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들어선 길에서 (구) 문지 스펙트럼 17
귄터 쿠네르트 지음, 권세훈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짧은 소품들로 이루어진 SF적 작품집이다. 단순한 SF라고 하기에는 배경으로 깔고 있는 사회 정치적 상황이 너무나 암울하며 현실적이다. 가장 인상적인 소품에는 ‘아담과 이브, 올림피아 2, 대리인’ 등이 있다.

역자는 ‘아담과 이브’를 ‘기술 및 상품 만능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읽었지만, 나는 그렇게 읽지는 않았다. 이 작품은 우선 아담과 이브 설화를 교묘하게 비틀고 있다. 참고로, 폴 리쾨르는 구약에서는 다루어지지 않던 아담이란 인물이 사도 바울에 의해 재등장했다고 본다. 즉, 예수를 제 2의 아담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아담은 역사성을 지니게 된다. 여기서 이 작품은 아담을 예수와 동일시한 것으로 보인다. 인간은 제 3의 아담 시대에 접어들게 된다. 다시 말해, 지구는 파괴되고 인간종족의 한계상황은 처음 원점으로 되돌아간다. 문제는 신의 부재다. 그 대신 최종적으로 남은 인간 남자 둘과 우주를 유영하는 우주선, 그리고 베일에 싸인 설명서가 있을 뿐이다. 두 아담 중 하나는 매우 교활할 정도로 사태파악이 빠르다. 나머지 하나는 둔감하여 파트너에게 이용당할 뿐이다. 일단, 작가는 생물학적 성역활론을 비웃을 만큼 영악하다. 그리하여 둘 중 둔감한 남자가 이브로 재탄생한다. 여기서는 없는 신을 대신해 아담이 직접 성전환 수술을 집도한다. 재밌는 작품이다. 한편으로 우울하기도 하다.

<올림피아2>는 마치 비디오 드롬을 보는 듯하다. 재밌는 것은 변형된 기계가 텔레비젼이 아니라 그 속에 등장하는 아나운서란 점이다.

'대리인'은 소위 노인성 문학에 대한 조롱처럼 들리기도 한다. 왜냐하면 여기 등장하는 노인들은 하나같이 하나의 인격을 갖추고 있거나 혹은 죽음에 대비해 비장한 모습을 보이려고 들거나 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여고생들보다 한심하고 대책 없이 군다. 그 중 가장 대책없는 노인은 자신이 내건 내기로 인해 죽음을 맞게 된다. 이런 노인의 욕망, 그것도 롤리타 제곱 정도는 될 듯한 콤플렉스는 역설적으로 더욱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가장 사변적인 작품은 동제의 ‘잘 못 들어선 길에서’다. 기계적 장치나 간결한 행위묘사보다는 인물의 독백 위주로 짜여진 이 작품도 매우 훌륭하다. 특히 ‘냄새’와 배설물에 대한 변태적(?)애착(이에 해당하는 영어단어도 있지만)이 매우 선명하게 묘사된다.

예컨대 ‘ 냄새만이 나를 실재와 연결시켜주지. 주위의 형상들은 언제나 붙잡을 수 없고 난공불락이며 접촉할 수도 없어’란 표현은 지젝의 ‘상징계, 실재계’에 대한 설명의 예화로서 훌륭하게 인용될만하다. 즉 상징계 속에 자리잡고 있는 큰 구멍, 트라우매틱한 경험들이 저 냄새란 말 속에 모두 녹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들은 나의 ‘실재’가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이런 맥락에서 쿠네르트의 이 작품집은 전체적으로 하나의 ‘냄새’를 구축하고 있다. 그것은 미래 사회 그리고 과거 독일 사회의 징후들을 포착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 냄새를 맡음으로서 우리는 다름 아닌 실재로 귀환하게 되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