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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여자들
카린 슬로터 지음, 전행선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10월
평점 :
품절
여기 아주아주 끔찍한 진실이 있다. 당신은 그 진실을 알 권리를 택하겠는가? Yes or No!
진실을 아는 것은 아주 중요하지만 때로는 그 진실의 끔찍함에 압도되어 숨이 막힐수도 있고, 진실을 알기 전의 나로 영영 돌아가지 못하게 될수도 있다. 하지만 얘기치 않게 끔찍한 진실을 당도하게 된다면? 지금껏 상상도 하지 못한 현실이 진실이라는 이름으로 자꾸만 닥쳐온다면 어떨까? 지금까지의 내 세상이 거꾸로 뒤집히는 기분, 내가 알던 그 사람의 모습이 모두 거짓이었다는 배신감, 그건 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진실에 당도해갈 수록 마음이 점점 조여온다. 이런 상황이 현실이 아니라 소설에 불과하다는 것이 어찌나 다행인지, 한숨이 푹푹 나온다. <예쁜 여자들>을 영화로 만들었다면 아마도 심한 호러물쯤 되지 않을까? 그만큼 무섭고 끔찍한 이야기들이 비엔나 소세지처럼 줄줄이 이어져 나온다. 도대체 어디가 끝인지,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종종거리며 읽다보면 600페이지가 넘는 긴 이야기가 그리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큰 딸 줄리아가 납치되어 사라지고 난 후 24년이 지나도록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한 가족이 있다. 아빠는 큰딸을 잃은 슬픔에서 오랫동안 헤어나오지 못하다가 결국은 자살을 택했고, 엄마는 아빠의 슬픔을 지켜보다 못해 냉담함을 택한다. 막내 딸 클레어는 다행히 좋은 남편 폴을 만나 15년동안 행복하고 안락한 생활을 유지해오고 있지만, 둘째 딸 리디아는 가족과 연을 끊은 채 17살 딸인 디와살며 남자친구 릭이 있다.
가족중 그나마 가장 행복한 삶을 사는 듯 보이는 셋째 딸 클레어, 아름다운 외모에 재력까지 갖추고 다정다감한 남편의 전폭적인 챙김과 지지를 받으며 살아가는 클레어는 어느 날 벼락같이 남편을 잃게 된다. 둘만의 즐거운 저녁식사 후 골목에서 몰래 사랑을 나누려다가 강도를 만난 것이다. 칼을 들이대며 협박하는 강도와 몸싸움을 벌이다 남편 폴이 칼에 맞아 사망한다. 이 어찌나 허망한 죽음인가, 클레어는 갑작스러운 이 모든일이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고, 폴이 없는 삶을 스스로가 살아갈 수 있을지 믿을수가 없다. 유체이탈한듯 제 정신이 아닌채로 장례식을 치르려 하는 클레어에게 그때부터 이상한 일이 생기기 시작한다. 장례식 당일날 갑자기 도둑이 들질 않나, 집에 도둑이 든 그깟일에 FBI가 찾아오질 않나 클레어는 뭔가 이상함을 느낀다.
그러다가 폴의 노트북에서 뭔가 이상한 영상을 보게 되는데.. 남자들이 흔히 보는 포르노라 보기에는 정도가 좀 많이 심하다. 여자를 벌거벗긴 채 묶어놓고 마체테로 때리거나, 불에 지지고, 전기충격을 주고, 강간하는 가운데 끝내는 여자가 죽는 충격적인 영상이 폴의 노트북에 저장되어 있는 것을 보고 클레어는 충격을 받는다. 폴이 그만큼 가학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이었나, 그나저나 이 영상은 과연 사실인가, 혹시 이 영상때문에 FBI가 찾아온 것인가, 클레어는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한다.
폴과 결혼하기 전 클레어의 언니 리디아는 폴에게 강간당할 뻔 했다는 얘기를 클레어에게 전했지만, 클레어와 엄마는 대부분 마약에 쩔어살고 바깥으로 나돌던 리디아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 그렇게 리디아는 사랑하는 엄마와 여동생과 절연한 채 그렇게 혼자 힘으로 살아온 것이다. 폴이 보던 클레어의 영상을 확인한 클레어는 어쩌면 언니 리디아의 말이 사실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점점 의심과 혼란의 나락으로 빠져들기 시작한다.
이야기는 이렇게 폴에게 숨겨진 충격적인 진실을 파헤쳐나간다. 남편이 죽어서 슬프기 그지 없었던 클레어는 과연 어떤 진실에 당도하게 될까? 진실은 원래 아프다. 사랑하는 언니를 잃고, 비슷한 나이대의 실종소녀들만 봐도 그 가족들의 아픔에 같이 공감하며, 어디선가 여성의 시체가 발견되었다고 하면 혹시 언니가 아닌가 싶어 가슴이 두근거렸을 이 자매에게 닥친 진실은 어쩌면 너무 가혹했다. 한 사람의 부재가 나머지 가족들에게 불러온 불행의 여파가 너무나 컸는데, 그것에 숨겨진 진실이 더 큰 충격이라면 어쩔텐가.
너무나 아름다웠던 세 자매, 다정했던 부모님, 이들 평범한 가정은 그렇게 무너져갔다.
"아름다움은 항상 숭배의 대상이 되어왔지, 하지만 그거 알아? 때론 죽음을 부르는 치명적 이유가 된 다는 것!" <예쁜 여자들>
가끔은 내가 평범하게 생긴 것에 다행스러움을 느낀다.
아름다움이 남성의 표적이 되는 슬프고 무서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보호색인가.(헐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