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옮겨둡니다. 개인적인 글인데도 toon_sync로 발행한 건 내용 가운데 만화의 사회적 의미에 대한 부분, 좋은 작품들 등 읽어보실만한 게 있으리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SYNC와 길찾기 많이 사랑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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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사표? - 나와 만화, 세계 그리고 SYNC



제가 격월간 만화잡지 SYNC와 처음 인연을 맺은 건 2011년 가을이었어요. 친한 연구자 형의 소개로 만화 평론을 기고하기로 했지요. 당시 저는 2011년 중순 주호민 작가의 '신과 함께'를 읽고서 약간은 뒤늦게 만화와 웹툰의 가능성에 고무되어 있던 차였습니다.


대부분 그렇듯 저도 어린 시절부터 만화를 무척이나 즐겨 보았습니다. 어른이 되고서는 '십시일반'이나 '아기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최규석) 같은 만화를 통해 만화가 사회적인 주제를 잘 전달할 수 있는 매체라는 생각도 꽤 일찍부터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진지한 만화와 그냥 즐기는 만화의 거리가 매우 멀고 이런 작품들을 보는 독자층도 각각 다르다는 착각도 하고 있었지요. 하지만 '신과 함께'를 비롯한 몇몇 웹툰을 통해 이런 착각에서 깨어났습니다. 특히 댓글들을 보며, 만화를 통해 약자의 정서를 공유하고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사유하는 경험이 독자들 사이에서 일어난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지요. 그런 독자들 앞에서 진지한 만화와 즐기는 만화는 따로 존재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 구분 없이 진지한 주제를 즐기듯이 읽되, 감성적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섰습니다.


 



그래서 SYNC의 SYNC CRITIC 난에 기고한 첫 글에서는 '신과 함께'를 다루었습니다. 문제의식을 다 담아내진 못했지만 이기진 편집장님이 제 글을 좋게 봐 주셨어요. 그리고 그 후부터 SYNC CRITIC의 고정필진 대우(?)를 받으며 글을 이어갔습니다. (제 글은 여기에서 다 보실 수 있습니다.)


당시 학위논문을 쓰고 있던 시기였지만 논문보다 이런 글쓰기가 재미있었단 걸 고백합니다. 하지만 국문학과에서 문학과 매체(media)에 대한 공부를 하지 않았더라면 글을 쓰지도 못했을 거에요. 문학과 만화에는 공통점이 적지 않고, 그 시장-공론장-텍스트의 요소들(역사, 사회, 독자, 작가, 작품 등등)을 사유하는 데 있어 문학 연구와 평론에서 이미 있었던 것들을 비판적으로 차용할 여지도 많거든요. 그때부터 문학을 베이스로 하는 만화평론가로 활동하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물론 만화 고유의 특성에 대한 이론적 공부도 틈틈이 해나갔습니다. 좋은 작품을 찾아 인터넷과 서점을 헤매기도 했고요. 때마침 대학원 후배가 뉴미디어 팬덤 현상 연구(김다혜, '미디어 팬 소설의 문화상품 활용 방식과 기술적 생산 수단에 대한 연구: 영화 "인셉션"을 중심으로')로 석사 논문을 썼기에 만화(웹툰)로도 못할 게 뭔가 하는 각오를 다지기도 했지요. 그래도 꽤 많이 썼던 논문이라 크리스마스 논문을 계속 쓰고 박사과정 들어가서 본격적으로 만화 연구를 해야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관심은 만화밭에 가있었기에 크리스마스 논문은 아주아주 천천히 업데이트되었지요. 

여튼 그렇게 논문을 써야 할 기간 동안 만화 공부와 글쓰기에 더 집중하며 활동했습니다. 그러던 중 제 삶에 충격적이고도 깊은 영향을 미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바로 제주도 강정 구럼비 발파였지요. 전부터 소식을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발파가 있던 당일에야 처음 강정을 찾아갔습니다. 여자친구와 당시 교회 분들과 함께 목격한 강정은 너무나 슬펐습니다. 하지만 강정 사람들은 슬픔에도 불구하고 힘찼습니다. 그 불굴의 의기에 감동받고, 절차를 무시하고 밀어붙히는 국가-자본의 합동 공사에 치를 떨었습니다.

