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리베로
홍명보 지음 / 은행나무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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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선수하면 항상 운동만 하며 책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란 고정관념이 내 머릿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따라서 이 책이 히트를 치는 이유도 단순히 홍명보선수의 개인적인 카리스마나 인기가 월드컵이 불러일으킨 반향과 절묘하게 결부되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하지만 웬걸? TV의 한 프로그램에서 유명교수들이 나와 이 책에 대해 진솔하게 토론하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물론 내가 운동선수에 대해 가졌던 편견이라든지 이 책의 인기에 대해 생각해 왔던 것 이상의 그 무엇이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 일을 계기로 이 책을 읽게 되었으며, 축구선수로서 그라운드 위의 홍명보 그 이상을 보게 되었다.

거기에는 축구를 철학의 경지로까지 끌어올린 어느 사색가의 인생역정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었다. 축구는 결코 타고난 운동신경과 끊임없는 노력에 의해서도 만족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축구자체를 삶이자 철학으로서 관조할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이 아닐까 싶다. 적어도 홍명보는 그 모든 요건을 갖춘 '철학하는 선수'로서 내게 느껴졌다. 그의 발군의 실력 외에도 그가 있으면 항상 든든해지는 심리적인 안정성 역시 바로 그의 인격적인 요소에서 찾아야하지 않는가 생각된다.

이 책을 축구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 홍명보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 축구에 관심있어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권해주고 싶다. 축구는 운동 이상의 그 무엇이며 인생의 축소판같은 것이기에 사람들은 이 책으로부터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한국의 축구발전을 위해 힘쓰는 축구관계자들에게도 이 책을 권해주고 싶다. 그들은 적어도 우리나라의 축구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요소가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며, 선수사이에서의 봉건적인 위계질서를 타파하고 원만한 인간관계를 창출하는데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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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란 무엇인가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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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솔직히 이성으로서의 여성이란 존재에 대해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도올의 해박함이 거기에 국한될리 없을 것이란 사실을 예측했지만, 그래도 솔직히 여성이란 존재에 대해 확실히 알아 보고픈 마음으로 책을 들었다. 그러나 왠걸? 이성으로서의 여성이란 온데간데 없고 단지 여성성으로서의 동양적,서양적 세계관을 비교분석하는 심오한 철학적 세계가 펼쳐지지 않는가!

완전히 내 기대와는 어긋났기 때문에 책을 덮어버릴까도 생각했지만, 이왕 돈주고 샀다는 생각에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의 지적 성장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본전은 찾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으로 계속해서 읽어 나갔다. 예측대로 도올의 해박함이 동과 서 고와 금을 가리지 않고 마치 시간여행하듯 박진감있게 전개되기 시작했다.

억압당하기 위해 존재하는 줄로만 알았던 동양적 여성관 우대받는 인격체로서의 서양적 여성관에 대한 신화가 여지없이 무너져내렸는데, 그것은 기존의 생각으로서는 꿈에도 생각한 적이 없던 발상이었다. 왜냐하면 동양의 유교적 가치관이야말로 여성을 억압한 족쇄이며, 서양의 기독교야말로 여성해방을 부르짖은 평등의 종교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정반대라니!(물론 유교는 여성억압의 한 원인을 제공했지만)

