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손해를 감수하는 일 /이수태
군대란 곳은 이상할 정도로 청명한 곳이다. 군대생활을 해본 사람은 나의 이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곳에서는 인간의 유형도 윤곽이 아주 뚜렷한 몇 가지로 나누어지고 인간성도 금방 그 전모가 드러난다. 그에 비하면 일반사회는 몇 배나 탁하고 여러 수단으로 분식(扮飾)되어 있어 한눈에 전모가 드러나는 일이 드물다. 그러나 군대는 단순하고 솔직하다. 그래서 거기서 볼 수 있었던 인간이나 사건의 유형은 내가 이 사회의 다양한 현상들을 좀더 단순화시켜 이해하려 할 때 종종 떠올리는 대입(代入)변수가 되곤 했다.여기에 소개하는 오래 전의 아주 작은 사건도 그런 의미에서 내가 이 세상을 보는 데에 있어서 중요한 틀이 되어주었다.
사건은 내가 복무하던 논산훈련소의 모 중대에서 화장실 유리창 하나가 분실된 데에서 시작되었다. 그 뒤처리를 위해 다른 중대의 화장실 유리창을 밤에 몰래 훔쳐다가 박아놓았다. 참고로 논산훈련소의 막사는 현대식 건물로 모두 판에 박은 듯이 지어져 있다. 모든 규격이 똑같으니 이런 조치가 가능했던 것이다.
자, 그 다음은 어떻게 되었을까? 도난을 당한 중대에는 비상이 떨어졌다. 밤에 보초근무를 섰던 기간병이나 훈련병들은 기합을 받았고 즉시 원상복구를 위한 '특공대'가 조직되었다. 그러면 그 다음날은 건너편에 있는 다른 중대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갔다. 열두 개 중대에 이것은 금방 공공연한 비밀이 되어버렸다.
각 중대의 보초근무는 강화되었고, 특히 화장실 주변에는 방한복을 두툼하게 입은 여러 명의 동초(動哨)가 밤새 배치되었다. 어제는 어느 중대가 당했다더라는 이야기나 어느 중대에서는 대낮에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작전이 성공했는데 선임하사가 직접 작전을 진두지휘했다더라는 이야기가 식기 세척장의 화제가 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스릴 넘치는 게임에 종지부를 찍는 소문이 들려왔다. 6중대가 마지막으로 창틀을 도난당했고 그 사실은 6중대장에게 보고되었다. 물론 그는 이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다른 중대장들과 달리 행동했다. 그는 선임하사를 불렀다. 그리고 자신의 지갑에서 돈을 꺼내어 지금 즉시 영외에 가서 창문틀 하나를 제작해 오라고 했던 것이다. 이 소문은 금방 열두 개 중대에 퍼졌다.
그날 이후 6중대장은 다른 모든 중대장들과 뚜렷이 구분되었다. 하루아침에 그는 우리 사병들 사이에서 특별한 인물이 되었다. 그를 만나면 우리는 좀더 큰 목소리로 "충성!"을 외쳤고 경례를 받는 그의 태도는 훨씬 더 여유가 있어 보였다. 아마 몇몇 중대장들은 왜 자신도 그처럼 남다른 발상을 하지 못했는지 후회하는 경우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부대는 다시 평화를 찾았고 우리는 빛나는 기억 하나씩을 갖게 되었다.
제대 후 내게는 이 단순한 사건이 이 세상의 어지러운 현상을 분석해서 판단하는 데에 무슨 공식이라도 되는 듯이 종종 회상되곤 했다. 그렇다. 세상은 훨씬 다양하고 단선보다 복선이 많고 여러 타래가 얽혀 있기는 하지만 유형을 단순화시켜 보면 거기에도 문제를 일으키는 한 명의 양심불량이 있고, 그 일으켜진 문제의 소용돌이 속에서 '내가 공연히 손해볼 수는 없다'는 일념에서 이 문제를 대책 없이 유전(流轉)시키는 열 명의 평범함 사람들이 있고, '내가 조금 양보하겠다'는 마음으로 그 문제를 타결하는 한 명의 특별한 결단이 있는 것처럼 내게는 자꾸만 느껴진다.
사실 작은 손해를 감수하는 것, 한 발짝쯤 양보하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때로 그것은 한두 시간의 수고나 점심값 정도의 금전에 지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엄밀하게 생각해 보면 그런 양보가 우리를 특별히 궁지로 몰아넣지도 않고 그로 인하여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되는 것도 아니다.
묘한 것은 그러면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그렇게 하는 것은 바보짓같고 모든 사람들이 공인하는 삶의 질서로부터 홀로 이탈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실로 그렇다. 열 명의 중대장들이 아무도 그 간단한 발상을 쉽게 하지 못한 데에는 세속적 삶을 지배하는 끈질긴 가치관의 중력이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작은 손해를 감수하는 일은 생각하면 하나의 일탈이다. 그것은 단 한 발자국에 지나지 않지만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평균적 가치관에 저항하며 구축된, 다소 고독한 가치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 발자국에 지나지 않는 것을 위해 한 개인은 그의 내면에서 일탈이 주는 위협과 싸우고 때로는 삶의 현장에서 구체적 소외와 싸워야 하기도 한다.
그 한 발자국을 확보할 수 있는 자를 나는 행복한 자라 생각한다. 그는 비록 한 발자국을 물러섰지만 그의 앞에는 몇 배나 더 넓은 영지가 확보되기 때문이다. 삶에는 이런 신비스런 장치가 있고 그런 것을 발견해 갈 수 있는 삶은 행복한 삶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그 깡마르고 얼굴이 검고 키 큰 6중대장의 그후의 삶에 나는 이런 행복이 반드시 있었을 것이라 믿는다.
출처: 이수태 <어른 되기의 어려움> (생각의 나무 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