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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반
폴 비티 지음, 이나경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10월
평점 :
절판
흑인이 노예제도와 인종분리제도 부활을 시도하다 끌려가다?!
이런 줄거리 만으로도 잉?하는 소리가 나오는 독특한 내용의 소설이다. 폴 비티는 <배반>으로 미국 작가로서는 최초로, 그것도 만장일치로 2016년 맨부커상을 수상했다. 어떤 점이 심사위원 전체의 마음을 휘어잡은걸까. 이 책은 사회에 숨어있는 인종차별을 유쾌하게 꼬집은 책으로 블랙 코미디의 진수를 보여주는 책이라고 한다.
사실은 책 소개를 보고 기대에 부풀어 책을 펼쳤지만, 책의 처음부터 중반까지 도무지 내용을 종잡을 수 없어 읽기가 너무 힘들었다. 쉴새없이 쏟아져나오는 미국식 조크와 미국에 살지 않으면 알아들을 수 없는 수많은 표현들 때문에 각주가 수없이 붙어있었고, 하나하나 찾아가며 읽기에도 역시나 쉽지는 않은 텍스트였다. 힘겹게 정신을 부여잡고 읽다가 책의 중반을 넘어가면 드디어 좀 읽히기 시작한다. 그가 표현하는 코미디와 위트와 조롱을 100%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는 아니지만, 왜 이런 책을 쓰게 되었는지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뭔지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사실은 아직도 내가 이해한게 맞는지 정확히 확신은 못하겠다. 힘겹게 책을 다 읽고 나서 든 생각은 한번 더 읽어야 정확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 하지만 그럴 용기가 나려면 좀 더 많은 시간이 흘러야 할 것 같다.
「인종 분리? 노예 제도? 이 개새끼 같은 놈아, 네 부모가 널 그렇게 키우진 않았을거다! 그러니 이 놈의 파티를 시작해보자!」
< 폴 비티 《배반》 p.40>
미국사회에서 인종차별을 시도했다는 이유로 잡혀가 법원에서 재판을 받는 주인공의 모습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잡혀가서 재판을 받는 처지이지만 주인공은 여유롭고 심지어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다. 그는 도대체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일까? 사회학자인 아버지에게 홈스쿨링을 받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서 성인이 된 현재가 되기까지 그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소설에는 흥미롭고 특이한 인물들이 많이 등장한다. 어릴 적 만화영화에 등장하던 스타배우였지만 이제는 늙어버린 호미니, 그는 주인공의 노예가 되기를 자처하며 항상 주인님이라고 부른다.
「"날 기쁘게 해주고 싶으세요?"
"네, 알잖아요."
"그럼 날 때려주세요. 이 쓸모없는 시커먼 몽뚱이가 죽기 직전까지 때려 주세요. 하지만 주인님, 날 죽이진 마시고요. 내 허전함을 채워 줄 정도만 때려주세요."」
< 폴 비티 《배반》 p.113>
자살을 시도하던 호미니를 살려줬더니, 자신을 기쁘게 하는 방법은 노예처럼 부리고 때리는 거라며 자유를 준다고 해도 절대 싫다고 하며 주인공 옆에 붙어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농장일을 한다거나, 주인공이 시키는 일은 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행동하면서, 자신을 노예처럼 때려주기를 바라는 인물이다.
호미니는 어느날 생일선물로 주인공의 여자친구이자 버스기사인 마페사에게 선물을 받았는데 버스 좌석에 <노약자, 장애인, 백인 우대석> 이라는 스티커가 붙은 자리를 만들어놓는 것이었다. 생일선물로 인종차별을 받고 싶다는 호미니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선물이었는데, 처음 버스에서 그 스티커를 발견한 사람들은 인종차별이 왠말이냐며 불만을 표하지만 스티커는 계속 그 자리에 붙어있게 된다. 그러다 아이들이 그 스티커가 붙은 버스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그 버스에서는 절대로 싸움이나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마 아래와 같은 이유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더러운 화장실 문에 새겨진 <백인 전용>이라는 글자 밑, 쌓인 먼지를 손가락으로 훑어 <다행이다>라고 적고는 개미집 위에다 오줌을누었다. 그곳 이외에 지구상의 모든 곳이 <유색인 전용>인 모양이니까.」
< 폴 비티 《배반》 p.247>
주인공은 그 일을 계기로 삼아 인종분리 학교를 짓는 것을 추진하기도 하고, 자신들이 살고 있는 마을 디킨스가 어느 날 경계점이 다 지워져 지도에서 사라져버리자 스스로 마을경계에 줄을 긋고, 표지판도 세워서 디킨스는 여기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며 알린다. 아무리 보잘것 없고 엉망인 마을이지만 분명히 물리적으로 여기에 존재하고 있다고 말이다.
「나는 농부이고, 농부들은 타고난 분리주의자이다. 우리는 밀과 겨를 분리한다. 나는 루돌프 헤스도, P.W.보타도, 캐피틀 레코드도, 현재의 미합중국도 아니다. 그 자식들은 권력을 쥐기 위해 분리를 원한다. 나는 농부다. 우리는 모든 나무, 모든 식물, 모든 가난한 멕시코인, 모든 가난한 흑인에게 햇볕과 물을 동등하게 얻을 기회를 주기 위해 분리한다. 우리는 모든 생물이 숨 쉴 공간을 만들어준다. 」
< 폴 비티 《배반》 p.290>
어설픈 통합은 오히려 그 속에 존재하는 차별을 은폐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 것일까. 주인공은 모두가 평등하기 위해서는 분리되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한다. 오랜시간 착취당했고, 노예로 부려진 인종차별의 역사가 법적으로 통합된다고 한번에 바뀌지는 않나보다. 흑인이 2번이나 연속으로 대통령이 되는 시대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고 하는 인종차별, 그걸 오히려 역이용해서 분리를 통해 각자에게 주어진 권리를 찾아야 한다고 하는 주장이 흥미롭고 꽤 그럴듯 하다. 그만큼 현재의 통합된 인종 세계에서도 암암리에 차별이 심하다는 것을 비틀고 싶은 거겠지? '이럴거면 차라리 분리해!' 하고 말이다.
소설을 읽다보면 어렵긴 하지만 웃긴 포인트들도 꽤 많다. 처음엔 도대체 어느 부분에서 웃어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지만 뒤로 갈수록 몇번 키득키득 웃으며 읽었던 것 같다. 미국문화를 좀 더 많이 알고서 읽었다면 더 재미있었을 것 같은데 그 부분이 아쉽다. 번역도 정말 쉽지 않았을 것 같아 번역가가 머리를 쥐어뜯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번에 읽은 걸로는 70% 정도 이해한 느낌인데 다음에 다시 읽으면 더 많이 이해할 수 있으려나.. 그래도 이 책으로 차별이라는 행위에 대해 완전 새로운 시각을 알게 된 것은 큰 수확이다. 인종차별 뿐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차별에도 적용해서 생각해볼만한 문제인 듯 하니까.
인간은 왜그리 편을 나누고 차별하는걸 좋아하는지, 아무리 똑같은 인간들만 모아놔도 아마 시간이 지나면 그들끼리 외모, 경제력, 계급, 성별로 나누어 서로 차별하고 있을거다.
에고, 인간들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