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한정판 더블 커버 에디션)
알랭 드 보통 지음, 김한영 옮김 / 은행나무 / 2016년 8월
평점 :
품절


남편의 생일을 하루 앞두고 투견판에서 사슬 풀린 개처럼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일주일이 지난 지금, 무엇 때문에 목청을 돋웠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질 않는다. 생일날 아침, 나는 알랭 보통의 책에서 발췌한 문구로 시작하는 손글씨 편지를 휘갈겼다. 생일을 축하하는 건지, 똑바로 하라는 건지, 경계가 모호한 문구를 적어내려갔다. 결혼 8년차 남편의 생일은 그렇게 비수 아닌 비수를 꽂으며 시작되었다.


오랜만에 무릎을 치며 보통의 글을 읽었다. 반백이 모자란 나이가 보통은 이십 중반 똘똘이 스머프 같은 명석함으로 사랑을 프레임씩 끊어 찍은 듯한 데뷔작에서 어느덧 인생의 지혜나 깨달음 같은 느끼게 만큼 연륜이 묻어나는 글을 써냈다. 그의 책을 완독한 주가 지난 지금, 주옥과 같은 문장들은 모두 휘발되어 흔적없이 사라졌다. 인생이 그렇다. 마음 먹은 대로 되는 법이 없다. 읽고 쓰는 부지런히 해보자고 시작한 서재질도 회사에 긴급 프로젝트가 떨어지면 모든 올스톱이다. 괜시리 쉬지 않고 읽고 쓰면서 살아온 보통에 대한 질투심만 화르르 불타오른다.


잊어버릴까봐 사진 찍어 남겨둔 페이지에서 휘발되지 않고 남은 문장을 찾아냈다

새벽 3, 그는 이상하리만치 냉철한 기분으로 자신의 잘못을 나열해본다. 상사들의 불신을 유발하는 괴팍한 , 너무 쉽게 화를 내는 , 거절이 두려워 조심하는 ….. 그는 자신 있게 어떤 일에 매달려본 적이 없다. 그의 나이에 다른 사람들은 요청이 들어오길 기다리고 절실히 요청하지 않는다며 세상을 비난하는 대신, 팔을 걷어붙이고 그들 손으로 건축 회사를 세웠다. 그의 이름이 새겨진 건물은 하나, 하트퍼드셔의 어느 자료 보관 시설밖에 없다. 그는 샤워를 하거나 혼자 고속도로를 달릴 머릿 속에 떠오르는 순간적인 영감으로만 남았을 , 대부분 발휘되지 못한 재능과 함께 죽어가고 있다.

순간 그는 자기 연민, 그에게 일어난 일이 드물거나 부당하다는 얄팍한 믿음을 벗어났다. 자신이 순수하고 유일무이하다는 믿음도 어느새 잃어버렸다. 이건 중년의 위기가 아니다. 그보다는 마침내 30 년이나 늦게 사춘기를 벗어난 것이다.”


마흔이 넘어 시작된 질풍노도의 시기가 사춘기냐 오춘기냐를 두고 설왕설래 했는데, . 사춘기 막바지 진통이었다니! 허를 찔린 기분이랄까. 자신이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이 아니라 많고 많은 조약돌 하나라는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것이 어른이 되는 것인가. 어른이 된다는 그렇게 슬픈 일일까. 나이 마흔이 넘어서도 어른이 되지 못해 밤마다 신열에 들뜨고 마는 어린 중생은 무슨 수로 구원을 얻을 있을 것인가. 난감하다.


남편 , 결혼은끊임없이 서로의 다름을 확인하고, 상대를 인정하는 법을 배우며, 이해의 폭을 넓히며 동지가 되어가는 이란다. 보통이 정의한 결혼 - 자신이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가하는 대단히 기이하고 궁극적으로 불친절한 행위 - 보다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 괜찮은 남자와 살고 있는 거다. 종종 불타는 적개심을 돋게 만드는 남자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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