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고린도전서 4:14-16)
종종 이 아비와 자녀의 관계는 신랑과 신부, 목자와 양으로도 등치되는 영적 관계지만 나는 아비와 자녀의 관계에서 특별한 한 가지의 비밀을 더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앞서 말한 대로 '서로'가 책임지는 관계라는 것이다. 더욱이 아비가 자녀의 신세를 지게 되는 상황을 아비는 기뻐한다는 것이다. 아버지 차범근 감독과 아들 차두리 선수가 2006년 독일월드컵 축구의 공동해설을 하던 장면 중 유명한 일화가 있다.
스페인 대 우크라이나 예선전에서 마침 중계 카메라에 스페인의 왕자 부부가 경기를 관전하는 모습이 잡히자 스페인 왕자 부부임을 알아보지 못한 김성주 캐스터가 자기 나름대로 귀빈석과 선수들의 물먹는 모습을 비교해서 설명했다. 김성주 캐스터의 어색한 설명이 끝날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리던 차두리는 스페인 펠리페 왕자 부부에 대한 설명과 함께 이들이 스페인 대표팀 경기에 참관해서 축구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김성주 아나운서는 차두리에게 "경기 중에 아는 사람이 나오면 빨리빨리 좀 얘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좀 당황스럽습니다. 차범근 해설위원도 몰랐고 오로지 차두리 선수만 알고 있었는데"라고 말해 중계석을 한바탕 웃음바다로 만들었다는 일화다.
이 일화 이후 차범근 감독이 중앙일보에 실은 칼럼은 그때 아비로서의 기분을 잘 이야기해주고 있다. 외국 선수들의 사생활까지 줄줄 꿰고 있는 아들로 인해 해설 시간이 든든하다며, 축구 경기 자체밖에 모르던 자신보다 축구 팬들에게 필요한 현장감 있는 경험과 정보를 지닌 아들을 자랑스러워했다. 같은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축구를 하더라도 자신은 경쟁 속에서 성공을 위해 뛰었지만, 지금 아들은 소풍 가는 소년처럼 경쟁자들의 사인볼을 수집하면서 행복 속에서 축구를 즐기고 있다며 한껏 부러워했다.
자녀가 자기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 그리고 자녀의 신세를 지게 되는 것은 아비에게도 기쁜 일이다. 부럽고도 감사한 일이다. 세상의 많은 리더들이 자신을 따르던 자들이 자기를 앞지르는 것을 참기 힘들어하고 질투하지만, 아비들은 가능하다. 예수님도 제자들이 자신보다 더 큰일도 행할 것이라고 예언하시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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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지는 관계는 끝까지 사랑하는 관계다. 서로가 잘되는 것이 흐뭇한 관계다. 신세지는 것이 불편하지 않은 관계다. 누가 누구에게 짐이 된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관계다. 생각해보라. 많지는 않겠지만 누구에게나 그런 관계가 이미 존재한다. 서로를 이용하고 형편에 따라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하는 경박한 관계가 아니지 않은가? 관계 맺기에 급급한 우리에게 그 너머에 있는 책임에 대해 이야기해 주는 이가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그와 서로 책임지는 관계를 맺으라. 더디지만 그런 관계를 확장시키는 것이 진정한 삶의 기술이자 본질적인 능력이다.
출처: 황병구 <관계중심 시간경영> (코리아닷컴) p.38-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