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사물 - MIT 미디어 랩에서 제시하는 미래형 컴퓨터
닐 거센펠드 지음, 이구형 지음 / 나노미디어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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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을 매기기가 참 애매하다. 처음 알라딘에서 책 소개를 봤을 때와 책을 받아서 읽기 시작했을 때, 그리고 책을 다 읽고 나서의 느낌이 제각각 달라서 그렇다. 책 읽는 도중에도 각 장마다 느낌이 또 왔다 갔다 했다. 보통은 책 초반부쯤 읽고 나면 맘속에 별점이 정해지고 특별한 일 (내용이나 수준이 갑자기 곤두박질 치거나 하는) 없으면 그 별점이 끝까지 가는데,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일단 중간 점수 [3]에서 시작해 보자.

사실, 원했던 것은 인공지능 관련 포괄적인 입문서였는데, 읽다 보니 그런 쪽은 아니었다. 이건 고른 사람이 잘못한 거니까 감점 요인은 아니고 [±0]. 저자는, 디지털 분야 세계 최고 권위 대학원인 MIT 미디어 랩 Physics & Media Gr.의 책임자이자 TTT 프로젝트의 공동책임자이다. 그와 그의 학생들은 기존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사고와 과감한 실천력을 보여준다. 이른바 ‘ALPHA GEEK‘라고 할 수 있겠다 [+1]. 그래서 그들이 ‘생각하는 사물’의 예로 제시하는 전자 잉크, 컴퓨터 첼로, 착용 컴퓨터, 개인용 제작기 (3차원 프린터), 스마트 머니 등은 꽤나 자극적이긴 하다. 하지만 일개 연구소의 업적과 전망이라는 점에서 좀 편협한 소재라는 느낌도 들었다 [-1].

여기까지는 ‘KNOW-WHAT’이었고, 다음은 ‘KNOW-WHY’다. 왜 이런 것들이 필요하냐고? 컴퓨터(비트)가 일상 속의 사물(원자)들 안으로 들어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으면 (심지어 사용하고 있다는 것조차 못 느끼게 -- 편재 컴퓨터 또는 표나지 않는 컴퓨터), 다루기 어렵고 사람을 초조하게 만든다고 컴퓨터에다가 총을 쏘아댈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차세대 인터페이스는 세상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 공감한다 [+1]. 여기서, 큰 맥락과 상관없는 시비거리 하나 ; ‘멀티미디어’, ‘가상현실’, ‘카오스’, ‘에이전트’, ‘신경망’, ‘퍼지 논리’ 등의 용어 사용에 대한 비판을 하면서 나름대로 용어 설명을 추가하는 듯하더니만, 은근스리 그만 둔 듯하여 못내 아쉽다. 후기에 보니 일부러 그랬으니까 세부적인 공부를 더 하라고 한다 [-1]. 하나 더 ; 튜링 머신과 양자 의식 등을 다룬 <비트의 신앙>장은 문맥이 좀 애매하다 [-1].

당연히 마지막은 ‘KNOW-HOW’이다. 액체 핵자기공명(NMR) 현상과 분자 생물학이 결합된 양자 컴퓨터가 그 답이다. 멋지다. 답을 제시할 수 있다니 [+1]. 그런데 그 설명을 이해하기는 정말 어렵다. 또 알아서 더 공부하란 얘긴가 보다 [-1]. <기업과의 협력>장은 미국적 상황에서의 얘기일 뿐이다 [-1]. 그러나 같은 미국적 상황이라도 <정보와 교육>장은 공감이 되고 부럽기까지 하다 [+1]. 마지막 장 <생각하는 사물>은 TTT 프로젝트에 관한 저자의 사견私見인데 공감할 만한 정도다 [±0].

[3+0+1-1+1-1-1+1-1-1+1+0] = [2]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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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지문 - 화성 멸망의 수수께끼
그레이엄 핸콕 / 까치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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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엄 핸콕의 책을 읽는 자세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다.

1. 마음을 열고 있는 그대로 다 받아 들인다. 그 주장이 황당해서 뒤통수를 치기는 하지만, 엄연히 과학적 근거와 추론에 의한 것이므로 거부할 수 없다. 소수 의견일 뿐이지 정통 과학의 한 줄기임은 맞다.
2.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선택적으로 받아 들인다. 다수에 의해 공인된 과학적 사실과 추론은 인정하고, 저자의 독단적인 추론과 주장은 걸러서 듣는다. 믿기 어려운 얘기는 그냥 믿지 않으면 그만이다. 가능성만 인정한다. 소설처럼 즐긴다.
3. 마음에 조금도 빈틈을 두지 않고 오류와 반박 논리를 찾는다. 정통 과학으로 인정 받지 못하는 사이비과학, 반과학으로 대중을 현혹하므로 타도 대상이다. 돈 내고는 못 본다.

