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상황 9월호에 실린 시각문화 비평입니다. 편집진이 제목을 "<골든타임>, 파국의 공간에서"(http://www.gosc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8299)로 바꾸어 올렸는데, 이것도 나쁘지 않네요. 하지만 원제는 "'<골든타임>'", 시간적 의미를 더 살리고 싶었어요. 지면에 실린 글은 편집진이 문장을 조금 다듬었지만 여기는 송고한 원문 그대로 올립니다.

 

'복음과상황' 사이트에 올라온 글은 유료회원 및 정기구독자만 읽을 수 있어서 부득이 제 블로그로 옮겨 링크를 걸었습니다.그리고 종이잡지나 사이트에서 보신 분은 "슬프구나!"로 시작하는 미주 9번이 달려있는 문단이 추가된 걸 보게 되실 텐데, 그 대목은 직접인용입니다. 색깔 표시가 인용문으로 구별이 안 되어 있어서 알려드립니다.

 

-----

 

 

'<골든타임>' 

 

 

불꽃이 다이너마이트에 닿기 전에 타고 있는 도화선을 잘라야 한다.” 

- 발터 벤야민, <일방통행로

 

혼란이 지배할 때 (중략

환자는 자기를 위해 존재한다고 약사는 생각하기 시작한다.” 

- 니노 니콜로프, <혼란>

 

▲ ⓒMBC

 

 

불가능한 사망 선고 


교통사고 등으로 응급외상환자가 발생했을 때그 환자의 생사는 사고 직후부터 약 1시간 안에 이루어지는 응급처치와 수술에 달려 있다이 시간을 제목으로 끌어안은 MBC 드라마 <골든타임>은 초반부에서 이미 사망한 소아 환자를 붙들고 심폐소생술을 끝없이 시도하는 의사 이민우의 공포에 질린 표정을 보여준다. “당신 실력이 부족해서 이 환자가 죽었다고 생각합니까?” 끝내 도움을 얻기 위해 찾아간 인근 1차 병원 중증외상 전문의 최인혁의 질문에인턴생활 한번 하지 않았고 따라서 기도 절개도 해본 적이 없어 처치를 하지 못한 땜빵 알바 일반의 이민우는 “.”라고 대답한다하지만 환자의 죽음이 자신의 탓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서도 그는 사망선고를 내리지 못한다사망선고를 내리는 행위는 그 사실에 하나를 더 보태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바로 환자의 죽음을 막지 못한 자신이 의사라는 점이다.


사망선고를 내리지 못하는 이민우와는 정반대로 여러 사망선고가 이어지는 것을 우리는 목격해 왔다프란시스 후쿠야마는 공산주의에 대한 ()자유주의의 승리 앞에서 ‘역사의 종말가라타니 고진은 근대에 있어 문학이 가졌던 특별한 지위와 가치가 지금은 사라졌다는 ‘근대 문학의 종언을 선언했다스포츠 분야에서도 2006년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한국이 스위스에 패한 후한 방송사가 오심과 편파판정에 대해 “축구는 오늘... 죽었다는 자막을 내보냈으며바로 얼마 전 올림픽 펜싱 1초 오심 때에도한 외신의 “펜싱 붕괴(Fencing Meltdown)”라는 기사 제목이 “펜싱은 끝났다는 자극적인 표현으로 국내에 번역되어 번져나갔다이런 죽음의 선고들은 각자 맥락은 다르지만하나같이 죽음을 선고받은 대상의 핵심(생명)이 사라졌다는 데에 방점을 찍고 있다.1)  그리고 그 책임은 선언자의 것이 아니다스포츠정신이 사라지게 만든 심판과 협회가역사가 진보할 수 없고 문학이 가치를 지니지 못하게 만든 시대적 모순(혹은 대안의 상실)이 원인제공자일 뿐이다.


