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ly Imperfect: The Art and Soul of Yoga Practice (Hardcover)
Baron Baptiste / Hay House / 201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Perfectly imperfect” 이 아름다운 제목을 과연 어떻게 우리말로 옮겨야 할까. <나는 왜 요가를 하는가?>와 같은 선언문 같은 느낌은 아닌데 말이다. 왜 요가를 하냐고 물으면, 글쎄, 조금이라도 몸에 좋은 일을 하고 싶어서? 정도로 답하고 말지, 거기에 뭔가 대단한 의미를 붙여서 요가의 장점을 늘어놓고 싶진 않다. 왠지 그러는 게 참다운 요기의 모습 같지 않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때문이랄까.


요가를 하면서 가장 울컥(?)했던 순간은, “마음을 따라가지 마세요. 호흡을 따라가세요. 마음을 먼저 보내지 마세요. 몸을 먼저 보내세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다. 후굴을 할 때나 전굴을 할 때나 뭔가 몸과 대결하듯이,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하면서 근육을 찢는 게 마치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반드시 참고 견뎌야 할 뭔가나 되는 듯이 굴다보면 요가가 정말 짜증스럽다. 가뜩이나 힘들고 지치는 데 몸마저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이중의 실패감. 도대체 나의 인내는 어디까지 지속되어야 하는 것인가, 하는 한없는 절망감.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조급하게 빨리 오르려고 하는 마음 탓이라는 건 조금만 상황을 빠져나와보면 알 수 있는 사실(The more we are in a hurry, the more our growth will be delayed). 매트 위에서 앞서가는 마음 대신 호흡을 따라가라고, 마음 대신 몸을 따라가라고 속삭여주는 순간 내 몸을 꽉 움켜쥐고 있던 족쇄 같은 게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고나 할까. 그 순간의 아하, 하는 느낌이 일상 속에서도 보이지 않는 힘을 발휘하는 걸 느끼는 건 또 역시 나만 아는 비밀 같은 거였다. 


요가가 참 좋은데,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가 없네, 하던 중에 요가 선생이 보다 덮어놓은 책을 훔쳐보고 찾아봤더니 좋은 영어 문장이 있어서 영어 원서로 읽기 시작했다. 아마 이걸 한글로 읽었으면 좀 오그라들었을 수도, 정확한 느낌을 얻지 못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워낙 간결하게 문장을 표현해놓아서 그 경제적인 표현이나 (perfectly imperfect라니!) 정확한 문장 구조는 영어 공부하기에도 더없이 훌륭한 교재였다. 읽고 읽고 또 읽고 다시 음미해보아도 역시나 너무 좋은 문장들. 의욕 같아선 책 전체를 싹 외워버리고 싶은 욕망이 드는 책. 


저자는 다시 그 욕망을 아주 쉽게 지적한다.


Letting go and surrendering to flowing gives you access to powerful new possibilities for expansion and mastery.


Yoga practice is distinct from most other personal growth methods because it comes from the premise that what you seek is already within you and won’t be found by attaining some outer goal. 


Do it from where you are and not where you wish you were.


If we look deeper and stop expecting anything outside of ourselves to fulfill us, we experience a fundamental shift in our relationship to ourselves and our practice.



평생 바라는 나와 현실의 나가 주는 간극을 메우느라 허덕이며 살았다. 읽어도 읽어도 성에 차려면 멀었고, 해도 해도 나보다 앞선 사람이 너무 많았다. 바라는 게 적었다면 가랑이라도 무사했을 텐데, 하고 싶고 되고 싶은 것이 많아 몸이 고달팠다. 일 중독 소리를 들으며 운 좋게 승진을 해도, 뭔가 더 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좀 쉬고 싶다는 몸의 아우성 사이에서 해소되지 않는 불안에 시달렸다. 어쩌면 그 당시의 내가 요가원을 등록한 건 그저 살고자 하는 본능적인 선택과도 같았다. 하지만 요가의 본질이 뭔지는 잘 몰라도, 이건 아닌데(그저 어떻게 하면 그 동작을 할 수 있는지에만 집중하는 피트니스에 온 것 같은 느낌), 하는 느낌이 드는 요가원들에서 실망한 나머지 그저 약간의 스트레칭 정도로 요가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지 못한 채 오랜 시간이 흘렀다. 


