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포춘 지는 ‘20세기 최고 기업가’로 헨리 포드를 선정했다. 그의 포드자동차가 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했기 때문이었다. 1908년 포드자동차는 최초로 일반 소비자가 구매할 수 있는 ‘모델 T’라는 저렴한 자동차를 출시했다. 이로써 자동차 혁명에 막이 오르고, 위대한 공헌을 한 헨리 포드는 ‘미국을 자동차 바퀴 위에 올려놓은 영웅’으로 추앙받았다.


1903년 6월 16일 17시, 헨리 포드의 자동차 회사가 디트로이트에 설립됐다. 낡은 화물차 생산 시설을 

개조한 공장과 열두 명의 투자자, 몇 가지 공구와 기자재, 계획서, 모형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가내수공업과 큰 차이 없는 이 공장에는 설립 직후부터 고비가 찾아왔다. 생산설비와 기술 인력이 부족해 

첫 번째 자동차를 생산할 수 없었다. 다행스러운 점은 헨리 포드 자신이 우수한 기술자였다는 사실이다. 


그는 자금과 설비가 부족한 상황에서 단순한 구조 자동차를 만들었다. 이 자동차는 열다섯 살짜리 아이도 쉽게 운전할 만큼 조작이 간단했다. 헨리 포드는 그 차를 ‘시장에서 가장 완벽한 자동차’라고 불렀다.

자동차는 쉬운 조작법 덕분에 시카고에 사는 한 박사에게 판매되었다. 첫 번째 자동차가 팔렸다는 사실에 헨리 포드와 주주들은 뛸 듯이 기뻐하며 더 의욕적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 후 몇 년 동안 헨리 포드와 주주들은 이 자동차 모델을 판매해 적잖은 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다. 다른 회사 제품보다 원가가 훨씬 낮은 자동차는 헨리 포드의 운명뿐 아니라 인류 전체의 생활까지 바꿨다.

 


1908년 헨리 포드는 시대에 한 획을 그은 새로운 모델의 소형 세단을 출시했다. 바로 모델 T다. 모델 T의 가장 큰 특징은 원가가 저렴하고 성능이 우수하며 조작이 간편하다는 점이었다. 폭발적으로 인기를 끈 모델 T는 1927년 판매량 1천500만 대를 돌파했다. 단일 모델로는 최대 판매량인 이 기록은 1972년까지 45년간 유지됐다. 모델 T의 출시로 포드자동차 매출은 껑충 뛰었지만, 원가 절감을 중요하게 생각한 포드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공장에 컨베이어벨트를 설치해 생산량과 작업효율을 크게 높이고 원가도 절감해 수익률을 끌어올렸다.


그 후 헨리 포드는 직원의 사기 충전과 생산효율성 향상을 위해 근무 시간을 여덟 시간으로 단축한 반면 일당은 오히려 시간당 5달러로 올렸다. 동종 업계 직원과 비교해 월등히 높은 것이었다. 포드가 직원들의 근무 조건을 개선하자 사람들은 인건비가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포드자동차의 인건비는 예전과 별 차이가 없었다. 심지어 소폭 하락하기까지 했다. 가장 큰 원인은 직원들의 의욕이 상승했다는 점이다. 덕분에 생산 속도가 올라갔고, 원자재 이용률도 크게 증가했다. 반면 불량품은 감소했다. 더 중요한 사실은 품질이 눈에 띄게 좋아져 소비자에게 인기가 높아졌다는 것이다.


사실 여덟 시간 근무제는 미국에서 노동운동이 활발했던 1880년대 이미 제기된 것이었다. 당시 미국 기업들이 겉으로는 여덟 시간 근무제를 시행했지만 갖가지 핑계와 수단을 동원해 직원들에게 잔업을 시켰다. 그러나 포드는 근무 시간을 늘리고 인건비는 줄이는 방법이 오히려 낭비를 불러올 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겉으로는 수익이 증가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낮은 생산성과 자원이용률이 이를 침식했다. 결과적으로 관리 부실로 인해 나타난 낭비를 보완하기 위해 기업이 더 많은 돈을 투입해야 했다. 그래서 헨리 포드는 처우 개선을 통해 직원의 의욕을 고취시키고 이를 수익으로 전환시키는 데 집중했다. 이 방법이 포드자동차가 오랫동안 번영을 유지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비결이다.


따라서 포드자동차의 매출은 언제나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다. 2008년 금융위기의 폭풍 속에서 세계적인 자동차 기업인 GM과 크라이슬러가 파산했지만, 포드자동차는 안정적인 성장세를 유지했다.


