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반
폴 비티 지음, 이나경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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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흑인이 노예제도와 인종분리제도 부활을 시도하다 끌려가다?! 
이런 줄거리 만으로도 잉?하는 소리가 나오는 독특한 내용의 소설이다. 폴 비티는 <배반>으로 미국 작가로서는 최초로, 그것도 만장일치로 2016년 맨부커상을 수상했다. 어떤 점이 심사위원 전체의 마음을 휘어잡은걸까. 이 책은 사회에 숨어있는 인종차별을 유쾌하게 꼬집은 책으로 블랙 코미디의 진수를 보여주는 책이라고 한다. 
사실은 책 소개를 보고 기대에 부풀어 책을 펼쳤지만, 책의 처음부터 중반까지 도무지 내용을 종잡을 수 없어 읽기가 너무 힘들었다. 쉴새없이 쏟아져나오는 미국식 조크와 미국에 살지 않으면 알아들을 수 없는 수많은 표현들 때문에 각주가 수없이 붙어있었고, 하나하나 찾아가며 읽기에도 역시나 쉽지는 않은 텍스트였다. 힘겹게 정신을 부여잡고 읽다가 책의 중반을 넘어가면 드디어 좀 읽히기 시작한다. 그가 표현하는 코미디와 위트와 조롱을 100%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는 아니지만, 왜 이런 책을 쓰게 되었는지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뭔지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사실은 아직도 내가 이해한게 맞는지 정확히 확신은 못하겠다. 힘겹게 책을 다 읽고 나서 든 생각은 한번 더 읽어야 정확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 하지만 그럴 용기가 나려면 좀 더 많은 시간이 흘러야 할 것 같다.

「인종 분리? 노예 제도? 이 개새끼 같은 놈아, 네 부모가 널 그렇게 키우진 않았을거다! 그러니 이 놈의 파티를 시작해보자!」 
< 폴 비티 《배반》 p.40>

미국사회에서 인종차별을 시도했다는 이유로 잡혀가 법원에서 재판을 받는 주인공의 모습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잡혀가서 재판을 받는 처지이지만 주인공은 여유롭고 심지어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다. 그는 도대체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일까? 사회학자인 아버지에게 홈스쿨링을 받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서 성인이 된 현재가 되기까지 그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소설에는 흥미롭고 특이한 인물들이 많이 등장한다. 어릴 적 만화영화에 등장하던 스타배우였지만 이제는 늙어버린 호미니, 그는 주인공의 노예가 되기를 자처하며 항상 주인님이라고 부른다. 

「"날 기쁘게 해주고 싶으세요?"
"네, 알잖아요."
"그럼 날 때려주세요. 이 쓸모없는 시커먼 몽뚱이가 죽기 직전까지 때려 주세요. 하지만 주인님, 날 죽이진 마시고요. 내 허전함을 채워 줄 정도만 때려주세요."」 
< 폴 비티 《배반》 p.113>

자살을 시도하던 호미니를 살려줬더니, 자신을 기쁘게 하는 방법은 노예처럼 부리고 때리는 거라며 자유를 준다고 해도 절대 싫다고 하며 주인공 옆에 붙어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농장일을 한다거나, 주인공이 시키는 일은 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행동하면서, 자신을 노예처럼 때려주기를 바라는 인물이다. 
호미니는 어느날 생일선물로 주인공의 여자친구이자 버스기사인 마페사에게 선물을 받았는데 버스 좌석에 <노약자, 장애인, 백인 우대석> 이라는 스티커가 붙은 자리를 만들어놓는 것이었다. 생일선물로 인종차별을 받고 싶다는 호미니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선물이었는데, 처음 버스에서 그 스티커를 발견한 사람들은 인종차별이 왠말이냐며 불만을 표하지만 스티커는 계속 그 자리에 붙어있게 된다. 그러다 아이들이 그 스티커가 붙은 버스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그 버스에서는 절대로 싸움이나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마 아래와 같은 이유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더러운 화장실 문에 새겨진 <백인 전용>이라는 글자 밑, 쌓인 먼지를 손가락으로 훑어 <다행이다>라고 적고는 개미집 위에다 오줌을누었다. 그곳 이외에 지구상의 모든 곳이 <유색인 전용>인 모양이니까.」 
< 폴 비티 《배반》 p.247>

주인공은 그 일을 계기로 삼아 인종분리 학교를 짓는 것을 추진하기도 하고, 자신들이 살고 있는 마을 디킨스가 어느 날 경계점이 다 지워져 지도에서 사라져버리자 스스로 마을경계에 줄을 긋고, 표지판도 세워서 디킨스는 여기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며 알린다. 아무리 보잘것 없고 엉망인 마을이지만 분명히 물리적으로 여기에 존재하고 있다고 말이다. 

