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키이야기] 나이키의 사회공헌활동

 

 

세계 경제 포럼 연례회의가 끝나고 몇 달 후, 나이키 재단의 임원들은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개최된 ‘성인 남성 및 남자 청소년의 성 평등 의식 확립을 위한 국제 심포지엄’에 참석했다.

이 행사는 모든 남성에게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을 줄이는 것이 매우 시급함을 알리고, 건전한 성생활 장려, HIV와 에이즈의 예방 및 치료를 비롯해 좋은 아버지가 되어 아이에게 사랑을 전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리고자 마련되었다.

 

나이키 재단의 이사인 리사 맥칼럼Lisa MacCallum은 힘주어 말했다.

소녀 효과에는 빈곤의 고리를 끊고 지속가능한 세계 경제를 만든다는 의미가 담겼습니다. 지금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남녀 청소년의 역할이 모두 중요합니다. 본 재단이 지원하는 각종 교육 활동은 성인 남성과 남자 청소년이 소녀들을 자원의 유출구이자 재정적인 부담거리가 아니라 강력한 경제 주체이자 가정의 경영 책임자로 여길 때 우리 사회가 얼마나 큰 이익이 얻는지 확인하는 기회가 되고 있습니다.

아래 내용은 앞서 이야기한 주제 외에 나이키가 몇 년간 시행한 사회 공헌 활동을 나열한 것이다.

 

• 1999년: 필 나이트 사장이 나이키의 공동 설립자이자 친우인 빌 바워만을 기리고자 바워만 육상 경주로

보수 사업을 시작. 이 기금은 전 세계 청소년들이 사용하는 여러 육상 경기 시설을 개선하는 데 사용되었다.

 

• 2001년: 911테러 이후 나이키 직원 265명이 이 사건의 피해자 가족을 위해 7주 동안 계주를 하며

성금 모금. 이른바 미대륙 횡단 달리기로 불리는 이 계주는 오리건의 아스토리아 시에서 시작하여

44개 소방서를 지나 뉴욕에서 그 막을 내렸다.

 

• 2002년: 회사 설립 30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포틀랜드 시의 실외 농구장 약 90여 곳 개보수.

• 2002년: 청소년들에게 체육 활동을 장려하기 위해 나이키고NikeGo라는 지역 사회 후원 사업 시작.

• 2008년: 세계 최대의 달리기 경주인 휴먼 레이스 개최. 이 행사에는 무려 75만 명이 넘는 인원이

참가했다. 대회의 목적은 스포츠로서 달리기를 찬양하고 현실 세계와 가상공간에서 벌어지는 경주를

통해 달리기 애호가들을 하나로 잇는 데 있다.

나이키는 휴먼 레이스를 더욱 환경친화적으로 치르기 위해 세계 야생보호기금과 손을 잡았다. 특히 인쇄물의 양을 줄이고, 행사장을 오가는 참가자들이 자동차를 함께 타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길 권장하는 한편, 경주 장소에서 발생한 쓰레기를 최대한 재활용하거나 퇴비화하려고 노력했다.

나이키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사회봉사 활동을 열심히 하느냐고 묻는 말에 마크 파커 사장은 마땅한 대답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기업은 멈추지 않고 남을 돕는 데 수익의 일부를 사용하고 있다.

지금까지 스포츠와 전 세계의 문화, 광고, 그리고 아이들의 삶에 줄곧 큰 영향을 미쳐왔듯이,

나이키는 지역 사회를 위한 활동에서도 그저 똑같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자 노력할 뿐이다.

 

열정으로 시작해 꿈이 된 기업 [나이키이야기] 235페이지 본문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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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비 10% 줄이면 이익 100% 증가한다.

디테일 경영의 세 가지 특징

디테일 경영은 이제 모든 기업의 목표가 됐다. 디테일 경영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전문성을 바탕으로 시스템화, 데이터화, 그리고 정보화라는 세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시스템화와 데이터화, 정보화는 디테일 경영의 세 가지 특징이다.

(1) 디테일 경영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먼저 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되어야 한다.

