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피씨주의자의 종생기 The Story of P.C. K-픽션 19
구병모 지음, 스텔라 김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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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저드 베이커리》나 《아가미》 같은 환상적인 이야기를 통해서 구병모 작가를 먼저 접해서 그런지, 이번 소설 《어느 피씨주의자의 종생기》에 담긴 현실적인 이야기와 문체는 꽤 충격적이면서도 흥미로웠다. 이 책은 한국 작가들의 좋은 단편소설을 골라내서 영어와 한글 두가지 언어로 선보이는 아시아 출판사의 k픽션 시리즈 중 한권이다. 깜짝 놀랄만큼 작고 얇은 책인데다, 책의 왼쪽은 한글, 오른쪽은 소설을 영어로 번역하여 동시에 읽을 수 있도록 출간되었다. 소설은 아주 짧지만, 내용이 주는 여운은 의외로 길다. 

1년에 한 권 정도의 소설을 정기적으로 출간하는 소설가 P씨가 있다. P씨는 얼굴과 성별을 공개하지 않은채 5만명 정도의 팔로워를 보유한 SNS 계정을 보유하고 있지만,  SNS에 개인적인 견해나 이야기는 일체 공개하지 않고 오로지 아무 의미 없는 여행사진이나 자신의 카메라 사진을 아주 드문드문 한번씩 올리는 식으로 계정을 운영한다. 최근엔 사회비판 요소를 담은 스릴러 한권을 출간한 참이다. 그런데 그 소설을 읽은 사람들이 소설속에 나오는 인물들의 표현방식이나 이야기 전개방식을 문제삼아 여성폄하의 시선을 가진 작가라느니, 장애인 차별주의자라느니, 불륜을 아름답게 포장했다느니 하는 식의 비판을 내놓기 시작한다. 드문드문 올라오던 비판의 글에도 작가가 묵묵부답으로 대응하자, 어느 날 출판사가 직접 나서서 대응에 나서보지만, 그런 분위기에 휘발유를 들이부은 꼴이되고 만다. 점점 거세지는 작가에 대한 비난들에 P씨는 결국 해명글을 남겨보지만, 꼬투리잡을 거리만 제공하는 꼴이다. P씨는 사람들의 비난에 영향을 받아 다음 소설에서는 사람들의 비난을 받을 구실이 적은 평면적이고, 희망적인 방향으로 이야기를 바꿔나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미 불붙은 비난을 피해갈 순 없다. 작가는 어떻게 이 난관을 극복해나갈 것인가. 

소설을 보면서 소름돋았던 점은 작가가 이렇게 하든 저렇게 하든 비난할 거리는 언제나 존재한다는 것이다. 소설 속에서 아무리 모든 관계를 조율해서 좋은 이야기를 쓰더라도 이야기 속의 장치상 소외받는 인물이나 비난할만한 요소는 어떻게든 찾아낼 수 있다. P씨가 대응을 하면 하는대로, 안하면 안하는대로 모든 것이 조롱거리가 된다. 이런 상황에서 창작자는 어떻게 해야 제대로 대응하는 것일까. 건전한 비난인지, 비난을 위한 비난인지 어느 순간 알수 없게 되버렸다. 뒤쪽에 나오는 작가의 창작노트를 보면 구병모 작가도 소설을 쓸 때 소설의 이야기와 인물간의 관계에 관해서 많은 고민을 한다고 한다. 이야기를 만들다보면 인물관계나 긴장감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소모되는 인물들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삶과 소설은 엄연히 다른 법인데, 삶에서 특정 이야기를 뽑아내어 소설을 쓰는 사람들은 과연 어느 선에서 사회의 도덕률을 맞춰야 할지 고민되는 지점도 분명 있을 듯 하다.  거기다 물어뜯을 거리가 나타나자 하이에나처럼 덤벼들어 덮어놓고 비난하는 사람들의 반응도 너무 리얼해서 진짜 인터넷상의 댓글을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인터넷 세상이 되면서 작가들이 독자의 목소리를 바로 들을 수 있는 통로들이 많아졌다. 이 리뷰도 어쩌면 구병모작가가 바로 읽을 수 있는 독자의 반응일 테니까. 작가가 소설을 통해 꼭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게 있다면 독자들의 반응에 일희일비 하지 말고 밀고 나갔으면 좋겠다. 어차피 이 세상에서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이야기는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실제 세상이 매끄럽지 않은데, 소설 속에서는 누구도 상처받는 사람없는 세상이길 바란다면 그 얼마나 어불성설이며, 그렇게 현실이 반영되지 않은 이야기를 누가 읽을 것인가. 어딘가 불편한 이야기 속에서 또 한번 삶을 생각해볼 수 있게 하는 것도 소설의 역할이다. 

소설이 아무리 막장이라도 과연 현실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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