「나는 농부이고, 농부들은 타고난 분리주의자이다. 우리는 밀과 겨를 분리한다. 나는 루돌프 헤스도, P.W.보타도, 캐피틀 레코드도, 현재의 미합중국도 아니다. 그 자식들은 권력을 쥐기 위해 분리를 원한다. 나는 농부다. 우리는 모든 나무, 모든 식물, 모든 가난한 멕시코인, 모든 가난한 흑인에게 햇볕과 물을 동등하게 얻을 기회를 주기 위해 분리한다. 우리는 모든 생물이 숨 쉴 공간을 만들어준다.  
< 폴 비티 《배반》 p.290>

어설픈 통합은 오히려 그 속에 존재하는 차별을 은폐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 것일까. 주인공은 모두가 평등하기 위해서는 분리되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한다. 오랜시간 착취당했고,  노예로 부려진 인종차별의 역사가 법적으로 통합된다고 한번에 바뀌지는 않나보다. 흑인이 2번이나 연속으로 대통령이 되는 시대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고 하는 인종차별, 그걸 오히려 역이용해서 분리를 통해 각자에게 주어진 권리를 찾아야 한다고 하는 주장이 흥미롭고 꽤 그럴듯 하다. 그만큼 현재의 통합된 인종 세계에서도 암암리에 차별이 심하다는 것을 비틀고 싶은 거겠지? '이럴거면 차라리 분리해!' 하고 말이다.  

소설을 읽다보면 어렵긴 하지만 웃긴 포인트들도 꽤 많다. 처음엔 도대체 어느 부분에서 웃어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지만 뒤로 갈수록 몇번 키득키득 웃으며 읽었던 것 같다. 미국문화를 좀 더 많이 알고서 읽었다면 더 재미있었을 것 같은데 그 부분이 아쉽다. 번역도 정말 쉽지 않았을 것 같아 번역가가 머리를 쥐어뜯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번에 읽은 걸로는 70% 정도 이해한 느낌인데 다음에 다시 읽으면 더 많이 이해할 수 있으려나.. 그래도 이 책으로 차별이라는 행위에 대해 완전 새로운 시각을 알게 된 것은 큰 수확이다. 인종차별 뿐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차별에도 적용해서 생각해볼만한 문제인 듯 하니까. 

인간은 왜그리 편을 나누고 차별하는걸 좋아하는지, 아무리 똑같은 인간들만 모아놔도 아마 시간이 지나면 그들끼리 외모, 경제력, 계급, 성별로 나누어 서로 차별하고 있을거다. 
에고, 인간들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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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남 오빠에게 - 페미니즘 소설 다산책방 테마소설
조남주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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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이 한꺼번에 대거 참여하여 펴낸 소설집 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눈길을 확 끌었다. <쇼코의 미소> 소설집이 너무나 좋았기에 다음 소설을 무지 기다리고 있는 최은영 작가, <82년생 김지영>으로 전국에 페미니즘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조남주 작가, <위저드 베이커리> 같은 환상적인 이야기속에서 콕콕 핵심을 찍어 이야기하는 구병모 작가 등 평소 내가 관심가지고 애정하는 작가들이 모여서 과연 무슨 일을 낸걸까. 책에는 페미니즘 소설이라는 장르가 붙었다. 사실은 요즘 페미니즘이라는 말이 너무 난무하고 관련 책도 과도하게 많이 쏟아져나오는 터라, 별로 반갑지는 않은 장르였다. 괜히 남녀간의 불화를 일으키는 이야기가 들어있는 것은 아닐까, 읽으면 착찹하기만 한 이야기들이 들어있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책을 읽으면서 페미니즘 이라는 공통주제만 공유할 뿐 작가에 따라 천차만별의 이야기가 탄생되었음을 깨달았다. 페미니즘이 여성의 불만을 얘기하는 것이 다가 아님을, 또 지금까지 얼마나 여성 중심의 이야기가 별로 없었는지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읽으면서 이게 페미니즘이랑 무슨 상관이지? 하는 생각이 드는 액션 느와르 장르와 화성이 등장하는 SF소설도 등장한다. 그런 소설들도 모두 하나의 페미니즘이라는 테마에 속할 수 있었던 것은 여성이 주변인물로서 소비되다 사라지는 존재가 아닌 끝까지 중심인물로 굳건히 자리를 잡고 있다는 사실로 표현된 것이라는 점에서 전혀 생각지도 못한 점을 발견하게 되기도 했다. 