포드는 저렴한 가격에 튼튼한 자동차를 팔던 과거의 ‘포드’에 머무르지 않고 랜드로버, 머큐리, 링컨, 애스턴마틴, 재규어 등 여러 개 자동차 브랜드로 확장하기도 했다. 이 중 링컨, 애스턴마틴, 재규어 등은 모두 고가의 브랜드로 성능과 설계에서 모두 명품 자동차에 속한다.




 

 

 

디테일 경영의 비용절감 노하우 _ 부자도 절약한다 : 저수익 시대의 성패는 비용이 결정한다.

세계 최고 기업들의 한결같은 수익창출의 해답!『디테일경영』219 페이지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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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키가 우즈와 연 500만 달러에 후원 계약을 맺은 1996년, 당시 21살이었던 이 골프 천재는 무명선수에 불과했다. 비평가들은 나이키가 이름 없는 풋내기 선수 계약했다며 조소를 날렸지만, 이듬해 우즈는 마스터스 골프대회Masters Golf Tournament에서 12타차로 2위 선수를 따돌리고 우승을 거머쥐면서 자신에게 그만한 가치가 있음을 증명했다. 그리고 2000년에 <포브스Forbes> 지는 나이키가 타이거 우즈와 1억 500만 달러에 다년계약을 맺었다고 전했다.


1990년대 중반, 우즈가 프로 골프계에 입문한 바로 다음날에 무명이었던 그와 과감히 계약하기로 결정을 내렸던 나이키의 수뇌부는 이번 불륜 사건으로 논란이 거세진 와중에도 그를 계속 지원하기로 했다. 그들은 뉴욕의 경제 전문 웹 사이트 마켓워치MarketWatch에 이메일을 보내 간략히 견해를 밝혔다.




2009년 12월 11일, 타이거 우즈는 개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전념하고자 한동안 골프 경기에 출전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그때까지 그는 1995년에 아마추어 선수로 처음 출전한 이후로 한 번도 마스터스 골프대회에 빠진 적이 없었다. 그는 자신의 웹 사이트에 다음 내용의 성명서를 게재했다.

# 저는 오랜 반성 끝에 잠시 골프계 떠나 있기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지금은 더 나은 남편이자 아버지가 되고, 성숙한 인간이 되는 데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일으킨 부정한 행위로 많은 분이, 그리고 누구보다도 제 아내와 아이들이 큰 실망을 느끼고 아픔을 겪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께 다시

한 번 정말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용서를 구하고 싶습니다. 제가 저지른 잘못을 되돌릴 수는 없겠지만,

온 힘을 다해 이 상처를 치료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2009년 12월, 2010 회계연도(나이키의 회계연도는 6월 1일에 시작하여 이듬해 5월 31일에 끝난다)2분기 재무성과를 발표하는 전화 회의에서 나이키의 CEO 겸 사장인 마크 파커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았다.

(타이거 우즈 사건으로 말미암아) 업계 순위나 재고 면에서 나타난 영향에 대해 해주실 말씀이 있습니까?”

그의 대답은 이러했다.

# 현재 사업 규모가 6억 5천만 달러 정도인 나이키 골프는 이 시장의 다른 회사들과 마찬가지로 주변

정황에 매우 크게 영향을 받거나 나이키의 사업 중에서 가장 성공하기 어려운 부문으로 여겨졌습니다.


특히 지난 몇 년간의 경제적 여건 속에서는 더욱 그랬다고 할 수 있지요. 그렇지만 저는 그보다도 저희

회사가 이런 시기에 골프 사업부를 잘 관리하고 골프 시장에서 이룩할 성장 가능성을 믿으며, 현재

위치를 잘 지켜낸 것이 매우 만족스럽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타이거에 대해서 제가 당장 할 수 있는 말은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그가 골프에서 한발 물러나 있길 선택했다는 사실뿐입니다. 나이키는 그 선택을

받들고 타이거가 돌아오길 기다리면서 그와 그 가족을 계속해서 지원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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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도요타는 1만5천 대 생산이라는 놀라운 성과를 달성했다. 하지만 GM, 포드 등 미국 기업과 비교하면 턱없이 작은 규모였다. 그해 도요타는 창립 이래 처음으로 소형 세단인 AE를 출시했다. AE는 당시 스위스 업체가 판매하는 제품과 외관이 매우 흡사했다. 도요타 기이치로는 모방이 창조보다 더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던 것이다. 모방하는 과정에서 일부 개선이 이뤄지고 디테일한 부분을 완벽하게

