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무새 죽이기에 대한 버벌님의 아름다운 글에서 저자 하퍼 리와 버벌님 모두 서문을 아주 싫어하신다길래 생각난 페이퍼.

버벌님과 달리 난 서문을 아주 좋아하는 편이다. 장문에다가 작가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잔뜩 담긴 서문을 마주하게 되면 순대국에서 맛있는 머릿고기가 평소보다 더 담긴것 같은 푸짐한 기분이 들곤 하는데, 이는 분명 내가 작가들의 작품 못지않게 작가들의 개인적인 삶에도 관심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작가들이 기대하는 이상적인 독자의 태도와는 거리가 상당히 멀어 보이지만 맛있는 머릿고기의 유혹을 뿌리치긴 힘들다.
 

 
서문에 대한 취향을 말하는 것 조차 굉장히 우스꽝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난 스티븐 킹의 서문들을 아주 좋아한다. 스티븐 킹은 스스로 자신의 서문에서 밝힌 바와 같이 문장은 간결할 수록 좋으며,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에 대해 쓴 글, 즉 서문'따위'는 작품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뒤늦은 헛소리이기 때문에 (이러한 이유로 '서구 문명이 낳은 위대한 100대 서문, 혹은 미국인들이 사랑한 최고의 머릿말들' 같은 책은 없다고 하였다) 오히려 그 '평가에서 자유로움' 을 만끽하며 마음껏 써질러(라는 표현을 용서해 주기를) 대는듯 하다.  

내가 다작을 하는 작가라고? 내가 팬케익 보다 많은 책을 팔아먹은 작가라고? 니들 마음대로 생각해라! 이 서문이야 말로 아무리 길어지고 장황해도 니들이 간섭할 수 없는 내 것이다. 왜냐면 이건 다 허튼소리니까! 홀리 쉿!

블라 블라 블라

   
 

 그럼에도 나는 열아홉 살을 꽤 좋은 나이로 여긴다. 어쩌면 가장 좋은 나이인 듯도 싶다. 그 시절에는 밤새도록 로큰롤을 즐기다가도 음악을 멈추고 맥주가 다 떨어지면 생각할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큰 꿈을 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봤자 언젠가는 심술궂은 꼬맹이 교통정리대원이 찾아와서 콧대를 납작하게 만들어놓을 테지만, 그럼에도 만일 처음부터 초라한 꿈을 품고 시작한다면, 맙소사, 나중에 그 꼬맹이한테 당하고 나서 당신한테 남은 건 고작 바지 앞단추밖에 없으리라. 그러면 녀석은 "또 한 놈 추가요!"라고 외치고 나서 살생부를 손에 쥐고 성큼성큼 떠나갈 것이다. 그러니 조금쯤은(또는 상당히) 건방져도 괜찮지만, 물론 여러분의 어머니께서는 분명히 다르게 말씀하실 것이다. 우리 어머니도 그러셨으니까. 어머니가 말씀하시길 "스티븐, 교만한 자는 나락으로 향하는 법이란다." 하셨는데..... 어쨋거나, 내가 열아홉의 두 배쯤 나이를 먹었을 무렵에 깨달은 바로는, 누구나 결국에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법이다. 아니면 도랑에 처박히거나 

다크타워의 두번째 서문 중

 
   




더군다나 다크타워는 완결편 이후에 완결이 늦어진 변명과 완결에 이르기까지의 험난한 여정을 보여주는 서문을 한번 더 붙였고, 기구한 운명의 스탠드에 대해 말하자면, 수십년전 출판된 초판에서 '인쇄할 페이지수로 인한 재정적인 이유' (편집자가 작품성을 위해 잘라낸 것이 아닌) 로 인해 스스로 잘라내었던 이야기들을 덧붙인 최종판이 나오면서 이에 대한 변명과, 전체적인 스토리 흐름과 상관없는 페이지가 추가된 것 왜에는 달라진 것이 없음을 모르고 구매하지 말 것을 경고하는 장황한 서문이 추가 되었다.  

 다크타워 시리즈를 4부까지 집필하고발간하는 동안 긴 공백이 생길 때마다 팬레터가 수백 통씩 쇄도하였는데 대개는 '그러다 된통 후회할 날이 올 거요.' 같은 내용이었다. 내가 아직 열아홉 살이라는 착각에 빠져 방황하던 1998년에는 이런 편지를 받은 적도 있다.

 "올해 여든두 살 먹은 할멈이우. 개인적인 사정으로 폐 끼칠 생각은 없었는데 이걸 어쩌면 좋누! 내가 요즘 많이 아파."