책에는 7편의 단편소설이 등장한다. <현남 오빠에게> 라는 제목으로 책의 표제 이기도 한 조남주 작가의 이 소설은 10년간 연애에 종말을 고하는 여주인공의 편지 내용이 소설 전체를 이루고 있다. 대학교에 들어가자마자 만나게 된 선배 현남오빠와 서른이 될때까지 사겼지만, 오빠가 청혼을 한 시점에서 주인공은 그동안의 연애와 자신의 인생이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현남오빠는 여자친구를 보호하고 위한다는 명목으로 모든 것을 자기가 결정하고, 그녀에게 강요하듯 권유하여 그녀의 삶을 자기 뜻대로 이끌어가는 인물이다. 식당에 가서 메뉴 고르는 것부터 시작해서, 여자친구의 미래 진로까지 자신이 결정해서 정해주는 현남 오빠는 좋게 말하면 리더십이 강하다고도 생각할 수 있지만, 다른 말로 하면 모든 것이 자기 멋대로인 폭군인 것이다. 단지 겉으로 거친면이 드러나지 않아 여자가 긴가민가 계속 깨닫지 못하고 끌려온 것일 뿐 여자에게 자기 인생은 어느새 없어진 지경이었던 것이다. 
점점 뒤로갈수록 주인공의 편지에서 느껴지는 분노게이지 상승과 함께 나도 같이 화가 났다. 예전에 잠시 사겼던 남자가 생각나서였다. 그 사람과 사귈 때, 남들이 보기엔 더할나위 없이 좋아보이는 커플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사겼던 사람들 중 그 사람이 제일 최악이었다. 모든 남자들은 다 위험하기 때문에 나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남자사람 친구들이나 혹은 일때문에 아는 사람들과도 아예 못만나게 한 것은 물론, 그들에게 별 의미없는 문자메시지만 와도 엄청나게 화를 내는 사람이었다. 어린 나이였기에 나를 너무 좋아해서 그런가 하고 순진한 생각을 했었지만, 나를 스스로는 아무 결정도, 생각도 못하는 바보취급을 했던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헤어지고 나서 얼마나 억울했는지 모른다. 소설 끝에 나오는 "강현남, 이 개자식아!" 같은 약한 욕으로는 도저히 풀리지 않는 화가 아직도 뻗치는 것 같다. 물론 세상에는 좋은 남자들이 더 많겠지만, 몇몇 남성들은 보호 혹은 사랑이라는 명목으로 여자들에게 친절을 가장한 강요와 폭력을 행한다는 것,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폭력이기에 오랫동안 알아채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이 무섭다.  

최은영 작가의 <당신의 평화>도 나의 최근 상황과 겹쳐지는 부분이 많아서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약혼자 준호의 집에 처음 초대된 선영이 예비 시댁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 수저라도 놔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하면서 가만히 있질 못하는 모습이 얼마전 오빠네 집에 처음 갔을 때가 생각나서 너무 공감됐다. 손님이니 가만히 있으라고 해도, 왠지 그러면 안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그러다 준호의 누나인 유진과 그녀의 엄마 이야기로 이야기의 중심이 넘어간다. 이 소설에서 준호나 그의 아빠는 별 비중이 없다. 유진의 엄마인 정순은 자신이 참아왔던 세월을 딸 유진에게 하소연하며, 며느리 선영에게서 보상받고 싶어하는 인물이다. 나 또한 누군가의 며느리이기 이전에 엄마의 딸이기에 선영과 유진 둘다에게 동질감이 느껴져 그 마음이 참 쓰면서도 아팠다. 

「"너는 속이 깊은 아이야." 정순은 말했다. 그녀의 말은 일견 맞았다. 유진은 어린 시절부터 자기 자신의 속마음을 깊이 파내어 남들에게 말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묻어야 했으니까. 
내가 누구한테 말하겠니.
누가 내 얘기를 들어주겠니. 
정순은 그렇게 말했다. 어린 시절에는 자기 존재에 대한 인정으로 느껴졌던 그 말이 시간이 지날수록 유진을 옥죄었다. 남동생이 태어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정순은 아들에게는 자신이 겪는 괴로움을 시시콜콜 이야기하지 않았따. 아들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으므로. 」 < p.50>

실제로 우리 엄마도 힘든 일이 생기거나 하면 나에게는 전화해서 시시콜콜 얘기하곤 하시지만, 남동생에게는 잘 털어놓지 않는다. 딸로서 엄마의 마음 창고가 되어줄 수 있는 일이 다행스럽다 싶으면서도 가끔은 힘에 부칠때도 있는데 어디 털어놓기도 애매한 그런 마음을 소설속에서 만나니 기분이 묘했다. 


