도 된다. 어차피 청소년에게 유해한 내용은 비닐을 뜯고 나서야 볼 수 있다. 표지나 리뷰 등 정보 열람은 자유롭게 하되 그 정보에 유해성이 있다면 방송통신심의위 관련법으로 차단하면 된다. 영화의 경우가 비슷한 방식으로 처리되는 예다.(영화와 포스터, 광고가 구분되어 다른 법의 적용을 받는다.) 어차피 청소년은 구입을 못하므로 표지에 빨간 딱지를 그렇게 드러나게 붙이지 않아도 된다. 서점 직원들이나 원하는 사람이 파악할 수 있도록 ISBN 옆에 작게 표시해도 무방한 일이다. 지금 제안한 대안들에 부작용이 있을까? 오히려 빨간 딱지야말로 ‘이거 야한 책이에요’라고 광고하는 역할을 했던 부작용이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제 이런 방해를 받는 책이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이라는 점을 강조해 이야기할 때다. ‘청유물’ 지정을 받지 않았던 첫 3주간, 이 책은 이 책을 만나보고 싶어 하는 독자들과 만났다. 그간 조용히 팔려나간 1500부를 만난 분들은, 다 파악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트위터나 블로그 리뷰 등을 통해 볼 때 대부분 ‘아나키즘’에 관심이 있던 분들이다. 또 많은 분들이 평소 그래픽노블을 좋아하거나, 스페인 내전을 비롯 역사적 상황에 관심이 있거나, 혹은 수상 경력 및 추천인들의 면면과 우호적인 입소문을 통해 이 책을 만났다. 하지만 간윤의 결정과 출판사의 대응 방침이 알려진 이후로는 조금 결이 달라졌다. 출판사의 깡을 응원하는 의미로 구입하겠다는 독자도 나타났지만, 야한 장면이 있다는 데 혹한 독자나 품절된다니 일단 사놓겠다는 독자도 등장했다. 이후론 빨간 딱지가 붙을 지도 모르니 미리 딱지 없는 1쇄를 사둬야겠다고 판단한 분도 있는 것 같다. 이 분들과 작품의 만남이 좋게 이어지리라 믿고 싶지만, 뭔가 만남의 순간이 어그러져 있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색안경을 끼고 작품을 만나게 되는 상황을 간윤이 벌여놓았다. 출판을 진흥하겠다는 간윤이! (촘촘한 방해들로 인해 결국 만남이 성사되지 못한 분들도 많을 거다. 게다가 항의하는 의미로 출판사가 일시품절까지 걸었으니…) 

현재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은 재심의를 받고 있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재심의라는 과정을 통해 결정되는 것은 이 책 한 권의 등급일 뿐이다. 이 책이 ‘청유물’ 낙인을 벗어도, 심의의 ‘선’을 약간 뒤흔들 뿐 청유물에 대한 괴상한 제도는 그대로일 것이다. 정말 훌륭한데 심의위원 눈에 유해해 보이는 장면이 포함된 작품은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 이후에도 등장할 수 있다. 어쩌면 야하고 폭력적이면서 동시에 훌륭한 작품이 이미 ‘청유물’ 낙인으로 인해 독자와 널리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다른 작품들의 피해를 막고 복구하기 위해서라도 이 제도는 고쳐야 한다. 


한국의 독자분들과 작가분들 그리고 단체들의 협조와 행동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친구들’에게 제 애정 어린 마음을 전해주세요. 이번 일로 인해 한국에서의 표현의 자유가 좀 더 자유로워질 수만 있다면, 저희로서도 소중한 보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영원한 숙제인, 자유를 위한 싸움에 불을 지필 수 있게 되어서 하늘에 계신 저의 아버지도 기뻐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의 주인공 안토니오의 아들이자 작가인 알타리바 씨는 우리를 ‘친구’라고 불러주었다. 우리가 ‘자유를 위한 싸움’에 불을 지폈다고 말해주었다. 부끄럽지만, 또 아직 불씨뿐이지만, 확실히 이 싸움은 그냥 출판사가 부리는 꼬장이 아니라 그의 한국 친구들이 ‘표현의 자유’를 두고 벌이는 싸움으로 번져가고 있다. 특히, 우리가 사랑하는 ‘만화’를 위한 이 싸움에서, 제대로 이기려면 제도 자체를 문제 삼아야 한다. 이 기회에, 나는 해보려 한다. 또 이 기회에 많은 분들이 이 제도의 문제점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문제가 불거진다는 것은 문제 해결과 개선의 필요성을 호출하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사안이 심의의 선만이 아니라 제도까지도 문제화 할 수 있다면, 어느 이름 없는 비평가가 출판사 직원 생활을 하다 터진 사건으로 겪었던 고충은 그만큼 온전히 기쁨으로 변할 것이다. 제도적 문제를 고칠 이 기회를 제대로 잡아보고 싶다. 만화를 사랑하는 당신들과 함께.

  

-사족이지만, 덧붙이자면.

누가 어떻게 고쳐야 할까. 만화 연구가 김낙호가 제안했던 대안으로든, 박인하 교수가 제안한 등급 방향으로든, 만화 창작자와 출판인들이 나서서 고쳐야 할 문제다. (김낙호의 안은 주로 웹툰에 대한 것이지만 출간물 만화까지 포함할 수 있음. “업계공통 자율등급제 및 민관 혼합 조정위의 혼합 운용” –http://capcold.net/blog/8365 , http://capcold.net/blog/8211 , 박인하의 글은 출간 만화를 주 대상으로 하며 김낙호의 안과 큰 틀에서 같은 입장. ‘19금’에 대한 문제의식이 선명하다. –http://comixpark.pe.kr/130171499368 , http://comixpark.pe.kr/130173727856 ) 이에 더불어, 비평가는 싸움에 쓸 글을 내놓고 독자도 응원으로 힘을 보태 줄 일이다.

여기까지 얘기한 김에 마지막으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아청법이다. 만화에 관한 한, 이 법의 문제 역시도 작품과 독자의 만남을 무진장 방해하는 폐단이 클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화면 매체(즉, 애니메이션과 웹툰이 포함된다)의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에 아동·청소년 ‘표현물’ 문제 행위까지 포함한 것이 폐단의 가장 큰 부분이다. (자세한 내용은 서찬휘의 글 http://seochanhwe.com/192653319 과 김낙호의 글 http://capcold.net/blog/9202 을 참고하자.) 아청법은 해당 부분 때문에 거의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 급의 범죄예방 프로젝트가 될 것 같다. 할 얘기가 많지만 더 정리된 지면을 기약한다.

 

*지금까지 관련해 인용한 글들은 모두 만화 및 미디어 비평가의 글이다. 만화의 미래를 위한 그들의 노력, 그들의 글에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여 준다면 정말 고맙겠다. 이건 만화 비평가 겸 만화 애호가로서 하는 얘기다.

글. 조익상(만화비평가/길찾기 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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