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가에서 보낸 아름다운 나날들
헨리 데이빗 소로우 지음 / 기원전 / 1999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칸트는 윤리학을 철학의 한 분파로서 정의한 바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윤리교육이란 곧 반공교유으로 통했고, 윤리학 속에서 당위명제외에 다양한 명제들을 발견하기란 힘든 일이었다. 또한, 종래의 윤리교육은 자연에 접근하는 인간의 태도를 크게 '동양'과 '서양'으로 양분해 왔다. 그러나 좀 생각을 하는 자들은 무엇이 '동양'이고 '서양'인지 그 개념부터 명확히 하라고 촉구한다. 비트겐슈타인의 후예라서?

어쨌거나,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그래서 가볍게(피상적으로) 간과하고 마는 많은 정의와 개념과 단어들을 쿨하게 돌아봐야 한다는 '언어비판철학자'들의 생각은 옳다. 그런면에서 '서양'과 '동양'의 무책임한 이분법과 더불어 '자연'에 대한 입장을 도식적으로 나누어왔던 생각들도 반성을 할 필요가 있다. 그 반성의 근거를 마련해 주는 훌륭한 저서가 바로 ' 핸리 데이빗 소로우'의 ' 월든'이다.

월든은 소로우가 살던 바로 그 세계의 명명이다. 사실 소로우는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살았지만, 그가 산 나라(대통령도 왕도 없는)의 이름은 '미국'이 아닌 '월든'일 수 밖에 없다. 월든은 정부를 부정하지만, 미국이라는 지리적 조건까지를 거부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월든의 추구는 진정한 미국(삶과 생명의 땅으로서의)을 표방한다.

미국은 인디언의 발자취를 씻어내는 데, 그 평생을 바치고 있지만, 소로우의 인생은 오히려 그 발자취를 재연해내는 데 바쳐지고 있다. 미국 국가주의가 유가의 엄연한 현실논리라면 , 소로우는 운둔자적하는 도가의 자연논리에 따른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소로우 개인보다 소로우를 따르는 무리들의 출현이다. 노자와 장자가 놀라운 것은 그 후대의 엄청난 道黨들이 듯이..그러나 한번도 노장철학이 동북아시아 대륙의 지배사상이 된 적 없었음에도, 소로우의 철학은 서양에서 새롭게 급부상하는 지배사상이다.

이것은 어떻게 방증할 수 있는가? 호주의 엄격한 야생동물과 환경정책, 유럽의 자전거 이용정책, 미국의 치밀한 공원녹지화 정책 그리고 새로운 무역외교경제 장벽으로 떠오른 그린 라운드,.그린 라운드의 사상적인 저맥은 다름아닌 '소로우'다. 그들의 관념적인 스승은 인디언과 일본의 선사들이지만,.그들의 진정한 영웅은 '소로우'다.

번쇄하게 소로우를 再板하는 동서양 지식세계의 이면에는 이러한 통찰이 숨어있다.

과연 자연친화주의는 동양만의 전통인지 다시한번 검토해 볼 필요가 있으며, 나아가 더 중요한 일은 우리가 스스로 서양이 던져준 후광속에 갖혀 '동양의 전통은 뿌리깊은 자연보호'신화속에서 마음껏 위안하고 도취되어 있을 때, 서양이 이룩한 눈부신 '환경정책'인 것이다.

조선의 후예들은 관념속에서만 '환경주의자'일 뿐, 실제적인 부분에서는 전혀 환경주의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대부분 반자연주의적이며, 환경위협적인 존재들이기도 하다.

소로우는 이제 새로운 반성의 시작일 뿐이다. 우리가 수출한 정신을 다시 수입해야하는 시대의 시작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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