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특별판)
로맹 가리 지음, 김남주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스스로 죽은 자에게서 서빙받은 코스요리. 찢어진 종잇조각이라면, 화약 냄새라면, 속살의 물기라면, 사라져가는 관악기의 여운이었다면, 뭐하나 딱히 이렇다하기 힘든 그것들은 대체적으로, 주눅들만큼 정제된 냉소의 맛이었다. 허기나 포만감, 모두를 부정하며 가슴을 지그시 눌러오는 죽은 자의 계산서를 받아들었다. '살아있는 네 혀의 한계를 지불하라'.    

       

이 밥상에서 저 밥상으로 나는 짐승을 빗댄 경멸이나 우려스런 질병의 수준에 도달하지 않을 만큼의 정상적인 간격으로 이동할 뿐이다. 별 볼일 없는 나의 일상에도 이제 지긋지긋한 밥상을 떨쳐내고 삶을 부벼댈 기회가 몇차례 고통스럽게 주어질 것이다. 뭐 별것 있겠는가. 제삿상으로의 이동, 십중팔구는 개인적인 사별에 의한 오열일 것이다. 그러나 상상컨대 그 격렬함은 단숨에 일상을 지워 버릴 것이다. 거봐라. 넌 울고 있지 않니. 넌 헐떡이지 않니. 난 깊숙이 엎드려 삶의 발등을 적시는 것이다. 무엇과 닮았든 간에 삶은 대부분 그런 식으로 자신을 깨우고, 망각을 씻어낸 뒤, 다시 잠들 것이다. 만약 내게 모피어스가 남기고 간 권총이 있다면 삶의 폭로를, 혹은 침묵의 강요를 견디지 못해 죽은 자의 최후를 흉내낼 것인가. 마치 이 책이 그렇듯 내게 권총이란 그저 연민과 우수가 어린 정보의 과잉일 뿐으로, 쓸데없는 책을 그만 읽던가, 백해무익한 티비 시청을 자제할 것으로 처방될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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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icare 2004-08-12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도 내 삶을 읽지 않겠지만...읽고 있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