소설집에 담긴 이야기들은 어쩌면 단지 여성이 주인공으로 쓰여진 소설일 뿐이다. 여성의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는 얘기들, 그녀들이 끝까지 주인공이 되는 얘기들이다. 그런 이야기들이 페미니즘 소설이라는 이름으로 따로 묶여나와야 할 정도로 수가 적은가 싶어 의아하기도, 안타깝기도 하다. 그럼에도 다양한 개성을 지닌 작가들이 하나의 테마로 쓴 소설을 한 책에서 다 만날 수 있는건 참으로 뜻깊은 일이다. 

앞으로는 다양한 소설속에서 여성 중심의 이야기를 더 많이 만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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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7 22: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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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7 23: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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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한 지성의 단련법
사이토 다카시 지음, 홍성민 옮김 / 샘터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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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어려운 문제가 닥쳐와서 우왕좌왕 하고 있을 때 옆에서 차분히 해결법을 생각해서 말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다. 같은 현상을 보고도 하늘이 무너졌다며 좌절만 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그것을 기회로 삼아 또 다른 길을 개척해내는 사람이 있다. 그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지성은 어려운 문제나 힘겨운 현실에 직면했을 때 그 원인을 밝혀내는 힘이고, 취할 수 있는 현실적인 선택지를 찾는 힘이며, 실제로 행동으로 옮겨 대처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즉 진정한 지성은 '살아가는 힘'이다.」 
< 유연한 지성의 단련법 p.6>

흔히 지성인이라고 하면 많이 아는 똑똑한 사람을 떠올리기 쉬운데, 어떤 현상에 대해 알고만 있는 지식과 아는 것을 이용해 현실의 어려움을 실질적으로 대처해나갈 수 있는 지성은 다른 종류에 속한다. 한마디로 지성인은 아는 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뜻을 실현하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사람인 것이다. 저자 사이토 다카시는 이러한 지성이 단련을 통해 발전할 수 있는 능력이라며 이 책을 썼다. 살아가면서 수많은 문제에 부딪치고 그때마다 현명한 결정을 해야 하는 우리에게 지성은 필수불가결한 요소인 것이다. 

지성은 어떻게 해야 단련할 수 있을까?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은 정학한 이해이다. 올바른 이해를 통해 바르게 판단해야 올바른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해에 근거하지 않고 움직이면 선입견이 개입할 수 있고, 주위의 소문이나 권위에 휘둘릴 수 있다. 그렇기에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하되 타인의 비판도 받아들일 줄 아는 유연한 정신이 필요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 살아있는 지성을 배우기 위해서는 롤모델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지성을 습득하는 데 무엇이 최선인가를 생각한다면, 역시 실존 인물, 즉 어려운 시대에 지성이라는 무기로 최선을 다해 살아간 사람들의 삶을 실마리 삼아, 그들의 사고와 사상을 참고해 볼 수 있다. 
지성의 중요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자신의 지성을 높이기 위해 고생과 시행착오를 경험하는 것.」 
< 유연한 지성의 단련법  p. 19> 

그래서 이 책에서는 저자가 생각하는 각각의 롤모델을 예로 들어 그들이 자신에게 닥친 난관을 어떤 방식으로 헤쳐나갔는지에 대해 실제 예시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철저히 고민하여 단련하는 지성,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지성, 신체에 깃드는 지성, 자아를 해방시키는 지성, 탐구하는 사람이 깨닫는 지성 등으로 챕터를 나누어 저자가 생각하는 롤모델들이 어떤 지성으로 자신의 주어진 상황을 돌파해 나갔는지 알려준다. 다만 제시한 롤모델들이 모두 일본인에 한정되어 있어, 나쓰메 소세키 정도의 인물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잘 모르는 인물이라 아쉬웠다. 좀 더 일반적으로 많이 아는 인물을 예로 들어 설명했으면 훨씬 더 흥미롭고 재미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책을 읽다 공감하는 구절을 발견했다. 

