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약 한방울 - Q MYSTERY 42 해문 세계추리걸작선 38
샬롯 암스트롱 지음, 김석환 옮김 / 해문출판사 / 1992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하숙집과 강단 밖에 몰랐던 중년의 소년 케네스 깁슨, 그는 '시'를 가르치는 교수로서 '시'의 세계를 이탈하지 않고 살려는 만년 문학소년이다. 우연히 장레식장에서 알게된 로즈메리(아이라 레빈의 <로즈메리의 아기>에 등장하는 로즈메리와 똑같은 이름이군)란 역시 젊음은 넘긴 매우 병약한 여자를 '동정'하게 되고, 동정이 일종의 '집착'으로 변질되는 과정의 심리묘사가 흥미롭다. 특히 이런 소설들을 읽을 때면 어쩌면 그렇게 남의 심리에 정통한지 고개를 흔들지 않을 수 없는데, 여자인 작가가 젊은 노신사의 마음과 머리를 어쩌면 그렇게 정통하게 알 수 있는지...

이 소설의 초점은 그렇게 순진 무구하고 착하고 자비로운 케네스 깁슨의 유일한 여동생 - 그녀는 왕성한 직장여성으로 묘사된다 - 을 빼곤 전혀 나쁜 구석을 찾을 수 없는 미국의 중소계층의 이웃 주민같은 사람들만 등장한다는 것. 유일하게 대도시에서 케네스의 부름을 받고 온 여동생 에셀은 '도회성'과 '배려'와 '관계'에 취약한 도시성의 특성을 상징하는 인물이기도 하다.여기서 우리는 로즈메리와 에셀의 극적인 대비에 주목하게 된다. 에셀은 '자기 주장이 뚜렷한 여성'으로 나름이 방식으로 에셀을 간호하지만 독선적이고 몰인정하게 말을 뱉는 습관이 있다. 반 나절 이상 집안에 있었던 독약병을 찾아 다니는 '헛소동' 아마 작가는 '셰익스피어의 헛소동'에서 모티브를 얻지 않았을까?

실제로 작가는 문학사 학위 소지자 답게 시와 문학작품들, 평론까지 두루두루 능수 능란하게 일상화법 속으로 녹여내는 재주를 부린다. 다만 나 같이 못된 인간이 읽기에 작가가 그리는 '평범한 선함'이 지배하는 세상이 그렇게 밝아보이지만은 않았고, 특히 뒤로 갈수록 화려하게 마치 로즈처럼 꽃망울을 터트리는 마른 여인 로즈메리에 비해 남자같이 우락부락한 얼굴에 씨름선수같은 에셀의 초라한 몰락은 작가의 관점에 심한 '의심'을 품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독약 소동의 제공자가 케네스란 소심한 남자의 자살 계획에서 비롯된 것이었음에도 그게 갑자기 에셀의 살인 무기로 돌변한다는 설정이 억지스러웠다. 그녀가 그토록 그들을 죽여야 할 이유가 있었을까? 그리고 그런 여자는 사랑도 할 수 없고 사랑해 줄 사람도 없다는 도식적 인물 성정이 마뜩치 않다. 그리고 마지막에 에셀을 살인자(순전히 심증만 있지 물증도 없으면서) 몰아세우는 택시 운전사 옆집 부인. 그렇게 보상을 바라지 않고 협조적이던 이웃 주민들이 갑자기 한 여자를 살인자로 매도할 때는 이지메 집단으로 변한다. 과연 선과 악이 절대적인 것인가? 여성들이 주로 보는 드라마 제작용으로 쓰여진 작품인 탓인지. 이 소설은 안방마님들의 구미에 맞도록 짜여졌다는 한계를 여러모로 벗어날 수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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