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외출하는 길에 그냥 핸드폰으로 찍은 엄마 사진. 내가 무슨 일을 하고 돌아다니건 한번도 나에게 믿음을 저버리지 않은 당신. 물끄러미 사진을 보고 있자니 괜히 가슴이 먹먹해지네요.

돼지고기 삶을 때는 커피를 조금 넣으면 맛있다는 것 / 다쓴 고무장갑은 잘게 자르면 고무밴드가 된다는 것 / 다림질 할 때 스팀기에 린스를 아주 조금 넣으면 향긋하게 다릴 수 있다는 것 / 접착용 걸이를 이용하면 좁은 공간들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 / 남자에겐 잔소리 백번 보다 치켜 세워주는 한 마디가 훨씬 파워풀 하다는 것 / 어딜 가든 누군가 한 사람만 움직이면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 / 좋은 글이란 읽는 이의 마음이든 생각이든 움직일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 / 아빠처럼 그냥 한결같은 평평한 남자가 함께 살기 좋은 남자라는 것 

수백만 가지의 것들. 30여년간 살면서 필요한 건 다 엄마한테 배웠네요. 고마워요. 엄마.

사소하거나 하찮거나 약하거나 안 보이거나, 참 총천연색으로 느끼고 기뻐하는 사람, 엄마.  세월이 많이 흘렀는데도 엄마는 여전히 표정이 소녀같으시네요. 

이젠 속 깊은 딸이 되어드리고 싶은데.. 아직도 저 하고 싶은 것만 실컷 하고, 아까는 잔소리 싫어서 전화 끓으려고 바쁜척 했어요. 아시면서도 모르는척 하신거죠.. 죄송해요. 전 누굴 닮아 그렇게 잔소리 듣는 걸 질색할까요. 흐흑-

나의 껍데기, 엄마가 지켜주신 지붕 밑 온도 아래서, 불효막심한 가스나는 당신의 알맹이로 오늘도 살아요. 내 안에 나도 어쩔 수 없는 GR맞게 못되먹은 승질도 엄마의 선한기운 덕에 평온을 찾아요.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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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두기 2005-12-03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마가 진짜 많은 걸 가르쳐 주셨네요. 그래서 님이 그렇게 예쁘구나^^
(근데 뭐, 엄마 사진 올린 거 아녜요? 암것두 안 보여요)

아밀리 2005-12-03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 올리기 계속 실패해서요. 글도 막 사라지구요.
왕초보 알라디너 적응이 힘드러요 -_-;;;;

깍두기 2005-12-03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봤어요.
아밀리님이 어찌 그리 미인인가 했더니!

2005-12-03 17: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밀리 2005-12-04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깍두기님/ 그 미인, 미녀란 소리, 알라딘에 들은 게 평생을 들은 것보다 훨씬 많아요.^^ 그런데 가만 지켜보니, 알라딘 입문이 곧 미인 등극이란 달콤한 공식을 눈치챘답니다! 물론 1%, 0.1 %, 초절절 등등 세부분류가 또 있겠지만요~ ㅋㅋㅋ

속삭이신 스노우드롭님/ ㅎㅎㅎ 왕초보 알라디너에게 실물교수로 서재 주인에게만 보이기 기능을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배웠으니 연습하러 님 서재 가야겠군요. 속닥속닥... :)
 

얼굴만 보고 목례하는 관계. 하루에 보통 열 댓번. 아는 듯한 얼굴이거나, 간단한 인사 정도 하는 사이. 참 많다.

적당히 응수하고 거리두고 웃는 관계. 그가 슬프다고 해서 나까지 완전히 슬퍼지지는 않는. 대략 나이스하고 쿨한 척하면 설정도 먹히는 사이. 내가 언제 슬픈지 기쁜지 말할 필요 없을 사이.

평가하는 관계. 대학 이후 만난 친구들 대부분이 여기 속하지 않나 싶은데. 친한척 공감하는 척하기도 하고, 때로 진심이지만 참도 거짓도 아닌 그 진심 속에서, 조금 촌스럽게 행동한다 싶으면 매끈하게 미끄러져 한 걸음 뒷걸음질 치는 사이. 따뜻한 듯 싶은데, 내 행동 하나하나가 알고보면 대개는 채점당하고 있는. 관심사 다르고 얘기 수준 안맞는다 싶으면 바로 차가움이 느껴지는. 적당히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 듣고 싶은 얘기를 중심으로 연결되는 사이.

뭐, 그래서 슬프다는게 key sentence는 아니고. 갑자기 사람과 사람의 관계, 촌스러운 끈끈함의 가치가 그리워서. 내가 땡깡부리면 바보야! 라고 버럭 소리지르더라도 충분히 촌스럽거나 유치할 수 있었던 그런 이름들이 그리워져서.

언젠가, 내 손에 지하철 패스를 쥐어주던 교회 언니. 공부 열심히 하라고. 가방 끈 잔뜩 긴 사람들 사이에서 느끼기 어려운 그런 긴장 없는 포옹. 정말, 가슴과 가슴이 닿는 것 같은. 그 온기. 그 표정. 그 눈물....