「인간은 자신의 생을 고집하면 거꾸로 많은 고민과 고통을 안게 된다. 그러나 앉아 있을 때나 누워 있을 때나 항상 '죽는다'는 각오로 일상을 살면 그런 고통에서 해방되며, 결과적으로 충실한 삶을 살 수 있다.」 <p.107>

나는 보통 언제 죽어도 상관없다는 조금은 과격한 생각을 하며 사는 편이다. 주위 사람들이 이 말을 들으면 삶의 의욕이 없는건가 하며 놀라곤 하지만, 그렇다고 죽고 싶은 건 아니다. 오히려 진짜 힘든 일이 생기면, '최악이래봤자 죽기밖에 더하겠어, 그냥 죽기전에 해볼만큼한 해보자.' 라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죽기전에 무슨 짓인들 못하겠는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 세상에 그닥 힘든 일이란 별로 없다. 살고자 하는데 미련을 두고 안달복달하는 것보다 훨씬 마음도 편하고, 일도 더 잘 풀리는 경험을 했다. 한때는 진짜 힘들어서 그런 생각을 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게 더 평온한 마음 상태인 것 같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삶에 큰 미련을 두지 않는 것, 오히려 그건 힘들때도 삶을 포기하지 않게 해주고, 마지막 힘을 쥐어짤 수 있게 해주니까. 

사이토 다카시의 말대로 지성인은 살아갈 힘을 지닌 사람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넘어지지 않고 돌파구를 찾아내는 사람, 나도 그런 '살아가는 힘'이 넘치는 지성인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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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7 22: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1-17 23: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를 보내지 마 민음사 모던 클래식 3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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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수상 작가의 작품은 어렵다는 편견이 있다. 그 중에서 그나마 읽기 수월하다는 책을 한권 골라들었다. <네버 렛미 고>라는 제목의 영화로도 개봉된 적이 있는 <나를 보내지 마>는 복제인간에 관한 SF소설이다. 말이 SF소설이지, 소설이 끝날 때까지 내가 기대했던 스릴 넘치는 이야기는 단 한줄도 나오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 캐시의 회고로 이어지는 이 소설은 캐시가 헤일셤에서 함께 공부했던 친구들인 루스와 토미에 대한 일상적이고 소소한 이야기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소재가 복제인간인 걸 모르고 읽었다면, 소설 중반에 이르도록 알쏭달쏭하기만 했을 것이다. 

이 소설은 말하고 싶은 주제를 철저히 감추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심지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하고 싶은 말을 명백하게 하지 않고 감추는 경우가 많아 서로 말할 타이밍을 놓치거나 속으로만 끙끙 앓는 경우가 많다. 마치 독자들을 일부러 속 끓게 하는 것처럼 정작 궁금한 복제인간에 관한 내용은 인물들의 대화 속에서 언뜻언뜻 양념치듯 살짝 언급될 뿐이다. 그래서 아무런 설명없이 갑자기 튀어나오는 기증자, 간병인, 근원자 같은 단어들로 이들이 보통 인간과 다른 삶을 살게된다는 것을 언뜻 인식하게 될 뿐이다. 

헤일셤에 있는 클론들은 그래도 축복받은 측에 속하는 셈이다. 그들은 학교에 다니며 교육을 받고, 친구를 사귀며, 매번 건강검진을 받으며 몸을 관리한다. 그 중에서도 담배는 절대 피면 안되는 항목 중 하나이다. 본인의 몸이 아니라 추후에 기증을 해야하는 몸이기 때문이다. 서로 성관계 갖는 것은 오히려 권장하는 항목이긴 하지만, 이들은 아이를 낳을 수 없도록 설계된 몸이다. 이런 부분들을 제외하고는 이들은 보통 사람들과 전혀 다른 부분이 없다. 친구끼리 소소하게 다투고 화해하고, 마음을 나누는 일상적인 일들이 반복되는 하루들이다. 작가가 친구들 사이에 일어난 소소한 사건과 감정들을 하나하나 너무나 디테일하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 사이의 미묘한 감정과 개인의 성격까지 자세하게 파악하게 되지만, 신기한 것은 겉모습에 대한 묘사는 하나도 없다. 이들이 어떻게 생겼을까 상상 해보려했을 때, 문득 이들의 모습에 대한 얘기는 하나도 없었던 것이 생각나서 좀 의아했다. 

