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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신들
최수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8년 11월
평점 :
품절
<분신들>은 문지사에서 나온 단편소설 모음집이다. 대부분 문지사가 간행하는 격월간지에 발표된 작품이란 얘기다.
최수철은 캐나다 체류중인 괴짜 작가 ''박상륭''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주로 ''도플갱어''란 주제에서 그렇다. 도플갱어는 주지하다시피 수많은 소설의 모티브로 활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소위 종교적 신비주의자들이 탐닉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분신들>에는 수많은 도플갱어들이 도착적으로 얽혀 있다. 소위 후기산업사회를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군상은 어쩌면 근본적으로 비슷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허름한 술집에서 혹은 따닥따닥 붙어있는 연립 주택에서 당신은 누군가를 스친다. 피로와 자기연민으로 쩔어있는 당신의 시선 안으로 그들은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킬 수 없다. 그러나 어느 사소한 순간 당신은 바로 그들의 피로와 자기 연민의 냄새를 맡고, 어쩌면 그들이 당신의 또 다른 모습이란 사실을 깨닫는다.
이러한 주제를 노골적으로 그리고 압축해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 소설집의 마지막 소설인 ''분신들''이다.
한 사내가 다리 위에서 토막 시체를 버리다 잡힌다. 그는 잡히기 위해서 그렇게 대놓고 시체를 유기했다고 말한다. 그들은 자신의 분신들이 끊임없이 자라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살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의 진술을 끊임없이 경청하던 담당 검사는 자신이 그의 또 다른 ''도플갱어''란 끔찍한 사실을 깨닫는다.
비교적 최근에 발표된 최수철의 <페스트>는 <분신들>의 연장선상에 있다. 분신들에서 보여 준 세계는 더욱 더 어두워져 있고, 이 사회의 소시민들은 누군가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기 전에 서로 경쟁하듯이 목숨을 끊는다.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이 사람은 저 사람에 의해 대칭이다. 마치 분신들이 페스트의 대칭이듯이. 분신들은 서로 대칭적으로 행복하며 또한 불행하다. 그들 삶의 합은 산술적 합이 될 수 없으며, 단지 공명을 이룰 뿐이란 사실이 분신들을 아름답게 혹은 끔찍하게 채색하는 여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