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 홍신 엘리트 북스 12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 홍신문화사 / 199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병적인 상태에 있을 때에 꾸는 꿈은 가끔 이상한 입체성과 뚜렷한 선명함, 놀랄 만한 현실과의 유사성을 그 특색으로 한다. 때로는 기괴한 장면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그런 경우 꿈의 상황이나 그 과정 전체가 장면의 내용을 충실케 한다는 뜻에서 예술적으로 완전히 부합하는 지극히 섬세하면서도 기상천외한 상세함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

어느 날 우연히 남미의 어디에서 제작한 '현대의 죄와 벌'이란 영화를 보고 죄와 벌을 다시 꺼내 읽었다. 영화속에서 로쟈(라스콜리니코프)의 희번덕거리는 검은 눈자위를 잊을 수가 없다. 도옙스키의 요사와 얼마나 가까웠는지 후줄근한 옷차림과 머리 모양에도 불구하고 범접할 수 없는 살기와 오만, 카리스마가 넘쳐흐르는 모델 같은 외모. 역을 맡았던 배우는 실제 남미의 모델일 것이다. 매우 개성적으로 잘생겼고 호리호리한 몸매였으니. 어쨌거나 그 희번덕거리는 눈자위를 보며 한참이나 눈에 안약을 넣었을까? 혹은 렌즈라도? 그도 아니면 배우는 선천적으로 이 배역에 맞춰서 태어난 것을까? 등을 고심하며 영활 봤다. 원작의 각색과 윤색에도 불구하고 이 로쟈의 스크린이 뚫어질 듯 나(관객)을 노려보는 연기는 자못 압권이었다. 루진(포르삐리 예심 판사)이란 자의 묘사도 그럴 듯 했다. 루진은 로쟈에게 말한다. 자수를 권하면서,

'당신은 노파를 죽여서 넘어서지 않았다면 수백만명 아니 그 이상도 아무 이유없이 죽여서 뛰어 넘어가려 할 위인이다. 단지 자기 자신을 자극하고 권력이란 자리에 앉기 위해 자신이 초월자라는 것을 실험하기 위해.. 그러나 다만 깜냥이 작고 소심한 또 다른 면모가 당신의 행동을 축소시키고 말살시켰다. 당신은 감방안에서 스스로의 자유를 찾는 것이 정신 건강에 이로울 것이다. 당신은 어딜가든 도망자로서 자신으로부터 도망갈 수도 달아날 수도 없다. 차라리, 실제하는 감방하는 안으로 스스로 달려와라. 이는 살인을 단죄하는 사회적 측면에서가 아니라 한 개인의 심리적 안위를 고려한 조언이다. 당신은 스스로 죄를 지었기 때문에 벌을 자청하는 용기도 지닐 거라 믿고 있다. 당신이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이 두가지 면을 동시에 발휘할 수 있다면 당신은 진정 초월자로서 범죄의 대미를 장식할 수 있을 것이다.'

로쟈 못지 않게 루진이라는 자는 매력적인 인물이다. 못생기고 땅딸맞고 집요하고 잘난 로쟈를 괴롭히기만 하지만, 그의 뱃심하나는 인정해 줘야 한다. 우리는 흔히 로쟈가 자수한 것을 소냐의 기독교적 회유탓으로 돌리기 쉽다. 그러나 소냐와 대척점에서 그를 회유한 자는 다름아닌 이 젊은 예심판사였으며, 이 책을 기막힌 논쟁의 장으로 만드는 주역은 바로 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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