그러므로, “화성에 물과 생명이 존재했었다 (흔적이 보인다는 것은 어느 정도 공인된 듯). 화성 시도니아의 유적은 인공 구조물이다 (AOC). 사람 얼굴 모양이며 피라미드에서 기하/수학의 원리와 상수가 발견된다. 이는 마치 지구의 이집트 기자, 멕시코 테오티우아칸 처럼 천체 충돌에 의한 대재앙(화성을 멸망케 했던) 메시지를 지구 인류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등등은 읽는 사람이 알아서 받아 들이면 될 것이다. 고르시길; ‘어머나 세상에, 그렇구나’, ‘음.. 재미있군’, ‘뭐야, 말도 안되는 이 따위...’

개인적으로는 위 2.번 정도로 쭉 읽었지만 못내 찜찜한 것이, 황소자리 유성군의 혜성 파편이 지구와 충돌할 가능성에 대한 주장이다. 그 내용이 재미로 읽기엔 좀 심각하고, 그렇다고 1.번으로 인정하자니 당장 내 목숨이 달린 일이고 (^^;), 3.번으로 치부하자니 꽤나 과학적으로 뒷받침되는 듯 하고... 태양계 생성 초창기 격렬한 변화와 혹독한 환경으로 우주가 죽음의 세계였음은 기꺼이 인정한다. 하지만 지금은 안정적이라고 믿고 싶은데, 주기적인 (큰 걸로 2억5천만년과 6천만년) 충돌이 금세기에 근접했다는 것도 그렇고, 아직 우리에게 발견되지 않은 1Km 이상 소행성들이 95%나 된다는 것도 영 걸린다. 태양계 소행성 중 5%만 그 존재와 경로를 확인해 놓고는 이제 넋 놓고 있는 형편인데... 저자는, 현 인류가 역사상 최초로 그 운명에 맞설 기술을 갖고 있으니까 이제라도 관심을 기울이고 노력하자고 설득한다. 그러고는 좀 엉뚱하게(?) 인간성 혁신을 언급한다.

ANYWAY, NOBODY KNOWS !!! 그저 착하고 성실하게 살다가 때(?)가 되면 받아 들이는 게지... 일개 인간으로서 우주의 신비 앞에 그저 겸손할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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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싶은 과학의 세계 1 - 대륙의 탄생에서 인간게놈프로젝트까지
리처드 플레이스트 엮음, 김동광 옮김 / 문예출판사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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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신문사 북리뷰 : 기존의 ‘백과사전적’ 과학책에 나오지 않는 흥미로운 사실들로 꾸며낸 ‘저널리즘적’ 과학 에세이집. 물론 담당 기자는 가치중립적으로 썼겠지만, 읽는 사람에 따라서는 상반되는 해석을 내릴 수도 있는 글이다. 이 서평에서는 ‘저널리즘적’이란 말이 그 한편에 가지고 있는 비판적 뉘앙스에 중점을 두려고 한다.

말 그대로, 책은 저널리즘적이다. 그 글이 신문이나 잡지의 기사 수준이란 얘긴데, 실제로도 뉴욕 타임즈 과학 섹션 ‘사이언스 타임즈’의 기사들이다. 그래서 각 컬럼의 제목들은 하나 하나가 독자의 호기심을 꽤나 자극한다. 원래 저널리즘이 그러하듯이!! 그러나 아무리 제목이 관심을 끄는데 성공했다고 치더라도, 그 내용은 현재 진행형의 논쟁들을 다루고 있기에, 명쾌한 결론이 있을 수 없고 뭔가를 기대했던 독자는 허탈하다. 그래도 ‘UP-TO-DATE’한 기사란 점에 위안을 삼고자 했건만, 괘씸(?)하게도 이 기사들은 10여년 전 태생이다. 번역판이 뒤늦게 2000년에 나온 거다.

한술 더 떠서, 도저히 관심조차 줄 수 없는 내용도 있다. 미국 대륙의 해안선이 매년 얼마씩 침식되어 가는지 그래서 보상을 어떻게 하는지, 미국인들이 다이어트를 위해 무슨 고민을 하는지, 인간 게놈 프로젝트의 예산이 어떻게 설정되고 배정되는 지는 내 알 바 아니다. 편집자의 주장이, 일반 대중도 과학적 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과장 광고에 속지않고 정부의 과학정책을 올바르게 비판할 수 있을 것이라 하는데, 그래서인지 돈 얘기도 빠지지 않고 나온다.