반면 이민우는 의사라는 그의 정체성이 환자의 사망이라는 사건과 너무나 밀접히 겹쳐져 있기 때문에 사망을 선고하는 것이 불가능하다생명을 살리고 죽음을 선언하는 의사의 두 가지 업무 가운데 전자에 실패한 그는 후자도 해낼 수 없다후자를 행하는 순간 전자의 실패가 도드라지게 드러나기 때문이다오열하는 가족 앞에서는 더더욱의사이기 때문에 지각하게 되는 이 딜레마는 잘 알려진 브레히트의 시 <살아남은 자의 슬픔>2)이 친구의 자리에서 고백하는 미안함-죄책감-부끄러움-자괴감의 정서와 닿아있다아우슈비츠의 “그 많은 친구들이 죽어나간 때에도 시의 화자는 생존해 있다.그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지각되는 순간 친구들이 죽어있다는 사실이 동시에 지각된다이처럼 두 사실이 충돌하면서 만들어내는 자신을 미워하게 되는 감성을 김홍중은 진정성의 형식으로 설명한다.


생존이 부끄러움이 되는 감수성, 이런 마음의 형식이 광범위하게 공유되면서 하나의 가치로서, 옳은 삶의 기준으로서 설정되어 통용되던 시대를 우리는 흔히 진정성의 시대라 부른다.(이남호, 1992. 306


진정성(眞正性, authenticity)은 본래 좋은 삶과 올바른 삶을 규정하는 가치의 체계이자 도덕적 이상으로서, 자신의 참된 자아를 실현하는 것을 가장 큰 삶의 미덕으로 삼는 태도를 가리킨다. 진정한 자아의 실현이 대개 사회적 모순, 억압, 문제 등에 의해 좌절되기 때문에 진정성의 추구에는 언제나 사회의 공적 문제에 대한 격렬한 항의, 비판, 참여가 동반된다.3)


이어서 그는 IMF 이후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서 ‘생존이 지고의 가치가 되고 진정성의 토대가 사라지며 이러한 감수성이 일반적이지 않은생경한 것이 되었다고 서술한다첨언할 것은진정성이 발동하는 주체의 위치이다. “생존이 부끄러움이 되는 감수성과 닿아있는 진정성은 오직 죽음 앞에서 그것에 일말의 책임을 지각하는 자의 자리에서만 발현한다다시 말해 개인이라는 가상적으로 완전히 분리된 사적 자아로서는 불가능하며사회적 자아로서만 가능한 일인 것이다.

 

<골든타임>에서 의사라는 직업은 바로 그 사회적 자아의 자리로 이민우와 최진혁에게 주어져 있다.반면 다른 의사들특히 외과과장을 위시한 과장들에게 있어 의사라는 직업은 사적 자아의 그것에 가깝다한때 사적 자아의 자리에 있던 의사 이민우가 환자를 잃은 그 트라우마적 순간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 웹툰 속에서 유사하게 재현된다여러 작가들의 작품 속에서 공통적으로 심심찮게 발견하게 되는 “미안합니다”, “부끄럽습니다”, “후회와 같은 언명들은사회적 자아로서의 진정성을 표현하고 있다특히, <그림 1>은 한편으로 “평범하게 하루 세끼 밥먹고 사는것조차 미친듯이 노력해야 이룰 수 있는 이 힘든 세상에 일말의 알리바이를 두면서도부엉이바위 위에서 잡으려고 노력했지만 놓치고 만 많은 손들의 부끄러움과 미안함을 그림에 담고 있다. “정신없이 바쁘고 힘들게,그렇게 각자 힘겨운 세상을 살다보니 그만 서로의 손을 놓치고 말았다는 것은 따라서, ‘그런 세상에 살고 있다고 해도 놓치지 말았어야 했다고 읽힌다.

 

<그림 1>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 웹툰' 중에서 "그만서로의 손을 놓치고 말

았네요" 네스티캣

 

 

 

