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2년 전 오늘이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났던 날입니다. 핵폭탄만이 아닌, 원자력 발전의 위험성을 되새기게 된 이 날을 앞두고 SYNC를 출간하고 있는 길찾기 출판사에서 〈체르노빌의 봄〉과〈핵충이 나타났다〉를 함께 출간했습니다. 둘 다 좋은 책이지만, 마침 〈빅이슈〉에 〈체르노빌의 봄〉 소개 글을 써둔 것이 있어 먼저 공유합니다. 






후쿠시마 2주기, 체르노빌의 봄이 온다.

 

나는 만화가다. 문화예술을 통해 무언가 할 수 있다고 믿는 예술가 동료들과 함께 올 봄에 체르노빌에 가기로 했다. 프로젝트를 통한 수익금은 그곳의 피폭 아동들을 위해 쓰일 것이다. 하지만 가족들은 반대한다. 위험하니까. 내가 책을 읽어보아도 그곳의 방사능은 위험했고, 위험하며, 위험할 것이 명백하다. 얼마 전부터는 부담감 혹은 두려움 때문인지 손이 마비되어 그림을 그릴 수조차 없다. 가는 걸 포기할까도 생각했다. 어차피 나는 이 프로젝트에 그리 적합한 인물도 아니다. 내가 한 거라고는 핵을 장려하는 그림을 거절한 정도뿐이니까. 하지만 동료들은 보고 듣고 느낀 걸 이야기할 수 있으니 가자고 한다. 그림으로 그리지 못하고 이야기만 해야 한다니. 그래, 나도 진실을 보고 싶다. 위험을 무릅쓰고 보아야 할 어떤 것이 거기 있을 것만 같다. 이런 마음을 먹고 난 후, 손이 조금은 가벼워진 것 같다.

 

체르노빌의 봄서두를 1인칭으로 요약해보면 이렇다. 결국 작가 르파주는 20084월에 체르노빌에 갔다. 굳은 손으로라도 그리기 위해 목탄 등 가벼운 그림도구를 많이 챙겨갔지만, 체르노빌에서 그의 손은 거짓말처럼 풀렸다. 그 손으로 그는 그리고, 그리고, 또 그렸다.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을. 그려야 하는 것들과 그릴 수밖에 없는 것들을. 19864월 이후로 22년 동안 봄을 잃어버린 것으로만 보였던 체르노빌을.



 


그렇게 체르노빌을 담아낸 이 작품이 출간된 게 201211월이니, 무려 4년이 걸린 셈이다. 펼쳐서 그림만 보아도 4년이 걸려 마땅하다는 느낌이 온다. 칸마다에 들어있는 그림 하나하나가 전시회에 걸어도 손색없을 회화 작품이다. 때로는 목탄으로 때로는 수채로 때로는 연필 스케치로 또 페인트로 다양하게 그린 그림들이다. 만화의 본령이라 할 글과 그림의 합류, 칸과 칸의 배치와 조화도 놀라울 정도다. 이 만화를 보는 내내 눈동자는 그림의 한 구석도 놓치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움직이고 머물고 또 움직이게 된다. 그렇게 독자는 르파주와 함께 체르노빌에 간다. 방사능에 피폭당할 위험은 덜었지만, 그 방사능에 대한 두려움은 공유한 채로다. 그리고 르파주의 눈과 손을 통해 그가 목도한 재앙과 희망을 동시에 보고 느끼고 경험한다.





분명 체르노빌은 머나멀다. 하지만 재앙과 희망을 떠올리는 두 단어가 이 만화에서는 닿아있다. 함께 있기에 진정으로 의미를 토로한다. 게다가 우리는 2년 전 이맘때, 역시 봄에, 작은 바다 건너로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접했지 않는가. 그렇기에 우리는 조금이나마 안다. 올 봄의 후쿠시마는 3년 전의 후쿠시마와 같지 않을 것임을. 또 안다. 후쿠시마에서 봄을 앗아간 것이 무엇인지를. 따라서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체르노빌에 봄이 돌아온 것이 20여년만이라면, 그것은 또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르파주가 위험을 무릅쓰고 그려낸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 아직은 먼 훗날을 기약할 수밖에 없는 후쿠시마의 봄을 떠올리며, 또 월성과 고리, 밀양에 당연히 와야 할 봄을 잃지 않기를 바라며, '체르노빌의 봄'을 반가이, 두려움을 안고, 맞이한다.


