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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와 초콜릿 공장 (양장) - 로알드 달 베스트
로알드 달 지음, 퀸틴 블레이크 그림, 지혜연 옮김 / 시공주니어 / 2004년 2월
평점 :
품절
달은 추리소설의 노벨상이라 불리우는 에드가 상을 영국인이라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세 번이나 받았다. 그만큼 오락적인 글쓰기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세계적인 스토리 텔러이다. 좋게 보자면 '오헨리'나 '사키'같은 작가와 비견된다고 한다.
성인 장편소설은 두 개에 불과한 데 비해 동화는 꽤 많이 썼다. '찰리와~'가 가장 대표적이다. 처음 출간된 것은 영국이 아닌 미국이었으며, 중국에서는 통산 2백만 부나 팔리는 대기록을 세웠다고. 미국의 유명한 진 와일드라는 배우가 출연하여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물론 최근에 엽기적이고 몽환적인 작품으로 유명한 팀버튼과 그의 페르소나인 조니뎁에 의해 다시 영화화 되었는데, 해리포터 만큼이나 안전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정작 책을 읽어보니 나는 옛날에 '만화영화'로 본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사실 로알드 달이란 작가 자체가 서스펜스요 모순 투성이다. 그는 최근에 사망했는데 [뉴욕타임즈]의 기사에 의하면
'부모와 선생은 적이다. 예절도 도덕 의식도 전혀 없는 상태로 태어난 아이를 문명화하는 끔찍한 과정을 맡고 있기 때문에 어른은 아이들의 적인 것이다.'라고 말했단다.
그런데 정작 자신의 작품을 통해서 작가가 했던 일도 다름 아닌 '그런 일' 즉 아이들을 보다 선량하고, 부지런하고, 정직하게 만드는 그런 일들이었다. 그가 동화를 쓰게 된 동기도 자신의 다섯 아이들 중 먼저 태어난 두 딸, 올리비아와 테사의 잠자리용 동화를 보충하기 위해서라고 하니 아이들에게 설마 자신의 스릴러에서처럼 '남편을 냉동 양고기 다리로 후려 패 죽이는 건 더러운 일이라기 보다는 근본적으로 재밌는 일이다'는 주제를 담은 작품을 쓸 수는 없었을 것이다.
재밌는 일은 영국에서 한참 논란을 일으킨 장본인이 바로 이 사람의 손녀인 소피 달이란 여자라는 점이다. 온통 하얀 裸身에 하이 힐과 보석으로만 치장한 모델 소피 달의 모습이 대문짝만한 입셍 로랑의 포스터에 실려 전세계를 휩쓸었다니 다시 人口에 그 조부가 膾炙되는 것은 당연지사이리라.
뉴욕 타임즈는 '로알드 달의 동화가 성공한 것은 어른을 아이의 적으로 설정한 전략 덕분이다. 짐승으로 태어나 엄격한 훈육에 시달리는 아이들은 통쾌했고, 로알드 달에게 명성으로 보답했다'고 했지만 나는 전혀 동의할 수가 없다. 이 책만 하더라도 선인과 악인의 대비가 명확하다. 자기 만족적이고, 주관적이며, 명확한 선과 악의 구분은 조금도 망설임 없이 결말로 이어진다.
그런데 문제는 이게 바로 아이들의 관점이란 것이다! 이 작가의 인기의 비결은 바로 아이들이 갖고 있는 엄격한 이원의 사고와 가치 구조를 또 아이들의 입맛에 맞는 희한한 상상력이란 당밀로 포장한 데 있는 것이다.
이런 이원화는 등장인물들의 물리적인 특성같이 세부적인 묘사에서도 강화된다. 소설 속의 인물들은 누구도 플롯의 전개를 통해 정신적인 위기를 경험한다든가 성숙하지 않는다. 반면에 서로에 대한 행동과 대응은 또 다른 사건을 촉발한다.
사실 선과 악의 대비만큼 아이들에게 아필하는 요소가 있을까? 작금의 해리 포터의 인기 비결도 압축해 보면 이것 이상일 것도 없다. 해리 포터의 주인공의 선함은 찰리의 선함과 유사하다. 손해보듯이 평범하고 가진 것 없는 수동적인 소년이 어는 날 갑자기 초콜릿 공장의 사장이 되는 것과 마법의 권능을 지니게 되는 것과 다를 게 무엇인가? 성공의 신화는 어른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와 동시에 달의 소설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요소는 바로 예치기 않은 반전, 우스꽝스런 행동, 말놀음, 넌센스, 그리고 뭐니 뭐니해도 스릴러와 추리 장르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게 했던 바로 그것, 그로테스크한 블랙 유머이다. 찰리를 제외한 소년 소녀들의 운명을 보라! 그보다 더 잔인하고 사악하게 그들을 매장시킬 수 있겠는가? 아이들은 여기서 묘한 쾌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설화적 구조로서 전인류와 전시대를 걸쳐 검증된 오락적 구조이기도 하다.
또한 재밌는 것은 그의 동화 속에 나오는 소녀와 소년 주인공의 명확한 대비이다. '마술 손가락'이라는 소설에 나오는 여자 주인공은 활발하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감에 비해 '초콜릿'에 나오는 찰리는 착함 그 자체일 뿐 누군가 그를 그렇게 만들지 않으면 어떻게도 못하는 수동적인 소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