물론 도올은 거의 확신을 가지고 자신의 논리를 전개하고 있지만, 그의 견해가 맞을지 그를지에 대해서는 입증하기가 곤란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책이 유익하다는건 바로 우리가 상식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의 신화를 무참히 짓밟아버림으로써 사고의 지평을 확대시켜주고 있다는 점이다. 도올의 다른 저작과 마찬가지로 이 책도 그런 점에도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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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철학 이것이다 -상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199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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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옥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먼저 그의 해박함에 대해 놀라게 된다. 다음으로는 그의 저작들이 철학서적이라기보다는 인문학의 총체를 모두 전시해놓은 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된다. 옛날 중국에서는 문학과 역사학 철학이 독립된 학문영역이었다기 보다는 명백한 경계와 구분이 없었다 한다. 아마 김용옥의 글들이 그런 경향을 띠고 있는 이유도, 중국의 고전에 너무 심취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그런 이유로 그의 지적 해박함을 의심한다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의 첫 페이지부터 근 100페이지 가량의 분량은 자신의 과거사이자 신변잡기에 할애되고 있다. 특히 교수시절 자신의 입장과 상반된 위치에 있었던 사람들에 대해 실랄히 공격하고 있는데,저자 특유의 거침없는 성격이 책을 통해 그대로 재현되는 것같아 생생한 감이 없지 않았다. 이러한 글들을 읽고 느낀 건 학자의 겸손한 자세가 학문적 성과에도 과연 영향을 끼칠 수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사실 주위의 훌륭한 교수들을 볼 것 같으면, 학문적으로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분은 인격적으로도 훌륭한 사람이 대다수였던 것 같다. 물론 모든 경우가 그러하지는 않겠지만...... 아마 김용의 경우는 지적 자만심에 의해 수많은 적을 만들어내고 심지어는 일반인들의 반감을 유발시킴으로써 수준이하의 평가와 대접을 받아온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을 읽고 있노라니 학문과 인품의 상관관계에 대한 사색이 물밀듯 밀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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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학사 - 개정판
이상신 지음 / 신서원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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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 내용의 방대함에 놀랐었다. 서양고대로부터 중세를 거쳐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서양역사서술의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는 저자의 성실성에 대한 경이로움에서였던 것이다. 근현대의 역사서술 방식이 실증주의에 근거한 것이라든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사회경제사적 서술이 한때 유행했던 사실에 대해서는 익히 어느정도 알고 있었지만, 고대와 중세의 역사서술방식이 어떠했는가에 대해서는 솔직히 전혀 알길이 없었고 매우 궁금하던 차에 이 책을 접하게 되었던 것이다.

저자는 고대의 역사서술방식에 대해 신화적이고 영웅주의적인 서술과 관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현대와 같은 엄격한 실증주의적 방식에 근거한 것이라기 보다는 다소 허황되지만, 역사와 신화의 구분이 모호했다는 것이다. '플루타르크 영웅전'과 같은 작품이 말하자면 고대의 역사서인데 다소 황당무게한 내용도 있지만, 이러한 내용을 분석함으로써 고대인들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으며 약간이나마 생활상의 추적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중세의 역사는 '역사학 자체가 신학의 시녀'라 간주되었을 정도로, 철저히 기독교에 종속된 상태였다한다. 역시 종교와 학문간의 뚜렷한 구분이 없었던 듯 싶다. 고대 중세인들이 세계를 정말 그런 방식으로 바라보았더라면, 근현대로 접어들면서 실증주의 논리주의를 발견하게 된 것은 얼마나 엄청난 인식의 전환이었을까? 실증주의에 기반한 서술방식이 지금의 우리에겐 너무도 상식적으로 느껴지겠지만, 만약 고대인이나 중세인들이 현대의 역사책을 본다면 아마도 너무 무미건조하다고 느끼거나 아니면 다소 황당무개하다고 느꼈을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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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민족운동연구 역비한국학연구총서 1
서중석 지음 / 역사비평사 / 199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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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이면서도 균형이 잡혀있는 서중석교수의 역사관은 좌우합작운동에 대한 분석을 통해 잘 드러나고 있다. 해방 후 한반도의 민족국가건설과정에서 전개되었던 다양한 운동가운데에서 저자가 특히 주목하고 있는 대목은 좌익과 우익의 협력에 의해 자주독립의 민족국가를 수립할 수 있었다는 전망이었다. 따라서 저자는 좌익이나 우익 어느 한 쪽의 배타적인 정부수립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으면서도, 이에 대해서는 상당히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

분단으로 귀결된 좌우의 대립상에 대해 어느 한 쪽에만 책임을 물을 수 없지만, 우익계열의 분열정책은 더욱 반민족적인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렇다고 좌익의 노선이 백퍼센트 올바르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가장 현명하고 민족모두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방편은 좌우의 협력, 그 이상의 대안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미군정기에 있었던 여운형 김규식 중심의 좌우합작운동의 의의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그 성사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만은 않고 있다. 미소군정의 진주에도 불구하고 우리 민족의 순수한 힘 단결된 힘만으로도, 충분히 독립된 민주국가를 수립할 수 있었다는게 저자의 생각이기도 하다. 그러나 결과는 우익과 미군정의 방해정책 그리고 좌익의 배타성에 의해 분단으로 초래되고 말았다. 통일의 한가닥 희망을 보여주었던 좌우합작운동의 실패는 우리의 역사에서 정말 아쉬운 단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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