그때부터 제 만화 글에는 강정의 흔적이 깊이 새겨졌지요. 논문에는 더 집중하지 못했지만, 연구자-비평가로서의 사유는 경험과 함께 더 뻗어나갔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SYNC를 출간하는 출판사 '길찾기'가 강정 마을에 이런저런 방식으로 연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SYNC에 대한 제 애정도 커져갔어요. 이기진 편집장님은 강정마을과 너무도 닮은 일본 산리즈카 마을을 다룬 '우리마을 이야기'(오제 아키라, 길찾기)를 번역하기도 했으니, 저로서는 SYNC를 사랑하지 않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지요.

그 후론 제가 SYNC에서 막 일을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편집위원이 되어 SYNC와 우리마을 이야기 등의 좋은 만화들을 더 많이 읽히게 만들고자 기획도 내놓았습니다. 주호민 작가와 윤필 작가를 만난 바 있는 SYNC_VIEW(만화계 인터뷰)도 제가 좋아하는 작가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려던 마음과 잘 알려진 작가분들을 통해 SYNC를 더 많은 독자들에게 소개하려는 마음의 결합이었습니다. 나아가 SYNC가 문학계의 '창비'나 '문학과사회'만큼은 못되어도 '리얼리스트'만큼만이라도 목소리를 낼 수 있었으면 하는 맘으로 잡지 활동에 더 깊이 빠져들었어요.

 



결국 작년 말 논문이 통과되었고, 마침 길찾기에서 함께 일하자는 제의가 왔습니다.


사실 지금부터가 본론이지만, 앞서 맥락을 소개한 만큼 서론보다 짧게 본론을 써 볼게요. 이것이 '기쁜' 이유는 맥락을 통해 쉽게 짚어내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좋아하는 잡지를 펴내는 출판사에서 일하는 거고, 제가 좋아하는 만화를 잔뜩 보며 만화계를 경험할 수 있으니까 기쁘지 않을 리 만무합니다.

'약간 걱정되는' 이유 역시 맥락 속에 힌트가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 저는 기본적으로 공부하는 사람이기 때문이지요. 특히 같이 공부한 동료들이 염려를 많이 하셨어요. 번역이나 강의 등 공부와 직결되는 일이 아니고 회사를 다니는 일은 공부에 득이 될 리가 없다는 조언이었습니다. 게다가 제가 길찾기에서 맡은 직무가 편집이나 출판기획이 아니라 SYNC와 SYNC의 지향을 담은 단행본들('색깔있는 책'이라는 브랜드를 입히려 합니다)을 널리 알리는, 즉 홍보하는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뛰어다니며 책 장사하는 일 같은 인상도 있어요. ^^;

저도 걱정되기는 매한가지입니다. 공부 시간이 줄어들 것도 그렇지만, 제가 일을 잘 못할까봐 더 걱정입니다. 제 학부 시절 전공(언론정보학/영문)이 관련분야를 다루고 있고 제 학부 선후배들이 PR 분야에서 많이 활동하긴 하지만, 정작 저는 당시에도 크게 관심이 없었고 관련 분야에서 활동한 적도 없었으니까요. 게다가 자본주의에 반대하며 적게 벌고 적게 쓰던 제가, 자본주의 시장 안에서 물건을 파는 상황에 처하다니요. 허허.

하지만 제가 SYNC와 색깔있는 책을 팔면, 상품만이 소비되는 게 아닙니다. 그 안에 담긴 생각들 - 환경·평화·인권 등 중요한 가치에 대한 진지한 사유, 페미니즘, 자본·국가 등 근대를 구성하는 형식에 대한 대안적이고 비판적인 접근 - 이 함께 전해집니다. 미시적으로는 억눌린 자들의 삶, 소외된 목소리가 이야기가 되어 전해집니다. 또 이런 깊은 주제를 만화 속에 잘 담아내려고 고뇌한 창작자의 노고가 독자를 만납니다. 이것이 어디까지 가능하고 얼마나 의미있는 일인지는 아직 더 공부하고 겪어봐야겠지만, 저는 여기에 문학도로서 희망을 겁니다.