사망선고를 하지 않기 위해서  파국과 진보의 변증법 


노대통령 사후그 전해의 광우병 촛불처럼 한 데로 뭉쳐지지는 않았으나 더 여러 갈래로 확대된 사람들의 공적 참여는 어쩌면 그 미안함의 감수성에서 출발한 것인지도 모르겠다광우병 촛불이 그들 자신의 문제로 수렴 가능한 것이었다면,그 후의 촛불들은 명백한 이해관계가 없는데도 이어졌기 때문이다마치 이민우가 편안하고 책임질 것 없는 한의원 양방 협진의의 자리를 떠나 고되고 더 많은 책임이 요구되는 인턴 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처럼많은 사람들이 한진 노동자를 위한 희망버스에 몸을 싣고두리반과 강정과 쌍용두물머리 그리고 용산 남일당 등 자본과 국가에 의해 고통을 겪고 있는 땅으로 찾아갔다이러한 정치적 참여와 연대의 공간에서 내가 만난 사람들은그 자리를 잠깐 떠날 때마다 하나같이 부끄러워했고 미안해했다나 역시 늘 함께 하지 못하는 스스로가 미웠다하지만 이 감정은 앞선 미안함과는 약간 다르게두려움이 중핵인 걱정이 가미된 것이었다. ‘내가 없는 사이 무서운 일이 일어나진 않을까.’로 요약될 수 있는 이 두려움은 앞선 그림 속 부엉이 바위를 거점으로 한 무의지적 기억(memoir involontairer)4) 의 소산이다.5) 이는의사는 무엇이 가장 두려울까요?”라는 최인혁의 물음에 이민우가 환기하게 되었을 이미지와도 잇닿는다.


이민우의 인턴 투신에 무시무시한 계기가 되었던 그 죽음의 이미지는 “무식해서몰라서 환자를 죽이는 것은 아무도 도와주지 않을 때 한 번으로 족하다는 최인혁의 가르침과 같이 계속해서 이민우와 시청자들에게 환기된다이민우는 사망선고를 할 수 없었던 그 사건 이후로 더 이상 그 전의 안락하고 무사태평했던 생활을 이어나갈 수 없다브레히트가 제출했던 질문, ‘홀로코스트 이후로 서정시가 가능한가를 연상하게 하는 괴로운 삶이다그것을 벗어나는 방안으로 채택한 것이 그 죽음의 이미지를 다시 만나 극복하는 것이었으리라이는 벤야민의 파국과 진보 개념과도 맞닿는다벤야민은 파국을 “기회를 놓친 것위기의 순간  현 상태를 지속할 수 없는 것으로진보를 “최초의 혁명적 조치로 규정하며 그가 서술하는 역사의 기본 개념으로 삼았다.6) 진보는 “파국이라는 이념 속에서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7)는 벤야민의 사상은 즉파국의 순간이 현재의 삶에 무의지적으로 기억되며 겹쳐질 때에그에 대한 혁명적 조치를 취하는 것을 진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파국과 진보의 변증법적 역사관은유토피아를 향해 목적론적으로 작동하는 헤겔적 진보의 역사관에 반하는 것이다. <골든타임안에서 관찰할 수 있는 최인혁과 이민우의 시간은 죽음(파국)을 중핵으로 하여 조직되고 있다는 점에서 벤야민의 파국에 기초한 시간의식과 같은 시계(時計視界안에 있다두 의사는 외상환자의 죽음을 막는 데에 그들이 쏟을 수 있는 모든 시간을 투자한다최인혁은 정형외과흉부외과신경외과 등 외과의 거의 모든 의술을 공부와 경험을 통해 습득했고 그 결과 과장들의 견제를 받을 만큼 뛰어난 의사가 되었다이 모든 공부와 경험은 모두 종합적 신체 손상을 입은 응급 외상환자를 죽음에 이르지 않게 하는 데에 집중하는 와중에 얻어진 것이라는 점에서 파국을 근거로 한 개인적 진보의 일환이다한편 이민우는 최인혁을 모델로 하여 그와 같이 죽음을 막는 의사가 되기 위해 수련한다이는 “의사에게 가장 두려운 상황에 맞닥뜨리지 않기 위한 노력으로곧 드라마 초반부에서 경험한 ‘자신의 실력이 부족하여 환자가 죽는’ 일을 다시 경험하지 않기 위한 것이다이처럼 그들의 시계(時計속을 흐르는 시간은 죽음을 막기 위한 노력에 온전히 활용되며이는 더 높은 자리에 앉는더 명망있는혹은 긍정적으로 서술하더라도 더 좋은 의사가 되려는 모든 목적에 뿌리를 둔 진보와는 다른 차원을 흐르는 시간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들의 시계(視界)이다이들이 보는 것은 다른 많은 의사들과 다른 것이다외과 과장으로 대표되는 출세지향적 의사들은 병원을 성장시키고권력을 쥐고자신을 내세우며더 높은 자리에 올라서는 유토피아적 진보의 시계 안에서 모든 상황들을 바라보며 그에 기반해 움직인다. ‘환자들이 자신들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전도된 시계를 지닌 이 의사들과 달리이민우와 최인혁이 보는 것의 범위에는 오직 죽음이 임박한 환자들의 생명만이 전경화되어 있다따라서 서로 다른 것을 보는 두 부류의 의사들은 제한적으로 존재하는 수술실을 두고또 어떤 환자를 수술대에 먼저 눕힐 것인가를 두고 갈등을 겪게 된다특히 최인혁의 경우응급환자들만을 위해 준비된 비어 있는 수술실은 병원 차원에서 구축해야 할 중요한 공간이며 따라서 시스템과의 불화도 피할 수 없는 것이 된다. “진정성의 추구에는 언제나 사회의 공적 문제에 대한 격렬한 항의비판참여가 동반된다는 앞선 인용문의 문장은 최인혁의 경우(또 벤야민의 사상에서) “진정한 자아의 실현이 대개 사회적 모순억압문제 등에 의해 좌절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기보다파국을 중핵으로 한 진보가 맞닥뜨리게 되는, ‘파국 앞에서의 진정성에 대한 서술이 된다.

