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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역사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정명진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어떤 책부터 시작했는지 모르겠지만, 언젠가부터 서점에 들어가면 반드시 책 한 권은 꼭 옷 속에 숨기고 나와야 직성이 풀리기 시작했다. 사실 어떤 때는 두 권이나 세 권까지로 늘어나는 경우도 있었고, 때로는 한 권을 훔친 후에 안전한 곳에 숨겨 두고 다시 들어와 또한 권을 훔치고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 '책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고 싶어서' 혹은 '책 도둑질은 도둑질도 아니다'란 말을 실험하고 싶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더 정확하게 말하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거리에 나가면 수 만가지 나를 유혹하는 물건들이 있었다. 책을 훔칠 때 나는 그 물질 문명의 어느 부분을 취하려 했던 것이 분명하다. 모든 것에 그렇듯 책에도 유형의 것과 무형의 것이 동시에 존재한다. 유형의 것은 이른바 바코드로 상징되는 그 책의 물리적 형성 과정과 시장경제에서 유통되는 기호인 가격 등이다. 무형의 것(내용,가치)에 견주어 가격이 너무 비싸다고 판단되거나, 대중적이지 않아 나 정도나 그 가치를 발견할만하다고 판단된다면 서슴없이 그 책을 선택했다. 그렇지만 이 행위를 영웅주의로 환원시킬 만한 사람은 내 주위의 껄렁한 반항아들 뿐이었다. 모범생들이라면..솔직히 그들은 나를 경찰서에 신고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보니, 많은 지식인들이 이 책을 매우 긍정적이며 높게 평하고 있다. 그 내용상에서 일본, 중국, 한국에 대한 것이 취약하거나 일부 잘못돼 있는 것은 그러나 꼭 짚어 봐야 할 것이다. 기본적으로 한국의 인문학서는 매우 날카롭게 지적하면서도 외국판에는 너그러운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번역판에서 빠진 것으로 보이는데, 작가인 알베르토 망구엘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이는 정말 유례가 없는 실수로 보인다. 그리고 역자 후기 같은 것도 몇 장이나마 배려했으면 좋았을 테고, 본문 내용처럼 저자가 독자의 페이지로서 할당한 그 면을 실제로 번역판 안에도 실현했어야 옳았을 것이다. 그리고 여러 가지 주석과 백과 사전식 내용을 담고 있는 교양서인 만큼 인덱스를 반드시 달아 놓아야 했다. 내 생각에 이 모든 것이 출판사 측에서 종이 몇 장을 아끼려고 했던 것으로밖에 안보이다.
그리고 언론에서 번역판을 선전해 줄 때는 반드시 내용면에 있어서는 몇 점이며, 형식면에서는 몇 점 정도 된다고 명기해 줬으면 좋겠다. 보니, 한결같이 문예부 기자님들은 평론가들뿐이다. 작가의 말을 인용, 차용하면서 작가인 듯 뽑내는 데만 열중하고 있다. 작가가 이미 한 말들을 좀 양념을 첨가하여 섞는 차례만 좀 바꿨을 뿐, 소작가연하는 태도는 저널리즘적인 태도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