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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속의 검은 잎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80
기형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89년 5월
평점 :
기형도의 <입 속의 검은 일>를 읽으면, 왜 양키들이 '뼈다귀'있는 유머를 블랙 유머라고 관용하는지를 알 것 같다.
'침묵은 하인에게 어울린다고 그는 썼다' 그렇다. 침묵은 금이라는 속설에 간강당해서는 안될 것이다. 빨갛게 혀를 내보이며 지껄였을 '그'는 어느 고위 권력자였을 것이고, 죽자 마자 '잎' 즉 여기 저기서 쏟아져 나왔을 비방과 독설을 견디지 못해 그 아들을 울었을 것이다.
그는 부조리와 진짜 악에 대해서 ' 더 이상 대답하지 않으면 안된다,' 검은 혀가 악착같이 그의 성대에 매달려 있기 때문이다.
기형도는 특이하게도 이러한 구강구조를 타고난 사람이다. 얼마나 그랬으면, '쓰지 않는 일'이 '신체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썼을까?
그의 시에는 '안개'라는 단어가 빈번히 등장하는데, 이것은 그가 살았던 지역의 특수성 때문이다. 끝임없이 뿜어대는 '공장매연'에 인공적으로 생길 수 밖에 없었던, 안개 지역 그 곳에서의 기억을 그의 검은 혀가 놓칠리 없다.
'여공들의 얼굴은 희고 아름다우며,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 모두들 공장으로 간다'
마지막 구절이 과연 압권이다. 아이들은 결국 모두 그 악귀지옥같은 공장속으로, 꾸역꾸역 들어가고 만다. 마치 그러기 위해서 자라는 것 같이. 이 전도된 현실.. 현기증이 날 것 같다.
기형도의 시는 건조하다기 보다는 블랙 휴머로 매끄럽게 닦여 있다. 어렵고 추상적인 시어들도 없다. 심플한 문장과 표현 반어들로 가득하다. 그는 매우 상식적인 사람이었을 것 같다. 내부에 나름의 '섬세함'과 '에민함'을 갖었을 뿐, 신경질적이거나 날카로움과는 거리가 멀었을듯 싶다. 그의 내력은 이를 방증하기도 한다. 연세대 정외과, 24살에 중앙일보 입사. 어찌보면 매우 바람직한 엘리크 코스를 밟은 셈이다. 그는 뛰어나게 두뇌가 뛰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며, 지나치게 비현실적인 몽상가도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그의 요절이 그의 짧은 시 인생을 신화화하고 있지나 않은 것일까? 그렇다고, 그가 지금까지 살아있다고 해서 더 믿음직스런 시인이 되있을 거란 확신은 들지 않는다. 아니, 그의 투명한 예민함, 곧은 심성이 그대로 그렇게 멈춰주어서 고마울 정도다. 그의 악착같던 검은 혀가 그대로 악착같이 모두의 입속에 페부속에 달라붙는 듯한 힘은 '살아있는 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어쩌면 '망자'기에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그의 혀가 자유스럽게 이 세상의 검은 인간들을 조롱하길 바란다. 적어도 그는 성역에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