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대하기 전에 이런 일을 꼭 해보자-의논 끝에 결정된 것은 먼저 <아보가드로 습격>이었다. 아보가드로는 고등학교 때의 선생인데, 일단 죽이고 법원에서 이유를 설명하면-판사에 따라 무죄판결을 받을 수도 있을 만큼 죽일 놈이었다. 왜 아보가드로인지에 대해선 잘 모르겠다. 아무튼 선배들이 그렇게 불렀으므로, 우리도 아보가드로라고 불렀다. 패자. 결론은 만장일치였다.
자존심이 병적으로 강한 변태였기 때문에 아마도 고소 같은 걸 절대 할 리 없다고 생각했다. 무릎을 꿇고 우는 모습을 디카로 찍어두자는 얘기도 나왔다. 태엽이라도 감긴 듯 행동반경이 정해져 있는 인간이어서 습격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약속장소에 에릭과 金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정도였다. 둘이서 해치우자, 재이가 얘기했다. 꽁초를 끄고 고개를 끄덕이는데 골목 저편에서 아보가드로의 냄새가 풍겨왔다. 위선과 부패, 교만과 교활, 비굴과 비리가 뒤섞인 지옥의 향(香)이었다.
니... 들은, 하고 아보가드로는 멈칫했다. 극히 짧은 순간이었는데, 놈의 머릿속에서 쥐 같은 게 빠르게 돌아다니는 소리가 들렸다. 우두둑, 뒷짐을 쥔 상태로 재이가 손가락 마디를 꺾었다. 놈이 도망칠 때를 대비해 나는 언제라도 뛰쳐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니들, 하고 아보가드로가 헛기침을 킁킁했다. 머릿속을 돌아다니던 쥐 같은 것이 그 순간 자세를 바로잡는 느낌이었다. 놈은 뜻밖에도 뒷짐을 지더니 고압적인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래, 취직 준비는 잘들 하고 있냐?
그건 아니고... 갑자기 재이가 고갤 숙였다. 이상하게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다리에 힘이 쑥 빠지는 느낌이었다. 찾아와줘서 고맙다, 어깨를 치는 아보가드로를 따라 결국 놈의 집까지 가게 되었다. 고마워요,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아보가드로의 사모는 이 죽일 놈과 기꺼이 살아줄 만큼 친절한 여자였다. 함께 밥을 먹고, 하하, 오락프로를 보고, 웬일인지 초등학교 2학년 딸내미의 숙제를 열심히 도와주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하는 우리를 향해 아보가드로는 수제자란 표현을 쓰기도 했다.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알겠지? 알겠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일에 대해,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
사람을 때리는 건 힘든 일이다.
박민규 소설집 side B, 122-12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