처리하면 기존 제품보다 단점은 적고 장점은 두드러진 자동차를 생산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도요타의 모방에는 남다른 점이 있었다. 그대로 모방하면 시장점유율이 높아지기는커녕 오히려 소비자에게 외면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도요타의 자동차는 모방이었지만 안전성 성능이 더 우수하고 가격이 저렴했다. 소비자에게 크게 환영받았고, 덕분에 도요타는 성공을 향한 단단한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1950년 도요타는 자동차 판매회사까지 설립, 고속 성장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하지만 2차대전 직후 패전국 일본의 국내 상황은 매우 혼란스러웠다. 여러 요인 때문에 도요타는 심각한 적자를 내고 말았다. 경영이 악화되자 직원 감축이 불가피했다. 직원을 감축하지 않으면 파산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신뢰를 무엇보다도 중시하는 도요타 기이치로는 창립 초부터 직원들에게 대규모 감원은 실시하지 않겠노라고 약속한 바 있었다.


감원하자니 직원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신뢰를 지키자니 회사가 파산할 수 있었다. 도요타 기이치로가 고뇌에 빠졌을 때 1천700여 명의 직원이 자진해서 사직서를 제출했고 도요타는 가까스로 부도를 면할 수 있었다. 위기를 겪은 후 도요타 기이치로는 직원들을 인간적으로 존중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달았다. 그는 직원들의 애사심을 길러주기 위해 몇 가지 새로운 규정들을 발표했다. 그 중 하나가 할당된 작업량을 완수하면 일찍 퇴근할 수 있게 한 규정이었다. 일을 빨리 끝내면 일찍 집에 갈 수 있지만, 다 끝내지 못하면 잔업을 해야 했다.


이 규정이 시행되자 직원의 업무 만족도가 크게 상승했을 뿐 아니라 생산량 증가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직원들이 각 생산 단계를 빈틈없이 관리하면서 낭비가 크게 줄고 자원 이용률이 높아졌다. 제품 품질도 따라서 향상됐다. 이것이 바로 훗날 전 세계 기업가와 경영 전문가들이 극찬한

‘인간중심적 생산관리방식, 일명 ‘도요타 방식’이다.


낭비를 이익으로 변화시키는 『디테일경영』 165 페이지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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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화 하나로 세계인을 사로잡은 괴물같은 기업, 나이키 이야기 [마이클 조던 이야기]


1980년대 중반부터 마이클 조던 나이키의 회생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기에, 나는 책의 한 부분을 할애해 조던 브랜드 사업부와 조던 개인에 관한 이야기를 다룰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1984년과 1992년에 미국 농구 국가대표로 올림픽대회 금메달을 획득한 조던은 2009년 9월에 네이스미스 농구 명예의 전당(Naithsmith Memorial Basketball Hall of Fame, 명예의 전당은 사회 각 분야에서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이들을 기리는 기념관을 뜻하며, 농구 명예의 전당 앞에 붙은 네이스미스라는 명칭은 농구의 창시자 제임스 네이스미스 박사의 이름에서 따왔다)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그는 선수 생활을 하며 1988년, 1991년, 1992년, 1996년, 1997년에 NBA 최우수 선수 선정되었다.


“농구는 제 인생의 전부였습니다.”




조던은 명예의 전당 입성 연설에서 이렇게 운을 뗐다. 그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을 뿐 아니라, 놀랍게도 과거에 그의 능력을 전혀 믿지 않았던 사람들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특히 고교 시절에 조던을 학교 농구대표팀에서 탈락시킨 감독의 이야기는 큰 관심을 모았다.


“전 당신께 제 능력을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그때 큰 실수하신 거예요.”


그는 마치 옛 감독님에게 직접 이야기하듯 청중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그 감독이 지금까지 살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필시 그는 조던을 대표팀에서 탈락시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으리라. 조던은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1학년 때 미국대학농구NCAA Basketball 결승전에서 경기 종료와 함께 승리를 결정짓는 슈팅을 성공시켰다. 그는 1983년과 1984년에 <더 스포팅 뉴스The Sporting News>가 선정한 ‘올해의 대학 선수’로 이름을 남겼다. 3학년을 마친 그는 1984년에 드래프트(draft, 신인선수 공개선발제도)를 통해 시카고 불스 입단했다.




조던은 명예의 전당 입성 연설에서 프로 세계에 발을 들인 후 세상의 인정을 받기 위해 자신이 겪었던

고난을 이야기했다. 마이클 조던은 시카고 불스 워싱턴 위저즈Washington Wizards에서 활약하며

역대 최고의 농구선수라는 칭호를 얻은 인물이기에, 그가 농구 실력 때문에 어려움을 겪은 적은 없었다.