조익상(@lit_er): er라는 필명으로 인문교양 만화잡지 SYNC에서 만화비평을 절찬리 시도하고 있다만화 추천이 취미이자 특기.






엠마뉘엘 르파주 Emmanuel Lepage 지음, 해바라기 프로젝트 옮김체르노빌의 봄, 길찾기,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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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안에 있는 추천의 말씀들을 추려 올려둡니다. 책내 서평들은 빼고, 탈핵의 메시지를 담아 이 책을 권하는 말씀들입니다.



죽은 고향도 고향이고 죽은 땅도 삶의 자리입니다.

꽃도 나무도 흙도 물도 모두가 적으로 변해버린 땅에서,

그럼에도 떠나지 못하고 그럼에도 희망하며 살아가는 체르노빌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을 비롯해 사랑하고 아끼던 모든 것들이 순식간에 버림받고 두려운 존재가 되었습니다만,

그 외롭고 처절한 죽음의 자리에 사는 그들에게도 웃음이 있습니다.

체르노빌 원전 재앙은 이 시대 인류가 저지른 최악의 범죄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외부와 단절되고 격리된 마을과 사람들을 찾아 함께 하며 그려낸 이 책은, 읽는 동안 무척이나 마음 답답하고 아픕니다.

어떻게 우리는 인간의 탈을 쓰고 이리도 무지하고 무책임하고 야만적일 수 있을까요?

그러나 이 책에서 만나는 체르노빌 사람들과 자연은 말합니다.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고, 뒤틀리고 파괴되고 엉망이 되어버린 삶도 삶이고 죽음을 안고 사는 생명도 생명이라고 말합니다.

그를 통해 여기 멀리 있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핵이라는 악에 맞서 악착같이 싸우라고. 포기하지 말라고,

그런 가운데 자신들이 겪는 인류사적 비극과 고통의 의미와 연대하라고 말입니다.

그게 우리가 다 함께 품을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이라고 말입니다.

- 문규현(신부)

 

 

평소 20세기에 자행된 가장 큰 죄악은 아우슈비츠보다 체르노빌이라고 감히 말하곤 한다. 그 체르노빌에 작가가 직접 다녀와 그린 체르노빌의 봄은 핵의 처참함을 우리네 것인 양, 손에 잡히듯 그 결을 고스란히 살려내서 전해준다. “남편을 포옹하는 것은 금지였다. 만질 수도 없었다. 당신 옆에 있는 사람은 남편도 사랑하는 사람도 아닌 전염성 높은 방사성 물질이에요.”라는 문장을 담은 그림에서는 눈물이 툭 떨어진다. 이처럼 피폭의 처참함을 손에 잡힐 듯 선연하게 고발하면서도, 이 속 깊은 만화는 폐허 속에서 피워내는 삶의 강인함과 아름다움을 찬연하게 그려낸다. 고통스러워서 아프고 아름답기에 더 아프다.


-박총(생태주의 대중신학자)


 

체르노빌을 방문한 프랑스의 예술가들은 죽음의 공포와 함께 삶을 발견합니다. 여전히 곳곳에서 높게 검출되는 방사능 속에서도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 방사능에 오염된 땅에서도 피어나는 생명을 발견합니다. 그래서 체르노빌의 봄은 슬프고도 아름답습니다. 만약 체르노빌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하는 생각을 버릴 수 없게 만듭니다. 그랬다면 체르노빌의 삶과 자연은 그 자체로 아름다웠을 겁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방사능의 공포만 없었더라면. 그래서 우리는 체르노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체르노빌의 사람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체르노빌의 아이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체르노빌의 봄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우리의 삶을 지키고, 이 땅이 생명의 땅으로 남으려면 원전을 하루빨리 폐기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무려 23개의 원전이 가동 중에 있는 한국이 2의 체르노빌이 되지 않도록 양심 있는 시민의 관심과 행동이 필요합니다.

- 하승수(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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