기업의 성공과 실패는 체계적 시스템이 있는지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 디테일 경영을 위해서는 모든 과정이 원활하고 합리적으로 처리되도록 디테일한 경영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디테일 경영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우선 시스템 개선이 필요하다. 전체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고 임시방편으로 문제를 해결하면 진정한 디테일 경영을 할 수 없다. 기업 시스템을 개선하려면 우선 자원이용률 극대화로 낭비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 생산과 경영의 모든 단계를 철저히 관리해 자원을 합리적으로 배치하고, 사소한 부분에서도 낭비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 그래야 기업 시스템을 철저히 개선하고 디테일 경영에 성공할 수 있다.

(2) 디테일 경영으로 얻은 성과를 데이터베이스화해야 한다. 자료는 디테일 경영모델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참고가 된다.

생산기술과 제품표준 등은 모두 데이터로 수치화해 비교 평가할 수 있다. 데이터는 기업이 얼마나 효율적이고 합리적으로 관리되는지 평가하는 정확한 ‘증거’가 된다. 디테일 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업무의 질이다. 업무의 질에 따라 디테일 수준이 결정된다. 디테일 경영을 평가할 중요한 기준이 바로 업무의 질을 수치화한 데이터다.

포드의 예를 보아도 데이터화가 디테일 경영에 중요함을 알 수 있다. 경영이 얼마나 효율적이고 합리적으로 이루어지는지가 숫자와 통계로 정리되기 때문이다. 데이터화는 경영 상황을 가장 공평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방법이다.

 

 

(3) 디테일 경영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정보화도 빼놓을 수 없다. 정보화 수준이 낮은 기업은 디테일 경영에 성공할 수 없다.

 

오늘날은 정보화 시대다. 어떤 분야든 정보의 전달 속도가 느리면 발전할 수 없다. 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정보화 속도가 더디면 빠르게 발전할 수 없다. 반대로 정보화 수준이 높아지면 소통 능력이 향상되고 반응 속도도 빨라진다. 예를 들어 생산이나 경영의 특정 단계에서 빨리 해결해야 할 문제가 생겼을 때, 정보화 수준이 낮은 기업은 보고 및 전달에 많은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 따라서 문제 해결도 그만큼 늦어질 수밖에 없고, 이는 기업 전체의 손실로 돌아간다.

그러므로 기업이 디테일 경영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정보화 수준을 향상시켜야 한다. 이를 통해 기업 전체의 소통과 반응이 원활하고 신속하게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낭비를 이익으로 변화시키는 [디테일 경영] 75페이지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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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2 재테크시장의 잘못된 믿음을 경계하라

아이작 뉴턴도 무너뜨린 동조 현상

 

 


만류 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영국의 물리학자이자 천문학자, 그리고 수학자이며 근대 이론과학의 선구자라 불리는 아이작 뉴턴 역시 묻지마 투자에 뛰어들어 제정적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스페인의 왕위 계승 전쟁(1701 ~ 1714년)에 뛰어든 영국 정부는 엄청난 을 지게 되었고, 당시 영국의 재무장관이었던 로버트 할리는 정부의 재정난을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모색했다.

 

 

영국 정부는 전쟁의 끝이 보이기 시작하던 1711년에 설립된 남해회사The South Sea Company에 스페인의 남미 지역 식민지에 대한 무역 독점권을 주는 대신 회사로 하여금 유상증자를 통해 1천만 파운드에 달하는 를 인수하도록 했다. 그러나 전쟁에서 승리한 영국이 1713년의 위트레흐트 조약으로 따낸 무역권의 내용은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것이었다.

 

남해회사의 연이은 사업 실패에도 주식 가격은 전혀 하락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계속해서 상승세를 이어갔다. 그리고 1719년에 남해회사가 또다시 국채 인수 계획을 발표하면서 이에 대한 근거 없는 낙관적인 전망확산되었고, 남해회사의 주당 가격은 1720년 1월의 128파운드에서 2월에는 175파운드, 3월에는 330파운드까지 올랐다. 이 시기에 뉴턴도 남해회사 주식에 7,000파운드를 투자하여 원금을 두 배로 불리는 뛰어난 투자 수완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뉴턴은 이내 자신이 큰 실수를 범했다고 생각했다. 남해회사의 주가는 뉴턴이 팔고 나서도 힘차게 계속 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며칠이 지나도 주가는 계속해서 탄탄한 상승세를 이어갔고, 시장에는 또다시 새로운 소문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조만간 영국 정부가 지브롤터 해협의 식민지를 스페인에 반환하고 그 대가로 남해회사는 남미 지역과의 무역 독점권을 넘겨받게 되고, 그렇게 된다면 남해회사의 주가는 지금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오르게 될 것이라는 소문이었다.