언젠가, 결혼하고 싶은 사람에 대한 나름애 잣대로 가족 사진에 대입해 보아 그림이 그려지는가. 다정하게 말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따뜻한가. 미운짓을 해도 그냥 이쁘게 보이는 때가 많을까. 내가 50점짜리 행동 하고도 내 편이니까 그냥 안길 수 있을까. 평생 말이 통하는 좋은 친구가 서로에게 되어줄 수 있을까. 정도를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사람에 대해 기대를 하지 않는다고 해도 내 편이란 그런 것일 텐데... 몇 장면이 자꾸 마음을 건드려서 울컥하기도 생각하게 하기도 하는 그런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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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5-12-03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건 몰라도 님이 슬플 때 같이 공감해주는 그런 사람이 되어드릴께요.

아밀리 2005-12-03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 리플, 장기메모리에 찰칵- . 단, 술과 댄디가이 빠진 공감은 무효랍니다. : )

깍두기 2005-12-03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술은 마태님이 어째볼 수 있겠는데, 댄디가이는.....=3=3=3

마태우스 2005-12-03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 댄디가이..... 으음, 역시 난 깍두기님이랑 놀아야겠다...놀아주실 거죠 깍두기님?

아밀리 2005-12-03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그런 걱정을.'치사량의 알콜'은 마태님을 댄디가이로~ 그러니, 술만 넉넉하게 사세요! 음..첫눈 오는 날 심히 울적함이 예상되오니, 깍두기님과 스노우드롭님과 함께 슬픔을 공감해주시길. :)
 

 

11月 그 저녁에 - 양희은 노래, 이병우 기타

 

누구를 부르듯 바람이 불어오면

나홀로 조용히 노래를 불러본다

잊어버린 먼 친구들을

찾고싶은 먼 얘기들을

내 작은 노래에 불러본다

 

꿈꾸듯 아득히 구름은 흘러가고

떠나간 친구의 노래가 들려온다

산다는 것이 뭐냐하던

사랑이 모든 것이냐던

누가 내게 대답해 주냐던

인생, 참 어려운 노래여라

 

비가 내릴 듯 젖은 바람 불어오면

지나간 날들의 내 모습 떠오른다

되돌아갈 수 없는 시절

되묻지 못할 너의 얘기

말없이 웃어야 했던 날들

 

서러워 우는 듯 나직히 비 내리고

쓸쓸한 미소가 입가에 스쳐간다

나의 어제가 그랬듯이

나의 오늘이 이렇듯이

혼자서 걸어가야만 하는

인생, 참 외로운 여행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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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 에 꽂혔다. 그의 책을 모조리 사들이고 며칠간 은둔하며 읽고 있다.

'불안' , '우리는 사랑일까' ,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 '여행의 기술'

올해의 발견 군내버전이 박민규였다면 해외버전은 알랭이다. 새로운 문체를 맞딱드리는 일은 갓 인쇄해 나온 책 냄새와 더불어 매우 알싸하다.

아주 사소한 현상이나 감정도 철학적인 논리력으로 분석해 보면 매우 새로운 시점이 된다. 세상엔 천재들이 너무 많다.

규칙적인 운동을 하며 체력을 강화하고, 필라테스로 마음을 정화하고, 내가 좋아하는 책을 실컷 읽고, 가벼이 먹고, 산과 들을 다니며 좋은 것들과 호흡하며, 내 마음속 사람들이 하는 말에 귀기울이고 그들을 상상하며, 열정을 다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마음과 생각과 온기를 같이 나눌 사람 하나만 있으면....

그러면 나는 행복하겠다. 이보다 더 바란다면 나는 불행하다.

역시, 행복은 거창한게 아니라 바로 내 옆에서 언제나 나를 보고 미소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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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2호선을 타려고 계단을 내려가는데 출근시간, 어찌나 사람이 많은지. 그 와중에 한 노인이 날카로운 짜증으로 소리친다.

"좌측통행들 하란 말이야, 좌측통행들! 이런 무식한 새끼들 같으니!!"

아침에 잘 씻어 쫙-펴고 집을 나선 마음들이 확 구겨지는 소리. 문자적 이미보다 그냥 인생이 참 뭔가 안풀렸나보다 싶은 울분에 찬 꼬장꼬장한 표정과 말의 에너지 때문이겠지. 여유와 상식과 이해로만 보일 사람들 마음의 소중한 좌측통행은 당신이 방해해 놓고, 아마 안 보이셨을 테니.

미소가 근사한 어른. 젋은 날의 열정과 노력이 경험으로 이해되어 여유롭고 지혜로운 조언을 주는 그런 어른이 되어야 할텐데.

누구에게든 자기중심적 이기적인 어른이 되지 않으려면 자신과 참 많이 싸워야 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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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나 2005-11-30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사회가, 특히 아침 시간의 지하철 출근은 힘없는 노인이나 약자들에게는 공포스러울 수 있다는 생각은 들어요. 정신없잖아 ㅋㅋ 그래도 여유를 잃지 않는 로맨스 그레이로 늙고 싶어요.. 암튼 그 바람에 '아침에 잘 씻어 쫙-펴고 집을 나선' 언니의 '마음이 확 구겨지' 지는 않았는지 그렇지 않았기를 바래요..

야클 2005-11-30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좌측통행도 하고, 멋있게 곱게도 늙어야겠습니다. ^^

아밀리 2005-12-01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nowdrop/ 링클 프리하려는 데 그게 잘 안되네. : )
야클님/ 네, 저도 할머니 멋지게 되는 법을 연구 좀 해볼려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