마음을 추스리고 편집자의 다른 말을 되씹어 본다. ‘무식하다는 느낌이 들어 과학기사를 멀리 하는 독자가 단 한 사람이라도 있어서는 안 된다. 과학 기사는 독자들의 지적 사기를 높이고 지식을 주며 더 수준 높은 내용을 스스로 탐구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워 주어야 한다.’ 그래... 그런 목적으로 널리 읽히고자 했다면 그럭저럭 적당한 글이었다고 해줄 수도 있겠다. 그걸로 별 한 개는 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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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클리드의 창 - 기하학 이야기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지음, 전대호 옮김 / 까치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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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이 이 책을 추천했을 때, “오호, 기하학이라~~, 머리 좀 아프겠군. 한번 덤벼 볼까나?”했었다. 결과는? 전혀 머리 아프지 않게 술술 잘 읽혔다. 마치 할머니가 어린 손자에게 “호랑이 담배 먹던 옛날 옛날에 유클리드란 녀석이 살았는데...”로 시작하는 옛날 얘기를 해주는 듯 하다. 쉽고 재미있다는 말인데, 달리 보면 깊이에서 좀 아쉬운 면도 있다.

우선, BC 300년경 유클리드 [기하학 원본]의 제5공리부터 시작하는 게 맞겠다. 일명 평행선 정리는 ‘두 직선을 가로 지르는 선분이 있어서, 선분을 기준으로 같은 쪽에 있는 교차 내각의 합이 두 직각보다 작으면 두 직선은 결국 만난다.’이다. 너무 뻔한 얘기라고? 그런데 수학에서는 그게 아닌가 보다. 이걸 증명해야 한다고 2C 프톨레마이오스, 5C 프로클로스, 9C 타비트, 17C 월리스가 (내가 보기엔) 잘 얘기한 듯 한데, 그게 또 아니란다. 순환논법이라는 오류를 저지른 것이다.

그 이후 서구 과학 정신은 암흑시대가 1,000년 이상 계속된다. 암흑시대만 없었다면 1969년이 아니라 969년에 사람을 달에 보냈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하는데, 만약 그랬다면 우리와 서구 문명의 차이는 상상도 못할 만큼 벌어질 뻔했다. 우리는 말타고 오랑캐와 싸우는데 저쪽에선 로켓타고 달에?!! 그럼, 2002년엔 어떤 모습이?! 옆길로 샜는데, 하여튼 14C 오렘의 개념을 이어받은 데카르트가 그래프를 발견함으로써 기하학을 대수학으로 재구성한다 [방법에 관한 논의 1637].

그후 한 100년쯤 뒤, 너무나 뻔해 보였던 유클리드의 평행선 정리에 시비를 거는 사람이 나타난다. 평행선이 만난다고? 삼각형 내각 합이 180도가 아니라고? 원주와 지름의 비가 3.14 (π)가 아니라고? 이렇게 엉뚱한 생각을 갖은 15살 가우스에 의해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탄생한다. 결국은 평행성 정리가 유클리드 체계 속에선 증명이 불가능하고, 따라서 필연적으로 3차원의 공간은 휠 수밖에 없다는 얘기인데 (2차원의 평면이 아니라), 우리를 곤혹케 하는 이 생각에 의해 물리학은 혁명을 겪게 된다. 유클리드 이후 2,000년이 지난 후다.

가우스로부터 프앵카레의 쌍곡선공간과 리만의 타원공간 개념이 도출되었고, 드디어 우리의 아인슈타인이 리만 기하학을 이용하여 1915 일반상대성이론을 완성한다. 공간과 시간을 연결한 4차원 시-공간이 물질(질량) 분포에 의해 휘어진다는 것인데 이게 바로 우리가 느끼는 중력의 효과란다. 슬슬 머리가 약간씩 아파질 수도 있겠다. 공간이 휜다고? 4차원이라고? 천만에, 4차원만이 아니다!!!

아인슈타인 직후 칼루차와 클라인이 차원을 하나 더 더해서 시공간은 5차원이 되고, 1984 슈바르츠와 그린에 의한 1차 초끈이론 혁명에선 칼라비-야우 모양이 6차원 형태로 숨겨져 있단다. 그래서 총합은 10차원이다. 아직 끝이 아니다. 1995 초끈이론의 2차 혁명에서 위튼은 11차원을 주장한다 (M-이론). 물리 전공인 사람들은 익히 알겠지만, 칼라비-야우 공간에 따라 5개의 끈이론 후보가 있고 거기에 11차원 초중력 이론까지 아우르는 게 M-이론이다.