 


이 소식을 접한 사람들이 남해회사 주식을 다시 사들이기 시작했고, 남해회사의 시가 총액은 5억 파운드에 달했다. 당시의 이 금액은 유럽 현금 잔고의 5배 수준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성급함을 크게 후회한 뉴턴은 남해회사의 주식을 다시 사들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투자자들은 남해회사의 주가가 기업의 실제 전망과는 전혀 관계없는 비정상적인 가격임을 깨달았고, 보유하고 있는 주식을 팔아 치우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상승하던 남해회사의 주가는 8월에 1,000파운드까지 급등한 후 거품이 꺼지며 곤두박질쳤고, 연말에는 100파운드까지 떨어졌다.

 


결국 남해회사의 주식 폭락으로 인해 대출로 주식을 샀던 수많은 투자자가 파산하게 되었고, 남해회사 주식에 재투자했던 뉴턴 역시 2만 파운드라는 큰 투자 손실을 입었다. 이 일로 뉴턴은 투자 역사에 길이 남을 명언을 남긴다.“나는 천체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어도 사람들의 광기는 계산할 수 없다.”

그로부터 300여 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뉴턴의 역학을 이용해서 일식을 예견하고, 우주선을 목표한 행성 궤도의 예정된 지점에 보내고 있다. 이처럼 동조는 범인凡人과 천재天才를 가리지 않고 개인의 행동과 사고를 하나의 군중으로 응집시키는 대단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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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하기의 3단계 레벨

3단계, 이해하기♥

 

 


전달하는 기술을 높이기 위해서는 우선 무엇을 위해서 전달하느냐를 명확히 해야 한다. 무엇을 위해서 전달하는가? ‘상대방에게 이해시키기 위해서’라는 대답을 하는 사람이 많은데 사실 그렇게 생각하는 한 커뮤니케이션을 원활히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람이 무언가를 전달하려는 목적은 상대방의 행동을 바꾸는 데 있기 때문이다.


사람에게는 행동과 연결되는 이해행동과 연결되지 않는 이해가 있다. 왜나하면 ‘이해하기’까지는 세 단계가 있고, 가장 깊은 이해의 단계인 3단계에 도달하지 않으면 사람은 행동에 나서지 않기 때문이다.

이해의 첫 단계인 1단계는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다. 언어적으로 이해를 하고 상대방이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이해하는 단계이다. 정보가 정확하게 전달되는 단계라고도 할 수 있다. 2단계는 전달하고자 하는 사실에 대해서 ‘동감’하는 단계이다. 동감이란 원래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감정과 일치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야기를 듣고, ‘아,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라는 느낌을 받는 것이 2단계이다.

그리고 3단계가 되면 이해는 ‘공감’을 낳는다. ‘동감’과 ‘공감’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공감’이란 처음부터 자신의 머릿속에 있었던 것이 아니지만 상대방의 감정을 접함으로써 자신의 감정이 상대방의 감정과 일치하는 것이다. 동감이 ‘머릿속이 일치하는’ 느낌이라고 한다면 공감은 ‘마음이 일치하는’ 느낌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의 머리와 마음이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의 감정은 이해할 수 있지만 행동에 나서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상대방의 감정을 전혀 이해할 수 없지만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는 경우도 있다. 상대방을 이해하는 정도인 1단계의 이해에 필요한 것은 전달하고자 하는 사실을 명확히 하고, 중요한 항목을 정해서 이를 더욱 효과적인 방법을 이용해서 전달하는 매우 논리적인 사고이다. 그러나 논리적인 전달만으로는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상대방을 공감시키기 위해서는 자신의 감정을 더해야 한다. 자신의 감정을 더한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강요를 해서는 상대방의 감정을 이끌어낼 수 없다.