 

최인혁은 의사 가운을 입고 있지 않을 때에도 파국을 보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한다. 개성을 지닌 '문제적 주인공'은 주변 인물들과의 대비를 통해 세계의 모순과 균열을 드러내는 존재다. (게오르크 루카치) MBC

 

 

 

‘<골든타임>’의 아포리아 


모든 의사가 보호자에게 하는 말과 똑같이파국의 시계를 소유한 진정성의 주체들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말한다모든 의사의 ‘최선이 수사(rhetoric)이지는 않을 것이나많은 경우 그것은 책임회피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거나 별 의미가 담기지 않은 클리셰(cliche)로 발화된다. 같은 말이지만최인혁의 ‘최선은 진정성의 표현이다그러나 그가 의사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은 제한적이다심지어 시스템과 동료 의사와의 관계 속에서 그가 최선을 다할 수 없는 상황까지도 일어난다예컨대 외과가 응급환자 수술을 전담하게 되어 최인혁은 메스를 쥘 수조차 없게 되는 것이다또 이 상황 속에서 환자를 살리고 싶은 인턴 이민우에게는 다른 외과 전문의들이 수술에 나서 주는 것이 너무나 필요했지만 다른 의사들은 선뜻 나서주지 않는다여기서 이민우와 최인혁은그들을 둘러싼 시스템의 압도적 영향 속에서 최선이 최선일 수 없는 곤경에 봉착한다.8) 파국을 중핵으로 하는 진정성의 주체들은 수가 적고 무력하다이런 상황에서그들은 어떻게 최선을 수행해 낼 수 있을까선뜻 답을 내놓기 어려운 물음이다.


강정의 싸움에 간헐적으로 연대하고 있는 나도 늘 이와 유사한 곤경에 봉착한다강정 주민들과 활동가들도 비슷할 심정일 텐데그 곤경은 간단히 말해 우리만으로는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파국을 막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악몽에서 출발한다구럼비가 나날이 깨져가는 동안 우리에게는 연대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간절히 필요했지만각지에서 다가오는 연대는 늘 고마웠음에도 부족했다우리는 지금도 여전히 연대를 구하고 있다이런 우리 중 많은 이들이 연대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야속한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은그 간절한 마음이 충족되지 않는 이유를 그들에게서 찾기 때문일 것이다이것이 야속한 마음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고립감과 박탈감으로 이어지면 멘붕(멘탈즉 정신의 붕괴를 뜻하는 신조어)으로 치닫는다.


