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특별판)
로맹 가리 지음, 김남주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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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죽은 자에게서 서빙받은 코스요리. 찢어진 종잇조각이라면, 화약 냄새라면, 속살의 물기라면, 사라져가는 관악기의 여운이었다면, 뭐하나 딱히 이렇다하기 힘든 그것들은 대체적으로, 주눅들만큼 정제된 냉소의 맛이었다. 허기나 포만감, 모두를 부정하며 가슴을 지그시 눌러오는 죽은 자의 계산서를 받아들었다. '살아있는 네 혀의 한계를 지불하라'.    

       

이 밥상에서 저 밥상으로 나는 짐승을 빗댄 경멸이나 우려스런 질병의 수준에 도달하지 않을 만큼의 정상적인 간격으로 이동할 뿐이다. 별 볼일 없는 나의 일상에도 이제 지긋지긋한 밥상을 떨쳐내고 삶을 부벼댈 기회가 몇차례 고통스럽게 주어질 것이다. 뭐 별것 있겠는가. 제삿상으로의 이동, 십중팔구는 개인적인 사별에 의한 오열일 것이다. 그러나 상상컨대 그 격렬함은 단숨에 일상을 지워 버릴 것이다. 거봐라. 넌 울고 있지 않니. 넌 헐떡이지 않니. 난 깊숙이 엎드려 삶의 발등을 적시는 것이다. 무엇과 닮았든 간에 삶은 대부분 그런 식으로 자신을 깨우고, 망각을 씻어낸 뒤, 다시 잠들 것이다. 만약 내게 모피어스가 남기고 간 권총이 있다면 삶의 폭로를, 혹은 침묵의 강요를 견디지 못해 죽은 자의 최후를 흉내낼 것인가. 마치 이 책이 그렇듯 내게 권총이란 그저 연민과 우수가 어린 정보의 과잉일 뿐으로, 쓸데없는 책을 그만 읽던가, 백해무익한 티비 시청을 자제할 것으로 처방될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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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icare 2004-08-12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도 내 삶을 읽지 않겠지만...읽고 있는데요.
 
야생의 사고 한길그레이트북스 7
레비 스트로스 지음 / 한길사 / 199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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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의 집중력, 전문지식 혹은 미친듯한 지식욕, 그리고 깊이있는 체험

어느것에도 해당사항 없던 내가 그저 지적허영의 아이템으로 선택한 책. 물론 아무 의미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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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icare 2004-08-12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허영심에 건배.시라노 드 벨쥬락처럼.
인간에게 허영을 빼면 뭐가 남겠습니까? 야생적 사고?
슬픈 열대 몇 페이지 읽다가 고이 접어 보내드린 기억이 떠오르면서.
씁쓸한 커밍아웃인데 왜 난 웃음이 나죠.
 
개는 말할 것도 없고
코니 윌리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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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중 벌어진 독일의 코번트리 공습 직후 이야기가 시작된다. 코번트리 공습은 전쟁사가들이 자주 꼽는 처칠내각의 미스터리였고, 이야기는 시공을 넘나드는 시간여행 과학픽션이다. 소재로만 보면 오른팔을 번쩍 치켜든 대체역사물, 혹은 사방에 피떡이 꿈틀거리는 가운데 분대장이 독자들을 모아놓고 개인화기를 나누어 준뒤 마구 등을 떠밀것만 같은 본격 밀리터리물이다. 그리고 물론, 이 책처럼 통쾌한? 연애이야기나 구석구석 카메오들이 득실거리는 문학사적 시트콤이 될 수도 있다.   

   

코니 윌리스가 요구하는 영국 근대인문학과 시대상에 대한 디테일한 지식이 없이는 이 시트콤에서 제대로 웃기 힘들겠다. 시트콤은 게다가 빠른 전개와 과장된 연기가 생명이 아닌가. 저자도 역시 수다폭탄을 퍼붓는 수준이다. 물론 정밀폭격이다. 피폭자에게 '주교의 새 그루터기'가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것인지 생각할 시간따윈 없거나, 주교의 새 그루터기가 뭘까에 한번 필이 꽂히면 읽는 내내 그 생김새를 추론해 내느라 2차대전의 역사가 바뀌는 줄도 모른다는 뜻이다.  무리한 시간노동으로 시차적응에 실패한 등장인물들이 여기저기 정확한 위치에서 헤롱거리다보면 이야기가 마무리될 시점에서 거의 잊고 있었던 시간여행 미스터리가 풀린다. 이 상황을 뭔가에 굳이 비유하자면,,시험시간이 다 지나도록 감독관은 들어오지 않아 수험생들은 자리들끼리 이야기꽃을 피우는데,,,뒤늦게 허겁지겁 들어온 감독관이 대뜸 답안지부터 나눠주는 식의 결말이랄까. 수험생들의 수다는 정말 즐거웠지만 시험결과는 조금 실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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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
마리오 푸조 지음, 이은정 옮김 / 늘봄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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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대부는 놀랍기도 하고 실망스럽기도 하다. 영화는 놀랄정도로 많은 부분 원작의 덕을 보고 있었고, 반면 소설은 가감없이 꼭 영화만큼만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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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빈치 최초의 과학자
마이클 화이트 지음, 안인희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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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입이 떡 벌어지도록 이 책이 가벼운 두가지 점 중 첫번째는

책의 분량이 440여 쪽에 이르는데 대략 350쪽부터 비로소 주섬주섬 이 책의 본론이 시작된다는 점이다. 다빈치를 둘러싼 천재타령을 어지간히 들었던 사람들이 이 책을 집어든 이유라면 당연히 '최초의 과학자'라는 부제일 것이 분명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350쪽이 넘도록 마이클 화이트라는 분이 늘어놓으신 칭찬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좋을지 난감스럽다는 것. 혹시나 평소 다빈치에 대한 상식 이하의 관심수준에 머물러있던 과학 칼럼니스트인 마이클이 다빈치라는 인물을 들여다 보기 시작하면서 오히려 그의 보편적인 평판에 심취해버린 나머지, 초심을 망각한 다빈치 숭배자가 되었다라면 그렇다 칠수도 있겠다. 어쨌든 좋다. 남은 백여쪽에서나마 내가 알지 못했던 진지한 과학자로서의 면모를 발견할수 있다면 만족이다. 그러나 본론부터 펼쳐지는 '뒤늦게 심각한' 문제는 아무리 살펴봐도 다빈치가 과학자라고 설득할 방법과 이유 모두가 희박해져간다는 것이다. '최초'수식의 떡칠을 통해 익히 알려진 산발적 사색가, 즉흥적 발명가, 변덕스런 피해망상가의 이미지만 공고해지는 가운데 저자 마이클은 결국 다빈치를 위해서라면 과학자의 정의를 포괄적으로 수정할 수도 있다는 허튼소리까지 서슴지 않는다. 

두번째는 책을 사보면 바로 알게 될 사이언스 북스의 헛된 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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