조던은 선수 생활 초기에 수많은 언론 매체가 그를 다른 여러 선수와 끝없이 비교하고, 또 그가 결코 래리 버드(Larry Bird, 1980년대에 보스턴 셀틱스의 우승을 이끌고 NBA 정규리그 MVP를 3년 연속으로 수상한 백인 선수)나 매직 존슨(Magic Johnson, 1980년대에 LA 레이커스에서 활약하며 여러 차례 팀의 우승을 이끈 장신 포인트가드로, 래리 버드와 매직 존슨은 다재다능함의 상징이자 당대의 맞수로서 명성이 자자했다) 같은 승자로 남지 못하리라 못 박아 말했다고 회상했다.


# 저는 그렇게 온갖 억측과 비교의 말을 들어야 했고, 그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매일 더 나은 선수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움직이게 하는 연료가 됐습니다. 저는 여러분과 매직, 래리, 조지 거빈, 그리고 다른 모든 이에게 제가 다른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그 자리에 서도 마땅한 사람임을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제가 선수 생활 동안 그 목표를 의심할 여지없이 잘 완수했다고 믿고 싶습니다.#

그는 비판론자들 생각이 틀렸음을 증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어서 결승전 MVP상 5개와 NBA 우승반지 6개를 자신의 업적에 추가했다. 조던이 부와 명성을 막 손에 넣기 시작할 때 그의 재능을 알아챈 나이키 사람들은 재빠르게 후원 계약을 맺으며 1985년에 첫 번째 에어 조던 농구화 출시했다. 그 후로는 나이키에서 새로운 에어 조던을 발표하는 일이 일종의 연례행사처럼 자리 잡았다.


열정으로 시작해 꿈이 된 기업, 나이키 이야기 72페이지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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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에 걸친 소니 발전사를 되돌아보면 혁신 추구와 낭비 근절이라는 두 가지 정신이 ‘소니 신화’

창조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혁신을 추구하는 동시에 낭비를 근절하는 방식을 한 단어로

정확하고 간결하게 표현한 게 바로 ‘무결점’이다.


오래 전부터 무결점 생산관리는 제품의 품질 향상과 낭비 근절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관리방법으로

여겨졌다. 실제 무결점 관리는 소니 도요타 등 일본 기업은 물론 월마트, 나이키 세계적

기업이 도입해 널리 응용해왔다.




사실 무결점 생산관리라는 개념이 처음 만들어진 곳은이다. 무결점의 아버지로 불리는 크로스비 Philip B. Crosby는 1960년대 초 무결점 생산관리라는 개념을 창안하고 미국 기업들에게 적극 도입할 것을 권유했다. 하지만 당시 미국 기업가들로부터 큰 공감을 얻지 못했다. 본격적으로 유행하게 된 것은 일본 기업이 이 개념을 도입하면서부터다. 일본 기업은 무결점 생산관리 개념을 적극 받아들여 널리 응용하기 시작했다. 일본 기업들이 신속한 품질 향상을 통해 세계적인 수준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중요한

원인 중 하나가 바로 무결점 생산관리의 적극 활용이었다.


무결점 생산관리는 ‘결점 예방’이라고도 불리는데 인간이 가진 능동성과 자발성을 최대한 발휘하는 방식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생산에 참여한 직원들이 각자 맡은 직무를 진지하고 성실하게 완수함으로써 결점이나 실수를 최대한 줄이도록 유도하는 방법이다. 물론 최종 목표는 우수한 품질의 제품 생산이다.


미국에서 발표된 연구결과에 따르면, 무결점 생산관리를 도입한 기업에서 생산된 제품이 그렇지 않은 회사의 제품보다 품질 15퍼센트 가량 우수하다고 한다. 무결점 생산관리를 도입한 기업의 직원들은 다른 기업에 비해 책임감과 업무 적극성이 높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무결점 생산관리를 도입한 기업의 원가 절감율이 15~20퍼센트 가량 높다는 사실이다.



이들 기업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낭비의 최소화이다. 제품 시험, 검사, 디자인 변경, 수정, 애프터서비스, 품질보증, 반품처리는 물론 품질과 관련된 모든 비용을 효과적으로 줄여 낭비가 현저하게 감소하고, 원가가 줄었다. 또한 무결점 생산관리를 도입한 기업들은 고객서비스 분야의 지출이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처음부터 제품을 완벽하게 생산하기 때문에 결점 처리에 드는 비용과 시간이 크게 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어떤 기업이든 무결점 전략을 실천하면 절약 정신이 생겨나고 불필요한 지출은 준다. 또한 제품의 품질은 더 높아질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기업의 장기적 발전을 이룰 수 있다.



낭비를 이익으로 변화시키는 디테일 경영 42 페이지 본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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