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은 누적이지 대박이 아니다. " 

진대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입대하기 전에 이런 일을 꼭 해보자-의논 끝에 결정된 것은 먼저 <아보가드로 습격>이었다. 아보가드로는 고등학교 때의 선생인데, 일단 죽이고 법원에서 이유를 설명하면-판사에 따라 무죄판결을 받을 수도 있을 만큼 죽일 놈이었다. 왜 아보가드로인지에 대해선 잘 모르겠다. 아무튼 선배들이 그렇게 불렀으므로, 우리도 아보가드로라고 불렀다. 패자. 결론은 만장일치였다. 

 자존심이 병적으로 강한 변태였기 때문에 아마도 고소 같은 걸 절대 할 리 없다고 생각했다. 무릎을 꿇고 우는 모습을 디카로 찍어두자는 얘기도 나왔다. 태엽이라도 감긴 듯 행동반경이 정해져 있는 인간이어서 습격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약속장소에 에릭과 金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정도였다. 둘이서 해치우자, 재이가 얘기했다. 꽁초를 끄고 고개를 끄덕이는데 골목 저편에서 아보가드로의 냄새가 풍겨왔다. 위선과 부패, 교만과 교활, 비굴과 비리가 뒤섞인 지옥의 향(香)이었다. 

 니... 들은, 하고 아보가드로는 멈칫했다. 극히 짧은 순간이었는데, 놈의 머릿속에서 쥐 같은 게 빠르게 돌아다니는 소리가 들렸다. 우두둑, 뒷짐을 쥔 상태로 재이가 손가락 마디를 꺾었다. 놈이 도망칠 때를 대비해 나는 언제라도 뛰쳐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니들, 하고 아보가드로가 헛기침을 킁킁했다. 머릿속을 돌아다니던 쥐 같은 것이 그 순간 자세를 바로잡는 느낌이었다. 놈은 뜻밖에도 뒷짐을 지더니 고압적인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래, 취직 준비는 잘들 하고 있냐? 

 그건 아니고... 갑자기 재이가 고갤 숙였다. 이상하게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다리에 힘이 쑥 빠지는 느낌이었다. 찾아와줘서 고맙다, 어깨를 치는 아보가드로를 따라 결국 놈의 집까지 가게 되었다. 고마워요,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아보가드로의 사모는 이 죽일 놈과 기꺼이 살아줄 만큼 친절한 여자였다. 함께 밥을 먹고, 하하, 오락프로를 보고, 웬일인지 초등학교 2학년 딸내미의 숙제를 열심히 도와주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하는 우리를 향해 아보가드로는 수제자란 표현을 쓰기도 했다.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알겠지? 알겠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일에 대해,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 

 사람을 때리는 건 힘든 일이다.  

 

박민규 소설집 side B, 122-123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음의 달   
                          
  / 천양희 


가시나무 울타리에 달빛 한 채 걸려 있습니다 
마음이 또 생각 끝에 저뭅니다
망초(忘草) 꽃까지 다 피어나
들판 한쪽이 기울 것 같은 보름밤입니다
달빛이 너무 환해서
나는 그만 어둠을 내려놓았습니다
둥글게 살지 못한 사람들이
달보고 자꾸 절을 합니다
바라보는 것이 바라는 만큼이나 간절합니다
무엇엔가 찔려본 사람들은 알 것입니다
달도 때로 빛이 꺾인다는 것을
한 달도 반 꺾이면 보름이듯이
꺾어지는 것은 무릎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마음을 들고 달빛 아래 섰습니다
들숨 속으로 들어온 달이
마음속에 떴습니다
달빛이 가시나무 울타리를 넘어설 무렵
마음은 벌써 보름달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바람이 분다 서러운 마음에 텅 빈 풍경이 불어온다
머리를 자르고 돌아오는 길에 내내 글썽이던 눈물을 쏟는다

하늘이 젖는다 어두운 거리에 찬 빗방울이 떨어진다
무리를 지으며 따라오는 비는 내게서 먼 것 같아
이미 그친 것 같아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
바람에 흩어져 버린 허무한 내 소원들은
애타게 사라져간다


바람이 분다 시린 한기 속에 지난 시간을 되돌린다
여름 끝에 선 너의 뒷모습이 차가웠던 것 같아 다 알 것 같아

내게는 소중했던 잠 못 이루던 날들이
너에겐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
사랑은 비극이어라 그대는 내가 아니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나의 이별은 잘 가라는 인사도 없이 치러진다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
내게는 천금같았던 추억이 담겨져 있던
머리위로 바람이 분다

눈물이 흐른다 

  

.............................................................................................................
정말이지 어떻게 이런 가사를 쓸 수 있을까, 감탄시키는 노래다. 들으면 들을수록.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

중요한 것은 대표팀으로 뛴다는 것이 반드시 ‘경기 출전’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소집에 응하여 훈련하고, 동료들과 밥을 먹고 대화하고, 훈련과 경기를 위하여 함께 버스를 타고,
그라운드나 벤치에서 숨가쁜 상황을 함께 호흡하고
마침내 선발이나 교체로 출전하는 등 이 모든 것이 ‘대표팀’을 구성하는 요소다.
아름다운 일은 아니지만 극단적인 경우,
컨디션이 양호한데도 감독의 판단이나 상대 팀의 전술 변화에 따라 출전 못할 수도 있고
몸 상태가 여의치 않아도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뛰어야 할 때가 있다.
그런 가운데 선수의 기량뿐만 아니라 내면까지 성숙하는 것이다.
출전 여부와 상관없이, 짧지 않은 소집 일정 동안
이렇게 코칭스태프의 전술을 내면화하고
동료들과 함께 훈련하면서 성장하는 것,
그것은 대표팀의 구성원으로서 누리는 독보적인 권리이기도 하다.

... 

2011.10.18 경향신문 칼럼 중에서 

                                                                                                                            

요즘 팀웍이라는 것에 대해 여러모로 고민하고 있던 차에 눈에 들어온 대목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