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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긋는 남자 - 양장본
카롤린 봉그랑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프랑스의 천재? 여배우 로만느 보랭제가 주연한 '라 빠르망' 영화속에서 그녀는 삼각관계에 빠진다. 알리사, 리자 두 여자 친구는 뱅상이란 한 남자를 동시에 사랑하게 된 것이다. 로만느가 분한 알리사는 벵상에 대한 짝사랑을 '일기장'에 매일 적고, 리자를 사랑하던 벵상은 이 일기를 읽게 된 후, 종국엔 '못생긴' 알리사를 사랑하게 된다. 벵상이나 알리사나 원래 '책 읽기'를 즐기고 작가가 되고 싶어했던 유사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둘의 사랑은 이루어 지진 못하지만 어쨌거나 '일기장'즉 '書物'은 그들을 연결하는 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
봉그랑의 이 신세대적 소설도 마찬가지다. 도서관'에서 빌려오는 책들의 밑줄 긋는 남자는 과연 누구인가? 그가 누구인가보단 사실 그 존재로 인한 여자의 심정적 변화가 주시된다. 라빠르망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검은 뿔테 안경을 보기 싫게 쓰고 나왔던 알리사가 갑자기 어느 순간부터 노출이 심한 슬리브리스 원피스에 컨텍트 렌즈 차림으로 나타나서 벵상과 리자 사이에 좌충수를 두고 있었던 것이다.
도서관에서 빌려 온 책에는 낙서하면 금지되어 있다. 그런데 이 소설속의 남자는 버젓이 공공 재산에 흠집을 내고 있다. 그런 뻔뻔스러움을 사랑하는 여자도 있고 말이다. 나 역시 도서관에서 자주 책을 빌려 읽는다. 그리고 뻔뻔스럽게 줄을 긋고 코멘트를 단다. 심지어는 책 말미에 이메일 주소를 적어 넣은 적도 있다. 그런데 아무한테도 아직까지 연락을 못받았다. 나랑 취미가 비슷한 사람이 없는 모양이다. 아마도 이 책을 읽은 후에 그런 우연적인 사랑에 대해 모험을 걸었는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내겐 그런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으니 다행이라 해야 할지 불행한 건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