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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좋은 날 - 농부라고 소문난 화가의 슬로 퀵퀵 농촌 라이프
강석문 지음 / 샘터사 / 2017년 9월
평점 :
한적한 시골에서의 전원생활, 언젠가부터 내 버킷리스트 1위에 올라와있다. 실제로 오빠랑 몇년 안에 양평에 전원주택을 지어 이사가자며 꽤 실질적인 계획을 세우고 있는 중이다. 도시의 팍팍하고 정신없는 생활보다는 문만 열어도 자연이 속닥이고, 탁트인 벌판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곳에서 놀멍쉬멍 사는게 꿈이다. 시골에 살아본 적이 없어서 더 그런 로망을 품고 있는 것일수도 있지만, 어찌됐든 팍팍한 도시에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은 생각은 늘 가슴 한 구석에 품고 산다.
<딱 좋은 날>은 농부라 소문난 화가의 농촌 라이프를 담은 에세이다. 아버지는 3천평 넘는 땅을 가진 땅부자에다, 저자는 화가로써 그림도 그리고 계절따라 농사일도 조금씩 거들면서 글만봐도 매일 웃음끼 활짝 핀 삶을 산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별로 바뀌는 주위 풍경들과 가족들 이야기가 이 책의 주를 이룬다. 본인은 돈이 없어 아버지 집에 얹혀산다고 말하지만, 저자의 그림과 생활속에서 저자의 어린아이같은 발랄함과 행복함이 묻어나는 것 같아서 부러웠다. 하루종일 밥해먹는 장면밖에 안나오는 삼시세끼 같은 프로그램이 인기를 끄는 이유가 뭘까. 거기선 오로지 밥해먹고, 치우고, 뒹구는 일 외에는 일체 도시의 일과 소음이 단절된 세계이다. 매끼 밥해먹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 건 확실하지만, 끼니때마다 텃밭을 돌며 싱싱한 채소를 바로 따서, 소소한 음식들을 만들어먹는 장면은 분명 사람들에게 여유로운 시골생활에 대한 로망을 심어주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저자의 그림을 보면 마치 어린아이의 그림인 것 같은 순수함과 특유의 발랄함이 숨어있다. 처음엔 이런 그림은 나도 그리겠다(?) 싶은 마음이 들면서도 자세히 보면 독특한 매력이 숨어있는 그림들이다.
「강아지 두 마리랑 룰루랄라 하며 호박 따러 가는 길에 보니 자주색 가지들이 아침 햇살 속에서 보석만큼 빛난다. '아! 가지도 된장국에 넣어야겠다'라며 대롱대롱 에쁘게도 달린 가지 한 개를 뚝 따서 바구니에 담았다. 가지무침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몇 개 더 땄다. 벌써 입안에서 침이 꼴깍꼴깍 넘어간다.
가지와 함께 붙어있는 토마토 덩굴엔 토마토들이 토실토실하다. 적황색 토마토도 세 개 따서 바가지에 넣었다. 아버지가 튼튼하게 지지대를 만들어놓으셔서 올핸 가지랑 토마토가 대풍년이다. 벌써 열 번 쯤 수확했으니 효자 중에 효자다. 아침 후식으로 토마토 쓰윽 쓰윽 넓적하게 썬 다음 그 위에 백설탕 쫘악 뿌려 먹어야겠다. 달아도 토마토는 이래야 제맛이다. 」
< 딱 좋은 날 p.72>
텃밭에 나가서 열린 채소들을 보며 뚝뚝 따서 바로 반찬 메뉴를 정하는 기분은 어떤걸까? 식물들이 쑥쑥 자라서 온 힘을 다해 내놓은 열매로 싱싱한 반찬을 만들어먹으면 참말로 맛이 없을 수가 없겠다.
「이런 날엔 부침개가 딱이다. 언제 구멍 났는지 몇 걸음에 비가 새는 축축한 고무신을 신고 한쪽 대가 부러진 우산을 어설프게 어깨에 기대고 밭으로 가 아직 꽉 차지 않은 배추 한 포기와 쪽파를 두손 가득 뽑아 온다.
큰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밀가루 반죽과 함꼐 파릇파릇한 배추와 쪽파를 고루 펼치고 노릇노릇하게 굽는다. 」
< 딱 좋은 날 p.142>
비오는 날에 기름 냄새 풍기며 방금 딴 배추와 쪽파로 맛있는 부침개 해먹으면서 내리는 비를 보고 있노라면 참 세상에 행복이란 별거 없다는 생각이 들 것 같다.
「매실 팔아요!! (..)
튼튼한 나무에 살아남은 매실만 따요!
약 안치니까 벌레 투성이에요.
놀라지마세요 가끔 독한 매실 속에서도 벌레가 막 기어나와요..
그리고 뜨물(진딧물) 자국에 매실이 얼룩덜룩해요.
어쩌다 꺠끗한 애들도 있어요.
암튼 일찍 안팔아요. 재촉하지 마세요.
솜털 다 떨어지고 노릇노릇할 때 팔아요.
배송 날짜 잘 안지켜요. 따려고만 하면 비 와요.
비 맞으며 따기 싫어요. 떙볕에서도 따기 싫어요.
품 비싸서 선서한 날 가족들 일정에 맞춰 따요.
은근과 끈기로 기다리세요.
대략 남들 다 따고 난 후 6월 20일 이후에 따기 시작해요
매실은 늦으면 늦을 수록 좋아요.
그래도 보낼 때는 친절하게 문자 넣어드려요. 」
< 딱 좋은 날 p. 68~69>
무슨 배짱인가 싶지만 왠지 궁금해지는 저자의 매실팔기 전략이다. 판다는 건지 만다는 건지ㅋㅋ 어찌됐든 난 현대인들의 지지고 볶는 경쟁사회에 너무 지쳐서 그런지 이런 단란한 시골생활이 왠지 좋아보인다. 귀농해서 농사지을 생각까진 못하더라도 한적한 곳에서 자연과 함께 살아보고 싶다. 예쁜 주택 지어놓고, 낮에는 흔들의자에 앉아 좋아하는 책 읽고, 밤에는 별도 보고, 간간히 글도 쓰면서 사는 그런 삶? 요즘 시대엔 그런 유유자적한 생할도 사치라지. 농촌에서의 유유자적한 삶이 어떤건지 알고 싶다면 이 책을 한번 읽어볼 것. (다만 땅부자인 아버지가 젤 부러운 건 안비밀?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