요즘 나는 매일 요가원에 간다.


뭐 대단히 훌륭한 요가원은 아니다. 다만 체인이 아니고, 그래도 경력이 좀 있는 원장이 운영하고, 다양한 강사들이 수업을 진행하고, 각 강사마다 스타일이 있어서 이래저래 보완되는 면이 있다는 게 장점. 요가 강사들이 많이 오는 학원이라 그런지 전반적인 수준이 꽤 높아서 까마귀 자세 못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게 장점인지 단점인지 헷갈리는 곳. 여전히 요가를 뭔가 수단으로 여기고 더 나은 자신을 뽐내기 위한 어떤 열기와 욕망이 함께 일렁이는 곳. 하지만 그런 외부적인 조건으로부터 내가 조금이나마 자유로워진 건 이 책의 도움이 크다.


When the head wants something, it will never go directly, it will zigzag, or spin in a whirlpool as it considers pros and cons, pathways and obstacles. But the whispers from the heart are always authentic and signualr in their focus. The heart knows what it wants.


When we think we’ve “arrived,” it is typically because we think we understand something. We know it and can handle it. But as Mr. Iyengar showed through his own practice, when you have mastered something, instead of you doing it, it does you.



늘 머리가 앞서는 삶을 살았다. 행동하기 전에 생각을 먼저 해야한다고 배웠고, 생각이 깊어지는 걸 성숙이라고 생각했다. 뭔가 감각하고 행동하기 전에 먼저 사고하고 머릿속의 지도가 그려져야 이해했다고 여기고, 이해해야 안다고 여겼던 것 같다. 그래서 아마 책을 좋아했는지도 모르겠다. 책 속에서는 기승전결이 완벽하게 아귀가 맞아들었으므로. 논리적 비약이나 커다란 구멍도 텍스트 안에서 이래저래 깁거나 조물닥거리는 되는 문제였다. 하지만 현실은 앞뒤가 맞지 않았고, 나쁜 사람이 벌 받지도 않았으며, 커다란 구멍은 아무리 메우려해도 감당이 되지 않았다. 끊없는 허기와 불안은 어쩌면 인간의 숙명이라고 여기는 게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맨발로 학교 운동장을 걷고, 두 팔을 벌리고 쏟아지는 장대비를 맞으며, 연초록 나뭇잎에 온몸이 떨리고, 담장 너머 늘어뜨린 장미꽃 봉우리에 감격하던 때가 그리운 건 여전히 내 안에서 그렇게 자연과 연결되고 싶은 본능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회색 건물에 갇혀 하루 종일 의자에 허리를 붙이고 앉아 모니터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정신이 흐려질 때마다 독한 커피로 일깨우고 다시 조용히 자판을 두드리는 건 인간의 생리에 몹시나 반하는 일이다. 더구나 내가 원하는 감금이 아닌 환금을 위한 대가라니. 오로지 팔 수 있는 건 자신의 노동력밖에 없을 때는 더욱더 서글퍼지는 일. 


If we are not connected to and in deep communication with our body, we are not in contact to the earth and the focus of nature that we are meant to be in tune with. Once you allow yourself to be where you are, you will get rooted in your body. From there, anything and everything becomes possible. 



요가는 그렇게 끊어진 내 몸과 대화를 복원하고, 놓치고 있는 자연과의 소통을 회복하는 일이다. 자연이 매순간 변화하듯 내 몸은 늘 한결같지 않다. 세심하게 나의 몸을 살피고 내 의지대로 강요하거나 밀어붙이지 않고 늘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 목표한 것을 위해 분투함으로써 애써 불안감을 해소하려고 하는 우리들에게 작가들 들려주는 한 마디는 슬프도록 아름답다.


I am not sure where I am going exactly but I am doing my best.


If we can let go of the habit of running all the time, and take little pauses to relax and re-center ourselves, we’ll also have a lot more joy in living. 