지금까지 수학, 과학의 역사를 기하학 관점에서 훑어왔다. 재미 있었는지? 재미를 못 느끼겠다면 그건 전적으로 졸필 탓이고, 책은 정말 재미있다. 저자 유머도 한 가닥 한다. 더군다나 기하학이란 부제가 붙은 이 책을 스스로 찾아온 독자라면 이 정도의 수학 얘기에 큰 부담을 느낄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아쉽다. 욕탕 물이 너무 뜨거울까 봐 발만 살짝 담은 느낌이다. 그냥 한번 머리 끝까지 푹 담가서 화끈하게 데어 봤더라도 괜찮을 텐데.. 적어도 (지적)자극은 받을 수 있었을 테니.. 저자가 설명과 그림을 너무 아꼈다. 각설하고, 저자 에필로그로 마무리 하자. ‘과학은 그리스의 기하학자들이 열어놓은 길이며, 수학은 과학의 도구이다 (이 부분은 동감하지 않는다. 수학은 자체로도 존재가치가 있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 석). 그리스인들 이래로 수학은 과학의 심장이며 기하학은 수학의 심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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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장 쓰기 오늘의 사상신서 155
이오덕 지음 / 한길사 / 199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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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사이트에서 남편이 쓴 서평이라고 하나하나 읽어보던 와이프가 별 다른 말 없이 이 책을 넌지시 언급했다. 그 저의(?)는 충분히 짐작되나 명색이 국문학과 출신의 추천인지라 나도 별 군소리 없이 장바구니에 담았었다. 한편으론, 외곬으로 흐르던 나의 책읽기에 다른 방향을 보여줄 수 있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책은 처음 예상과는 달리 상당히 실용적이었다. 구체적인 실례와 그 교정이 매우 풍부하다. 왠지 뜨끔하여, 멀리 갈 것도 없이 바로 이 사이트에서 지가 써놓은 독자 서평들을 다시 읽어보니 얼굴이 화끈해진다. <과학의 대중적 글쓰기의 모범>?!?! 이런... ‘—적’, ‘—의’가 남발하는군. 저자는 ‘—의’가 우리말이 아닌 일본말이라는 것을 알려주며 절대 쓰지 말자고 한다. 인터넷의 한 번역전문 사이트에서도, 가급적 ‘—의’를 줄이라는 TIP을 본 기억이 난다. 그러나 ‘—의’를 쓰면 글의 길이를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다. 가만, 이것도 축소지향적인 일본색인가?

이 글도 여기까지 쓰다가 다시 읽어보니, 만약 이오덕 선생이 봤더라면 거의 ‘X판’이라고 한바탕 호통을 쳤을 성싶다. 다시 써보자.

이 사이트에서 남편이 쓴 서평이라고 하나하나 읽어보던 집사람이 별 다른 말 없이 이 책을 넌지시 알려 주었다. 그 속뜻은 충분히 짐작되지만, 그래도 국문학과를 나온 사람이 권해주는 책이니까 나도 별 군소리 없이 장바구니에 담았다. 한편으로는, 내가 외곬으로 한 가지 책만 읽으니까 이번 참에 다른 쪽을 보는 것도 괜찮겠다라고 생각했다.

처음에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매우 쓸모 있는 책이었다. 잘못된 예를 하나하나 들고 그것을 고쳐준다. 왠지 뜨끔하여 ... (중략) ... 인터넷에 있는 어떤 번역전문 사이트에서도, 되도록이면 ‘—의’를 줄이라는 충고를 본 적이 있다. 그러나 ‘—의’를 쓰면 글을 짧게 쓸 수 있기 때문에 그 쓰고 싶은 마음을 뿌리치기 힘들다. 가만, 글을 짧게 쓰려는 것도 모든 것을 작게 하려는 일본 사람들 색깔 아닌가?

으.... 쓰기에도 10배는 더 힘들고, 읽기에도 좀 낯설다.

저자가 말하길, 삶이 말이 되고, 말이 글이 되어야 한다 했으니, 이미 우리의 삶이 중국식, 일본식, 영어식에 물들어 버린 지 오래라, 우리 글을 쓰는 것이 오히려 힘들고 낯설어졌나 보다. 아니면 삶과 말은 여전히 우리 모습이지만, 글 만큼은 현학적 (아차! ‘똑똑한 척 하려는’) 자세를 버리지 못하는 습성이 배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흔히들 말하는 우리의 말과 글을 살리는 것이 우리네 정신과 문화를 되살리는 것이며...(어쩌고 저쩌고)... 까지는, 솔직히 말해 감정에 잘 와 닿지 않는다. 그런 흉내로 글을 마무리하고 싶지는 않고, 다만 글을 썼을 때 쓰는 사람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읽는 사람에게도 정확히 전달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결론을 내본다. <쉬운 ‘말’로 ‘글’을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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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심 2005-10-20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느낌에는 후자가 훨씬 읽기가 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