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 문정희

 

아버지도 아니고 오빠도 아닌
아버지와 오빠 사이의 촌수쯤 되는 남자
내게 잠 못 이루는 연애가 생기면
제일 먼저 의논하고 물어보고 싶다가도
아차, 다 되어도 이것만은 안 되지 하고
돌아 누워버리는
세상에서 제일 가깝고 제일 먼 남자
이 무슨 원수인가 싶을 때도 있지만
지구를 다 돌아다녀도
내가 낳은 새끼들을 제일로 사랑하는 남자는
이 남자일 것 같아
다시금 오늘도 저녁을 짓는다
그러고 보니 밥을 나와 함께
가장 많이 먹은 남자
나에게 전쟁을 가장 많이 가르쳐 준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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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墨 정원 9

-번짐

                               / 장석남

 

번짐,

목련꽃은 번져 사라지고

여름이 되고

너는 내게로

번져 어느덧 내가 되고

나는 다시 네게로 번진다

번짐,

번져야 살지

꽃은 번져 열매가 되고

여름은 번져 가을이 된다

번짐,

음악은 번져 그림이 되고

삶은 번져 죽음이 된다

죽음은 그러므로 번져서

이 삶을 다 환히 밝힌다

또 한번-저녁은 번져 밤이 된다

번짐,

번져야 사랑이지

산기슭의 오두막 한채 번져서

봄 나비 한마리 날아온다

 

 

장석남 시집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 중에서 (창비시선 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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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타임리프를 떠올렸던 나는

그 회의실에서 leap이라고 단정해버렸다.

시간을 과거-현재-미래로 종횡무진하던

마사코의 그 도약을, 좌충우돌하던 순환을 떠올린 건

내 처지에 감정이입이 되었던 거다.

그런데 정작

나무와 잎사귀라니, 이렇게 간명할 수가...

 

도통 눈에 들어오지 않던 매뉴얼과

토요일 오후는 내주어도 평일 저녁시간을 내어주지 않는 사수.

물론 내가 요구하지 않아서 그랬을 것이다.

 

찾아오는 사람에 종속되는 구조가 아니다 보니

분명히 물리적인 여유가 맴돌고 있었다.

다만, 심리적 여유가 자리잡지 못했던 거다.

 

여튼,

토요일 잠시 나와서 한숨쉬다 가고

(그래서 모비스 대 KT&G의 프로농구 정규리그 안양경기를 포기했다.)

금월화 사흘의 결과물로 데이터를 넘기고,

오늘 오전 2개의 오류사항을 바로잡고

오후엔 검토엑셀을 돌리면서

순간순간 가슴을 쓸어내린다.

어딘가 크게 틀리지 않을까, 틀리는 게 정상이 아닌가 하는 배포도 들고 말이지.

아직 구조가 익숙하지 않은데, 왜 이렇게 만들어야 했을까를 고민하는 선을 넘고 있는 중이다.

 

과연 다음주 금요일엔 어떤 후폭풍이 있을까? 설마 무폭풍?

 

이번 주말을 모처럼 화통하게 잘 보내야 쓰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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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통해서 두식씨의 여러 저서를 다채롭게 훑어보게 되면 좋겠네.

요즘 들어 <창문>에서 에세이 보는 게 좀 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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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은 왜 아무리 늙어도 자식의 얼굴을 가질까?'

그러자 뜻밖에도 방금 전까지 쩔쩔맸던 문제의 실마리가 떠올랐다.

'사람들은 왜 아이를 낳을까?'

나는 그 찰나의 햇살이 내게서 급히 떠나가지 않도록 다급하게 자판을 두드렸다.

'자기가 기억하지 못하는 생을 다시 살고 싶어서.'

그렇게 써놓고 보니 정말 그런 것 같았다. 누구도 본인의 어린시절을 또렷하게 기억하지는 못하니까, 특히 서너살 이전의 경험은 온전히 복원될 수 없는 거니까, 자식을 통해 그걸 보는 거다. 그 시간을 다시 겪는 거다. 아, 내가 젖을 물었구나. 아, 나는 이맘때 목을 가눴구나. 아, 내가 저런 눈으로 엄마를 봤구나, 하고. 자기가 보지 못한 자기를 다시 보는 것, 부모가 됨으로써 한번 더 자식이 되는 것. 사람들이 자식을 낳는 이유는 그 때문이지 않을까?

 

 

김애란 <두근두근 내 인생> (창비, 2011) 79-80쪽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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