목표란 것이 과연 어디서 왔는지, 머릿속에서 왕왕 울려대는 소리들이 과연 어디서 왔는지, 나는 나를 정말 제대로 보고 있는지, 나는 세계를 정말 왜곡없이 보고 있는지, 요가를 하다보면 그런 복잡한 형이상학적 문제들이 굉장히 단순한 어떤 실체로 만져지고 보여진다. 자세를 하고, 내 몸을 감각함으로써. 내 호흡을 듣고, 나를 가만히 내려놓으면서. 그리고 내가 설정한 어떤 단계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어떤 흐름에 함께 동조되는 느낌이 드는데, 그게 아주 기분이 좋다. 


Just be straight with yourself here without judgement. When you really get to the idea that being exactly where you are is the key that’s when you step outside the box you’ve been in. 


Transformation didn’t happen out of doing more, or trying harder, but rather through a total surrender to the flow of life and energy that was already available to her. 



내가 뭔가 잘못을 할 때마다, 실수를 할 때마다, 머릿속에서 꾸짖는 소리는 여전히 왕왕 댄다. 하지만 예전보다 훨씬 소리가 줄었다. 영어로 말하다 시제나 단복수 같은 기본적인 걸 실수하면 그렇게 내가 싫었다. 시험문제에 나오면 거뜬히 알아맞히는 문제를 왜 제대로 말하지 못하니? 하면서. 영어선생이 정색을 하며 지적을 할 때는 얼굴이 빨개지도록 부끄러웠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한다. 그 애송이 영어선생이 완전 틀렸고, 언어는 그렇게 틀리면서 배우는 거라고. 우리는 시험문제 정답 맞추는 거에 익숙했지 영어를 일상어처럼 쓰는 훈련은 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이제라도 아이처럼 영어를 배우는 재미에 흠뻑 빠져 있으니 충분히 즐기면서 많이 실수하다보면 지금보다 아주 나아질 수 있을거라고. 그렇게 나를 인정하고 두둔하고 껴안아주면 다시 방긋 웃고 뭔가 새롭게 할 힘을 얻는다. 머리서기 자세하다 미끄러진 다음 다시 자세를 잡을 때처럼. 


Savasana isn’t the end of my practice, it’s actually a new beginning.


Ultimately, it’s a journey to the core of your own being. In the work of yoga, the outer point of the body is the doorway to access that which you are seeking within you. The work is to keep peeling away the layers of the onion to get to the heart of you. The work to be done is to remove the layers that cover it.


So forget being a “real yogi”, and just be the yogi you are. Be simple, open, and straightforward about what matters to you and what you are working on. The true reward of yoga practice comes when we are courageous enough to step out from behind that mask and expose our brilliant, flawed, utterly human selves.


Hiding behind a mask costs us so much and leaves us with so little.


멋진 사람이 되고 싶고 더 나은 인간이 되고 싶다. 멋있게 보이려고 SNS에 몇 번이나 각도를 틀어 다시 찍은 사진을 올리고, 쿨한 척 하려고 하이쿠처럼 짧게 글을 다듬는다. 디지털 네이티브가 아니어서 그런 것에 익숙하지도 않지만 그런 나를 보는 것도, 그런 사람들을 보는 것도 몹시 불편하다. 필요에 의해 뭔가 팔아야 하고, 알려야 할 때도 마찬가지다. 굳이 거짓 퍼르소나를 만들고 날라야하는지 거대한 트랩에 갇힌 먹잇감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누군가 좋아요를 누르지 않아도 괜찮을 수 있는 능력. 누가 좋아요를 누르고, 누가 코멘트를 달았는지 조바심나게 뒤져보지 않을 수 있는 능력. 우리는 그 거대한 트랩에 갇혀 그런 능력을 잃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뭔가 대단한 것을 이루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날마다 세수하고 샤워하고 달리기하고 밥 먹듯이 읽고 쓰는 것. 그리고 그것 자체에 갇히지 않는 것. 온전히 감각하고, 진심으로 소통하고, 귀 기울여 듣는 것. 어쩌면 그게 요가의 본질이 아닐까 제멋대로 정의해본다. 


It is determined by what we tell ourselves.


We create our reality through what we say both aloud and to ourselves.


We are always constructing results out of what we 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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