할머니가 말씀하시길 당신은 살날이 1년밖에 안 남았건만("땅 파고 들어갈 때까지 14개월쯤 남았대. 온몸에 암이 퍼지는 바람에 그만.") 내가 롤랜드의 이야기를 끝낼 기미가 보이질 않으니, 부디 (제발 좀) 결말을 미리 알려줄 수 없겟냐고 하셨다. 편지에는 (다시 집필을 시작할 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 심금을 울린 구절이 있었으니, 바로 할머니의 약속이었다.

 "아무한테도 얘기 안 할게!"


이러니 내가 이 보너스 머릿고기에 대한 집착을 버릴수 있겠는가? 앞으로도 자기 작품과 자신의 삶에 대한 때늦은 후회와 주절거림을 잔뜩 담은 책들이 많아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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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벌 2011-04-26 0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등학교때 한국사 선생님이 책을 읽을땐 서문부터 읽어야 한다고 했고, 실제로 시험 문제를 거기서부터 내셨어요. 그 영향으로 책 읽기 전에는 늘 서문을 읽는데. 이게 작가의 말은 참 읽기도 좋고, 재미 있잖아요. (특히나 스티븐 킹의 서문!) 어느 책인지 생각은 안 나는데 스티븐 킹이 쓴 서문에 서문을 읽는 사람들에 대한 칭찬이 있었어요.(기억력 감퇴 00;;;) 나에 대한 칭찬같아서 뿌듯해 하고 그랬어요. 한데 이게 작가의 말이 아니라 편집자나 옮긴이의 말이 나올때가 있습니다. 추천서문이라고 하는 것 같던데. 줄거리를 일러주고, 거기에 대한 분석을 해주고, 작가에 대해 알려주고. 진수성찬인데. 지나치게 길어서 책 본문을 들어가기도 전에 지칠때가 많더라구요.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단어가 읽고 있는 독자도 당연히 알고 있을거라 생각하는 글들은 GG (국어가 약해요. 제가) 이해가 힘들어서 한숨만 쉬어요. 얼마전에 본 서문이 대박이었는데. [강철군화]였던가? 이건 집에서 확인 후 다시 알려드릴게요. ㅡㅡ;; 그래도 저 열심히 서문을 읽고 있어요. 그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거든요. 서문 읽는 것은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끔찍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읽고나서 유쾌하게 좋았던 기분은 항상 있었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덧붙임 1.
다크타워 다 읽으셨어요? 전 사두고 아직 읽지 않았어요. 나오기 전에 엄청나게 기대를 하고, 나오자 마자 사두었는데. 손이 안가요. 갸웃 갸웃.

덧붙임 2.
앵무새 죽이기에 대한 버벌님의 "아름다운글" -> 이라고 적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읽은 시간이 새벽이에요. 덕분에 오늘도 엄청나게 좋은 하루가 될 것 같습니다.

에디 2011-04-26 12:59   좋아요 0 | URL
저도 서문(preface)는 좋아하지만 추천서(forward)는 대부분 싫어해요. 문학작품엔 추천서문이 붙는 문화가 아닌거 같아서 다행이에요.

전 3편까지 봤어요. 1편보고 '음?' 2편보고 '우와아아아 정말 대단하구나' 3편에선 안드로메다로 가고 있어요. 제가 좀 타임패러독스 같은걸 안좋아해서-.- 왜 굳이 판타지나 SF에선 시간을 비트는 걸까요..


Arch 2011-04-26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문이 좋을 때도 있고 안 좋을 때도 있어요. 에디님도 알겠지만 장 그르니에의 '섬'에 카뮈가 쓴 서문은 제일 좋았어요.

스티븐 킹의 서문도 좋은걸요. 전 머릿고기보다 순대의 간 같은^^

치니 2011-04-26 12:12   좋아요 0 | URL
동감! 장 그르니에의 섬에 카뮈가 쓴 서문, 예술. ㅠㅠ 그걸 읽고 울 뻔했어요.

에디 2011-04-26 13:03   좋아요 0 | URL
아치님 민망합니다. 카뮈의 서문을 떠올리고 나니 헛소리, 주절거림 같은 표현을 썼다는게 부끄럽네요. 하지만 그건 추천서잖아...라고 위안을-_-

정말 보석 같은 글이죠. 순대, 머릿고기, 간이 나왔으니 카뮈의 글은 초밥장인의 예술혼이 담긴... 그만해야겠다-.-

Arch 2011-04-26 16:13   좋아요 0 | URL
생와사비? 이거 하고 싶었던거죠~ 아닌가?


다락방 2011-04-27 08:16   좋아요 0 | URL
생와사비. 푸핫

굿바이 2011-04-26 14: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티븐 킹,은 무슨 짓(어르신에게 혼날 것 같지만)을 해도 멋져요 :)

그나저나 할머니의 팬레터, 내가 요즘 많이 아파, 읽고 쓰러졌어요.
서문을 찰지게 하는 저런 협박, 저도 누군가에게 팬레터를 쓰겠다는 강한 의지가 솟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