강정의 파국을 막으려는 사람들만이 아닌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대표적인 멘붕 상황으로 4.11 총선과 그 후속상황을 들 수 있다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상대적으로 합리적인 박원순이 승리하는 등의 경험을 바탕으로 여당에 대한 민주-진보 야권의 승리를 예상했던 이 선거에서새누리당이 과반의석을 차지하는 결과는 야권 지지자들에게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다여러 분석이 쏟아졌지만곧이어 일어난 통합진보당 사태로 인해 범야권 지지자들의 멘붕은 더 심해져만 갔다말하자면,그들은 연대 불가능한 두 그룹 사이에서 갈 길을 잃고 말았다그들에게 있어 한쪽은 화해 불가능해 보이기만 하는 거대 보수 세력이며다른 한쪽은 합리성이 결여된 오류투성이에다 서로 물어뜯는 진보세력이었다.(물론 이것은 특정할 수 없는 사람들의 견해를 중심으로 한 서술이다.)

 

이렇게 하여 스스로 고립되었다고 느낄 수밖에 없는 진정성의 주체들은 한계 속에서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으나 전망은 어둡기만 하다게다가 연대를 필요로 하는 파국적 상황들은 도처에서 벌어진다.앞서 언급한 파국 외에도 밀양 송전탑콜트콜텍재능, JSM이 모두 하나같이 파국 안에 있다이러니 ‘우리의 파국에 대한 연대만을 요청할 수도 없다또 연대를 한다고 한들, ‘의 몸은 하나이며 ‘우리에 속한 ‘들도 몇 되지 않는다대형 교통사고로 인한 중증외상환자 수백 명이 실려 오는데 수술실은 모두 꽉 찼다그 앞에 선 최인혁과 이민우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대한민국이라는 동시다발적 중증외상의 공간에서 일어나고 있는 파국그리고 그 파국들이 징후적으로 드러내는 더 총체적인 파국의 도화선은 타들어가고 있다. ‘<골든타임>’사망선고를 선언하는/받는 상황을 막고만 싶은 진정성의 주체들은 어떻게 최선을 다할 수 있을 것인가이 아포리아를 넘어서는 사유가 너무나 필요한 시점이지만드라마는 아직 진행 중이고현실은 드라마와 다르며아포리아는 너무나 크기만 하다.

 

아포리아를 넘어서는 길은 구럼비로 가는 길에 설치된 저 철조망보다 더 멀고 험하다. 조익상

 



1)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말테제가 가장 맥락이 다를 텐데, 그가 말하는 역사는 헤겔의 진보하는 역사이며, 종말은 더 이상 역사의 진보가 불가능한 끝에 다다랐다는 완결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 경우조차도 핵심에 해당하는 진보의 부재가 발견되는 상황이 종언을 가능하게 했다. Francis Fukuyama, The End of History and the Last Man, New York: Free Press, 2006. 참조


2) 원제는 (, 생존자). 김광규 옮김, <살아남은 자의 슬픔>, 한마당, 1999. 


3) 김홍중, <마음의 사회학>, 문학동네, 2009, 19


4)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마들렌을 통해 불현듯 떠오르는 과거의 기억을 이르는 말이다. 이민우의 응급실은 늘 마들렌처럼 무의지적 기억이 떠오르는 공간이며, 현실 속 우리에게도 고통받는 사람들, 강제적으로 복속되는 개발의 공간 등이 그렇게 작용할 수 있다


5)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노 대통령 임기 동안에도 노동자들이 끊임없이 죽어 나간 85호 크레인을 거점으로 한 다른 기억의 정서와도 일치한다.(송경동, “소금꽃 김진숙과 ‘85호 크레인’ - 영도 조선소의 다섯 주인공”,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30110330104351) 이런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장소들은 용산 남일당을 비롯해 열거하자면 끝이 없을 정도이다


6) 발터 벤야민, 조형준 옮김, <방법으로서의 유토피아>, 새물결, 2008. 101쪽 참조


7) 위의 책, 99


8) 최인혁에게 전화를 거는 이민우의 최선, 그리고 시스템의 규제에도 불구하고 그 전화를 외면할 수 없는 최인혁의 최선이 만나 환자를 살리는 결과로 이어지지만, 결국 최인혁은 그 환자를 마지막으로 다른 환자를 맡을 수 없는 징계 상황을 맞이하고 병원에 사직서를 제출한다. 개인적으로나마 최선을 펼칠 수 있는 장이 사라진 것이다. 현재 9화까지 방영된 골든타임의 이후 서사는 이 곤경의 해결을 중심으로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이 글을 쓰는 데 많은 참고가 되었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