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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아바타
제임스 카메론 감독, 샘 워싱턴 외 출연 / 20세기폭스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디워 개봉 당시 난 심형래가 억지를 쓴다고 생각했다. 하고싶은 말과 해야할말도 구분 못하고 자기최면과 현실인식도 분별 못하는 미스테이크, 그 자체로 보였다. 아바타를 보고, 그 영화에 대한 세상의 반응을 보고, 다시 거기 섞인 심형래의 볼멘소리를 듣고 있자니, 이제는 공감할 수 밖에 없었다. 뭐냐 도대체. 진짜로 세상은 심형래라서 무시했던건가?
영화는 착취 판타지의 틀을 두 개 가지고 있다. 하나는 천연자원을 강탈하는 19세기 산업혁명적 식민지 이야기, 다른 하나는 다른 인종의 존재마저 빼앗으려는 21세기 유전공학적 욕망이다. 역사속 제국주의의 모습은 관객들의 마음편한 공분을 이끌며 영화 속 갈등을 무리없이 헤쳐나간다. 오락영화의 캐주얼함에 대한 정답이라 할만하다. 다만 우리가 영화를 즐기면서 지불한 댓가가 만 사천원 남짓의 표값이 아니라 영화가 드러내는 진짜 욕망의 역겨움에 대해서 묵묵히 입다물게 되는 것이라는 점도 점점 선명해진다.
그 역겨움은 디워에 버금간다. 누가봐도 흑인의 골격과 이모션을 가진 나비족이 뒤집어쓴 파란 물감의 노골적인 가면은 미국시장에의 흠모와 미국배우에의 필요성을 오락가락하는 심형래의 분별없음에 비해 나을 것이 없다. 디워가 그랬듯 이것도 시작에 불과하다. 성형부작용을 연상시키는 우스꽝스런 몰골을한 백인 아바타들이 나비족의 우월한 육체를 흉내내기 시작하더니 나비족 역사에 길이 남을 선택된 영웅이 되는가 하면 급기야 죽어가는 백인의 생명을 아바타에게로 완전히 이식하는 영생의 첨단시술은 심지어 나비족 들러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들의 신성한 나무아래서 이루어진다. 인간의 유전공학은 신성한 존재와의 결합을 통해 그 생명윤리적 죄의식을 사함받고 그 테크놀로지는 이제 프랑켄슈타인으로 요약되는 브레이크를 상실한 위험한 욕망에서, 예수의 부활을 연상케하는 신성한 승리로 거듭났다.
여기서 역겨운 포인트.
1. 신성한 나무의 생명이식술은 마치 자연의 위대함에 대한 찬가로 들린다. 하지만 그것은 백인이 아바타를 조립해 나타나기전까진 나비족조차 몰랐던 기적이다. 나비족은 이식받을 여분의 육체가 없었기 때문에 죽으면 그냥 구덩이에 묻혀 버리지 않던가. 도대체 신성한 나무는 누구좋으라고 거기 줄창 늘어져서 잠들어 있었던 것인가? 결국 신성한 나무는 백인을 위해 준비된 자연의 db, 선택받은 인종인 백인의 키스를 받고 깨어난 파란 공주에 불과한가?
2. 21세기 식민주의자의 후예는 무한한 자원이 빚어주는 싱싱한 육체를 끝도 없이소비하며 그저 오래살고 싶은 것인가? cg가 아무리 환상적이어도 이토록 저질스런 욕망까지 상쇄할 수 있을까.
3. 감독은 이러한 투트랩 착취구조를 노골적으로 활용한것이 분명해보인다. 표면적인 자원착취는 물론 페이크다. 표면적인 착취와 갈등이 해소될무렵 관객들은 카타르시스를 맛보며 심리적 안정에 접어들어 이제 막 시작하려는 진짜 착취적 욕망에 직면해서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것이 해피엔딩이라고 믿어버린다. 어쨌든 등장인물들은 화해하고 있고, cg폭죽도 바닥을 드러내는 가운데 영화는 바야흐로 끝나가니 말이다.
cg테크놀로지가 부족했을때 제임스 카메론은 그 표현의 부족함을 이야기의 힘으로 채우고도 넘치게 하는 능력있는 작가였다. 터미네이터가 아드레날린만 분출케하는 액션수작에 그치지 않고 당대의 위대한 이야기로 기억된 것은 근육질과 금속질의 충격적인 화음이 아니라 새라코너가 카일을 생각할때 찍힌, 서사를 마감함과 동시에 그 순환의 시작을 깨닫게 하는 한장의 폴라로이드 덕분이다. cg가 그의 영화에서 점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할수록 이야기는 점점 벼랑으로 몰리다 못해 아바타에 이르러서는 제임스 카메론의 머릿속은 이제 기계들의 군림을 방불케하는 cg 스펙타클과 서사간 최후의 전장이 된 모양이다.
대한늬우스의 애국가에 버금갈 수준의 심형래표 아리랑 애국심과 제임스 카메론의 추한 제국주의적 심층욕구가 영화계를 강타한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승승장구할것만 같던 심형래의 근황과 오스카의 판결에 의하면 애국심 마케팅의 헤프닝과 그저 잘만든 특수효과/미술영화라는 것으로 결론이 난 것 같다. 요즘 같은 세상에 참으로 접하기 힘든 적절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