강한 바람처럼 자신의 생각만을 부딪히는 것이 아니라 태양과 같이 그러한 감정에 이르게 된 배경, 스토리를 전달하면 같은 감정의 단계를 오르기 시작할 것이다. 행동에 연결되기 위한 이해를 얻기 위해서는 논리적이고, 감정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무언가를 전달하는 행위는 상대방의 손을 잡고 감정의 계단을 하나씩 오르는 것과 같다. 그러나 상대방의 감정에 호소한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의 감정의 시작점은 모두 다르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

 

 

 

   지루한 두뇌 노동의 유쾌한 반전, 생각꺼내기연습!!

   성공하는 직장인의 문제해결사고법 <생각꺼내기연습> 143 PAGE 본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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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위대한 결과가 훌륭한 토대에서만 나온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나이키는 어떤 꿈이 결단력, 끈기, 창의력, 풍부한 지략, 수많은 땀방울과 함께할 때 실제로 달성된다는 사실을 증명한 멋진 표본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꿈을 현실로 이룩하고자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재능을 쏟아 부은 두 사나이가 있다.

바로 오리건 대학교 육상부의 감독으로 명성을 떨친 빌 바워만Bill Bowerman과 같은 대학교에서

빼어난 실력을 자랑하던 육상선수 필 나이트Phil Knight였다.

 

 

전국적으로 이름을 날린 바워만 감독은 오리건 대학 선수들이 더 나은 기록을 내도록 끝없이 노력했다. 그는 움직일 몸만 있다면 누구든 운동선수나 마찬가지라고 굳게 믿었다. 이 말은 짧고 단순하지만, 훗날 그가 세운 회사는 실제로 전 세계 수백만 인구가 나이키 제품을 착용한 운동선수들처럼 빠르고 민첩하면서도 힘차게 달리도록 도와주었다.

 

 

하지만 1950년대의 신발 회사들은 바워만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때부터 그는 직접 신발을 개조해 그것을 육상선수들에게 제공했다. 그는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강하게 믿었으며 기존 신발 회사가 새로운 발상을 거부할 때도 단념하지 않았다. 반대로 몇 년 후에 그 회사들이 장대한 역사에 편입할 멋진 기회를 날려버렸음을 깨닫고 얼마나 낙담했을지 한 번 생각해보라.

 

 

 

 

 

빌 바워만이 육상선수들을 위해 더 좋은 신발을 만들려고 고심하던 사이, 필 나이트는 그 나름대로 양질의 육상화를 제조하겠다는 생각에 전념하던 중이었다. 중거리 육상선수였던 그는 더욱 발전된 운동화를 만드는 데 실질적인 시각을 부여할 수 있었다. 나이트는 오리건 대학을 졸업하고 경영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자 스탠퍼드 대학으로 진학했다.

 

 

빌 바워만과 필 나이트에게는 오리건 대학 출신이라는 점과 더 나은 신발을 만들겠다는 열망 그 이상의 공통점이 존재했다. 불굴의 정신력으로 따지면 이 둘은 그야말로 피를 나눈 형제와 같았다. 바다 건너편의 신발 회사로부터 아무 답변도 받지 못한 나이트에게는 또 다른 모험을 향해 나아갈 기회가 있었지만, 그는 그 지점에서 더욱 어려운 선택을 했다. 결국 그가 고른 길은 육상부에서 자신을 가르친 감독님과 다시 힘을 합치는 것이었고, 그렇게 전설적인 만남이 시작되며 그들의 꿈은 마침내 날갯짓을 시작했다.

 

 

1948년부터 대학 육상부 감독 자리를 맡은 바워만은 필 나이트가 보낸 견본품을 보고 기뻐하며 제자에게 감히 거절하지 못할 제안을 한 가지 했다. 그는 나이트와 동업을 하며 자신이 직접 고안한 신발 디자인을 오니츠카 타이거에 제공하면 어떻겠냐고 제의했다. 그리고 나머지 이야기는 지금 우리가 아는 바 그대로 역사가 되었다. 힘을 합치기로 결심한 두 사람은 창업 자본으로 각자 500달러를 투자하여 1964년에 나이키의 전신인 블루 리본 스포츠Blue Ribbon Sports를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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