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탄생 - 초롬, 밤비, 태양, 샤샤, 놀, 단풍, 초달, 밍키, 그리고 은선과 희철
김은선 지음 / 모비딕북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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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중 가장 행복한 순간을 꼽으라고 하면 단연코 덩치 큰 무명이(래브라도 리트리버 3년 8개월)를 안고 자고, 안고 일어나는 순간이다. 따뜻한 겨드랑이 사이로 손을 쑤셔넣어 온기를 느끼고, 허벅지를 사타구니에 넣어 일체가 되는 순간 '좋아 좋아'하는 세포가 감돌며 온몸이 기쁨으로 넘실거린다. 백허그도 좋고 마주보고 껴안는 자세도 좋다. 서로의 체온을 느낄 수만 있다면. 아마도 그 순간이 포유류가 느낄 수 있는 극상의 행복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가족의 탄생>을 쓴 김은선 작가는 남편 채희철과 함께 한때는 여덟 남매, 지금은 여섯 남매의 냥이들과 함께 살고 있다. 알콩달콩 고양이와 살아가는 행복한 일상을 자랑질(?)하는 책인 줄 알고 무심하게 펼쳤다가 그만 훅 눈물이 끼쳐 놀라는 바람에 한달음에 읽어내려가고 말았다. 흡사 무협지를 읽는 듯 여덟 마리 고양이가 중원을 쟁탈하기 위해 어떤 전략을 쌓아 마침내 어떻게 자신의 입지를 다지는지 눈앞에 아스라히 펼쳐진다. 울리다가 웃기다가, 단짠단짠하는 게, 처음엔 낄낄거리다가 결국 폭소를 터트리고, 지르르 감동마저 훑고 가게 만드는 요상한 책. 


당뇨 판정 받은 태양이를 살리기 위해 국내외 반려동물 의학 커뮤니티를 뒤져 직접 생식 레시피를 만들고, 건강한 식재료를 구하기 위해 전국 유기농 닭 농장을 뒤져 직접 뼈를 가르고 살을 발라 병든 아이들을 보살피는 정성. 우리는 그걸 '극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개나 고양이를 유별나게 살뜰하게 보살피는 사람들에 대한 시선도 곱지 않다. '그럴 정성 있으면 지 식구들한테 더 잘하지.' 주위 사람들보다 자기 고양이, 개한테만 유난떠는 이들에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사람도 많다. 그래서인가. 우리나라 캣맘 캣대디는 외롭다. 한때 북한 동포들에게 식량을 보내는 걸 가지고도 많이들 그런 소리를 했다. '우리나라에 어려운 애가 얼마나 많은데!' 


간디가 그런 말을 했던가. 동물에 대한 태도를 보면 그 나라의 수준을 알 수 있다고. 한 사회가 약자들을 어떻게 대하는지가 동물에 대한 태도에 고스란히 보인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아프고 병들고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그래야 마땅한' 존재로 치부하고 배제하는지, 아니면 도움과 돌봄이 필요한 존재로 기꺼이 '사회 안'으로 받아들이고 양생할지는 늘 중요한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 나와 다른 존재를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인데, 하물며 아프고 병들어 내 몸이 고달파지는 사랑이라니. 이 두 부부가 고양이와 맺는 관계는 그래서 어느 순간 숙연해지게 만든다. 나는 과연 우리 무명이를 그렇게 사랑할 수 있을까.


인간의 눈에 가족은 혼인이나 혈연으로 만들어진 관계다. 그래서 고양이 가족도 어미와 자식 간의 관계만으로 한정해 보게 된다. 그러나 내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길고양이에게 가족은 보다 폭넓고 확대된 개념이다. 새끼들을 보살피고 젖을 먹이는 생물학적 친모는 있지만 양육은 고양이 공동체의 몫이다. 모든 고양이는 다음 세대를 보호하고 공동으로 양육을 책임진다. (P 61)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선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는 말을 우린 종종 잊고 산다.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심함, 할아버지의 경제력'만 운운할 줄 알았지 누군가를 사회의 일원으로 키워낸다는 일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못한다. 생존경쟁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더 나은 대학을 가고, 더 좋은 직업을 구하기 위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골인지점에만 가면 된다고 생각한다. 괴물이 되든 뭐가 되든. 포유류가 어떻게 공동체를 유지해왔고, 어떻게 사회화 교육을 시켰으며, 어떻게 양육을 책임지는지. 우리가 잊고 살고 있는 '생명을 대하는 자세'가 어떤 것인지 이 부부는 몸으로 웅변하고 있다. 과연 우리가 만물의 영장 행세를 하며 점거하고 있는 이 지구는 누구의 것인가. 온전히 사랑한다는 것은 과연 어떤 것인가. 우리는 과연 온전히 사랑할 수 있을까.


부부는 매일 고양이들을 통해 연대를 배운다고 말한다. 이 소수민족의 연대는 과연 얼마나 단단히 오래 지속될 수 있을까. 이 책을 읽으며 나도 손을 번쩍 들고 이 연대에 동참하기로 했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자행되는 무수한 폭력과 가족이란 이름으로 합리화되는 이기주의에 자신있게 '노'라고 이야기하기 위해. 새로운 가족의 탄생을 꿈꾸는 무수한 소수민족을 향해 아낌없는 응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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