또 일 자체가 공부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출판사가 제게 원하는 건 단순히 책을 파는 것만이 아니에요. SYNC에 연재되었고 곧 출간될 '봄! 봄! 봄!'(탁영호)는 4.19 혁명을 다루고 있는데요, 저는 이 작품을 알리기 위해 유가족들과 만나고 민족문제연구소 등과 교류하게 될 예정입니다. 마찬가지로 환경을 다룬 작품을 발표할 때는 제가 당적을 두고 있는 녹색당과 연대하고 '작은 것이 아름답다' 같은 좋은 잡지나 탈핵연대 같은 단체와도 교류하게 되겠지요.

 



이런 재미난 일을 전업활동가보다 약간이나마 더 많은 돈을 받으며 할 수 있다니요! 게다가 주 3일만 일하기로 했기 때문에 공부할 시간도 확보할 수 있을 거예요. 제가 잘 해야겠지만요.



여러분의 응원과 조언 부탁드립니다. 물론 비판과 질책도 환영합니다. ^^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더 하겠습니다. 제가 이 일을 하기로 결정하며 '약간 걱정'했던 데는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강정입니다. 강정에는 하나라도 더 많은 사람의 관심과 도움이 필요한데, 이제 일을 시작하면 공부할 때보다 운신이 자유롭지 못해서 자주 가지 못하게 될 테니까요. 거기서 고생하는 제 친구들이 눈에 밟히지만, 저는 이 일을 하기로 했습니다. 여기서 일하면서 강정의 목소리를 퍼지게 하는 게, 공사장 문 앞에서 레미콘을 막는 일보다 제가 더 잘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레미콘을 막는 일은 정말 중요하고도 힘든 일입니다. 제겐 그만큼 어려운 일을 할 각오가 부족한 것 같습니다. 얼마 전 항소한 재판 결과(벌금 400만원)에 기가 꺾인 건 아니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을 무작정 무시할 수도 없습니다. 저는 여기서 후방지원을 하겠습니다. SYNC에서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주 찾아뵙지 못하게 된 강정 분들에게 죄송한 마음 가득이지만, 이렇게라도 제 마음을 전합니다. 이해해 주세요.^^

  

  

  

  



*여러분이 SYNC와 길찾기 출판사를 좋아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페이스북 링크 길찾기에서 색깔있는 책으로 분류될 단행본은 다음과 같아요. 훑어보시고 좋아하는 책이 있으시다면 저도 응원해 주시고 SYNC와 길찾기도 응원해 주세요.) 링크로 걸린 페이지에 대한 '좋아요'는 큰 힘이 될 뿐만 아니라 출간될 책들 소식을 여러분이 받아보시는 데 도움이 됩니다. 부탁드립니다. 아, 노파심에 말씀드립니다.ㅋ 여러분께 개인적으로 정기구독을 부탁드리거나 하는 보험회사 직원 같은 일은 하지 않을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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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찾기의 좋은 만화들


- 박희정, '당신, 그렇게 까칠해서 직장생활 하겠어?

           - 모두가 함께 읽는 성희롱 이야기'

- 기 들릴, '굿모닝 예루살렘'


 



- 오제 아키라, '우리마을 이야기'



- 윤필, '야옹이와 흰둥이'




- 김경호, 이정호, 곰선생의 고만해- 고전문학 만화 해제 

/ 현명해 - 현대문학 명작 해제


 



- 전정식, 피부색깔=꿀색 - 한 해외 입양인의 이야기

- 이정익, 나는 조용히 미치고 있다 - 만화로 보는 한국현대인권사

 

  



- 문흥미, 원혜진, 장차현실, 손문상, 정혜용, 신영희, 난나, 정광숙, 권범철; 이어달리기

- 이두호, 최규석 등, 아미띠에 - 한불수교 120주년 기념 만화단편집

- 정경아, 위안부 리포트 1 - 나는 고발한다

  



- 오영진, 남쪽손님 / 빗장열기 - 보통시민오씨의 548일 북한체류기


 



- 최규석, 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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