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어록
높은 덕은 덕이 아니라 하니 이로써 덕이 있다고 하고, 낮은 덕은 덕을 잃지 않으려 하니 이로써 덕이 없다고 한다. 높은 덕은 하지 않으니 인위적인 것이 없고, 낮은 덕은 억지로 행하니 인위적인 것이 있다. 높은 인(仁)은 억지로 행하지만 인위적인 것은 없고, 높은 의(義)는 억지로 행하여 인위적인 것이 있다. 높은 예(禮)는 억지로 행하니 그것에 반응이 없으면 팔을 걷어붙이고 강요한다. 그러므로 도를 잃은 후를 덕이라 하고, 덕을 잃은 후를 인이라 하며, 인을 잃은 후를 의라 하고, 의를 잃은 후를 예라 한다. 무릇 예는 충(忠)과 신(信)이 얄팍해진 것이며 혼란의 시작이고, 먼저 아는 것은 도의 화려함이며 어리석음의 시작이다. 그런 까닭에 대장부는 그 두터움에 거하며 얄팍함에 머물지 않고 그 실속 있음에 거하고 화려함에 머물지 않는다. 그러므로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한다.
노자는 이렇게 말했다. 높은 덕을 갖춘 사람은 형식적인 ‘덕’을 추구하지 않으니, 이를 진정한 ‘덕’이 있다 한다. 낮은 덕을 갖춘 사람은 ‘덕’의 요구를 어기니 이는 진정한 ‘덕’이 아니다. 높은 덕을 갖춘 사람은 덕을 행하지만 덕이라 생각지 않고 무의식적으로 행한다. 낮은 덕을 갖춘 사람은 일부러 도덕을 추구하며 억지로 행한다. 높은 인을 갖춘 사람은 의식하지 않고 인애(仁愛)를 베풀며, 높은 의를 갖춘 사람은 일부러 인애를 표현하고 이를 행한다. 높은 예를 갖춘 사람은 일부러 도덕, 인애를 표현하되 만일 그를 이해하는 사람이 없으면 분노하며 도덕과 인애를 던져버린다.
그러므로 도를 잃으면 이른바 덕이 필요하고, 덕을 잃으면 이른바 인이 필요하고, 인을 잃으면 이른바 의가 필요하고, 의를 잃으면 이른바 예가 필요하다. 예라는 것은 사람이 충과 신의 뿌리를 잃은 후 남은 폐허와 같을 뿐이니 재앙의 시작이며, 총명한 사람이 주워 올린 도의 빈 꽃일 뿐이니 우매한 길의 시작이다. 대장부는 뿌리에 거하되 폐허에 머물지 않고, 열매를 따되 공허한 꽃에 미련을 두지 않는다. 스스로 선견지명이 있다고 여김은 도의 겉치레이며 우매함의 시작일 뿐이다.
노자의 경지는 참으로 높다. 천신만고 끝에 산에 올라 이제 다 올라왔다고 느끼는 순간 고개를 들면 더 높은 봉우리가 기다리고 있다. 앞에서 말했듯이 호의적으로 사람을 대하고 선의로 일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한데, 이제 보니 그것은 그저 도의 잔재일 뿐이니 말이다. 우리가 도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우호적으로 사람을 대하고 선의로 일할 필요성을 강조하지만, 사실 이는 부차적인 선택일 뿐 최선의 선택은 아니다.
그러나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해보면 노자의 말은 확실히 옳다. 사람이 도를 잃으면 자연의 규율을 알지 못하고 눈앞이 어두우니 덕의 불을 켜 마음을 밝혀야만 한다. 덕은 본심에서 우러난 진정한 선이다. 즉, 불가에서 말하는 ‘자신을 제도하고 남을 제도한다’, ‘스스로 이롭게 하고 남을 이롭게 한다’는 것이다. 이는 훌륭한 보살 정신이기도 하다. 자신을 크게 하고 자기 제도를 실현해야만 남을 제도한다 할 수 있고, 자신을 부양해야만 남을 구할 수 있다.
그러므로 덕은 선한 마음, 선행 행위뿐 아니라 지식, 지혜, 진취적인 정신 등 많은 것을 포함한다. 덕을 잃으면 밝게 비추는 것이 없으니 모두가 어둠 속에서 헤매며 부딪히고 넘어져 다칠 것이다. 그러므로 서로 부축하고 서로 도울 인이 필요하다. 다정함이 무엇이고, 선의가 무엇인가! 인이야말로 세 번째의 가치다. 많은 사람들이 사심을 품고 인애의 마음은 찾아보기 어려우니 타인의 고통을 본 체 만 체 수수방관하며 “자기 집 앞 눈은 자기가 치우고, 남의 집 기와의 서리를 상관하지 않는다”는 식의 태도로 일관한다. 이때가 바로 의가 필요한 때이다. ‘의’의 원칙은 같은 ‘도’로 서로 돕고 같은 ‘기질’을 서로 추구하는 데 있다. 여기에 이르니 이미 널리 베풀지 못하고, 몇몇의 대상을 겨냥하는 데 그친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의조차 갖추지 못하고 이롭지 않다.
그럼에도 의를 보고도 행동하지 않으며, 심지어 배은망덕하게 행한다. 여기에 이르면 사회의 인심은 필연적으로 혼란해지고 사방에서 다툼이 일어나니 어찌할까? 이때가 바로 예가 필요할 때이다! 예는 법률, 기율, 제도 외에도 예의, 예절 등 명문화된 규정이나 약정된 규칙을 포함한다. 요컨대 사회의 모든 행위를 총괄하는 종합규범이며, 영리한 사람들이 정한 ‘게임규칙’이다. 자발적인 선을 잃고 규칙으로 마음속의 악을 제약해야 한다면 사회가 어찌 혼란스럽지 않을 수 있겠는가?
노자는 결코 ‘법치’에 반대하지는 않았다. 다만 현상을 이렇게 묘사했다. 예는 다툼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이는 일시적인 방편일 뿐이다. 진정으로 도덕을 갖춘 사람은 법률의 제약 없이도 나쁜 일을 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의 제안 없이도 선한 일을 행한다. 이것이 바로 노자가 도덕을 제창하는 근본적인 목적이다.
- [왼손에는 명상록, 오른손에는 도덕경을 들어라] 중에서 -
독자리뷰 : 지하철에서 보는 자기계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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