이들이 헤일셤을 졸업하고 코티지로 이동하게 되어 다른 곳에서 이동해온 전임자들을 만나면서 새로운 소문을 하나 듣게 된다.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가서 둘이 커플임을 증명하게 되면 기증을 몇년 미룰 수 있다는 정보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진심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게 정말 사실일까 고민하던 그들은 헤일셤에서 선생님들이 그림을 그리는 행위에 대해 많이 강조했던 것을 생각해냈다. 좋은 작품은 '마담'이라는 사람이 바깥세상으로 가져가기도 했는데 화랑이라는 곳에 전시된다고 했다. 자신들의 그림을 왜 가져갈까 고민했던 캐시와 토미는 그림에 사람의 영혼과 진심이 담겨있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그래서 토미는 자신의 영혼을 담아 상상 속 동물을 아주 세밀하게 매일 조금씩 그려나가기 시작한다.

이들은 그렇게 어른이 된다. 피해갈 수 없는 현실이 다가오고 루스와 토미는 기증자가 되고 캐시는 간병인으로 활동한다. 모든 복제인간은 기증자 아니면 간병인 밖에 될 수 없고, 간병인도 그 일이 끝나면 결국 기증을 해야 한다. 캐시는 자신의 친구들인 루스와 토미를 곁에서 간병하며 지켜본다. 그러던 어느 날 캐시는 헤일셤에 가끔 찾아왔던 마담을 길에서 보게되고 그녀를 찾아가서 그동안 그들이 몰랐던 충격적인 진실들을 듣게 되는데.....

「이제 이 나라 어디에서도 헤일셤 같은 곳은 찾아볼 수 없단다. 이제 남은 건 정부가 운영하는 거대한 '사육장'뿐이다. 그곳의 상황이 과거보다 좀 나아졌다 해도, 얘들아, 그런 곳에서 지금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면 너희는 며칠동안 잠을 이룰 수없을거다. 」
<p.363>

《나를 보내지 마》는 복제인간들의 평범하고 인간적인 일상만을 보여주는 소설인데,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작가가 일일히 말해주지 않은 소설 속 현실 저 너머의 이야기가 더 크고 무섭게 다가오는 소설이다. 인간들이 어떻게 복제인간을 만들었고, 사육되듯 키워진다는 복제인간들의 실상은 어떤 것인지, 일반인들은 실제로 복제인간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대하는지, 복제인간 본인들은 자신의 삶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자신들의 삶의 목표가 건강한 장기이고, 모든 것을 다 내준 후 죽는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관해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내용들이 구구절절하게 나오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소설을 다 읽고 나면 혼자 생각해보게 된다. 배경에 커다랗고 검은 이야기가 통째로 남겨진 채 이야기가 끝나는 느낌이다. 

내가 태어났는데 일반인이 아니라 복제인간이라면? 난 분명 나일 뿐인데 근원자의 복제품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래서 내 인생의 목표가 장기기증이라면, 그러면 난 어떨까.  단지 태어났을 뿐인데 온전한 내가 될 수 없다니, 누군가의 소모품일 뿐이라니, 내 목숨을 누군가에게 구걸해야 하다니,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일까? 

복제인간이 등장하는 다른 영화에서는 그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위해 도전하고 고군분투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반해 《나를 보내지 마》의 주인공들은 처절한 현실을 다 알게 되고도 그냥 받아들인다. 토미는 4번이나 기증을 한뒤 죽음을 맞이하고, 죽음을 맞이한 뒤에는 남아있는 장기마저 모두 빼앗길 예정이다. 본인의 동의는 필요없다. 원래 그러려고 애초에 태어난 것이니까. 

너무 잔잔하고 인간적이라 더 슬프고 애잔하다. 소설의 배경에 숨어 장기를 기증받아 살려고 발버둥치는 사람들도 결국엔 다 인간이라는 사실이 슬프고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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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피씨주의자의 종생기 The Story of P.C. K-픽션 19
구병모 지음, 스텔라 김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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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저드 베이커리》나 《아가미》 같은 환상적인 이야기를 통해서 구병모 작가를 먼저 접해서 그런지, 이번 소설 《어느 피씨주의자의 종생기》에 담긴 현실적인 이야기와 문체는 꽤 충격적이면서도 흥미로웠다. 이 책은 한국 작가들의 좋은 단편소설을 골라내서 영어와 한글 두가지 언어로 선보이는 아시아 출판사의 k픽션 시리즈 중 한권이다. 깜짝 놀랄만큼 작고 얇은 책인데다, 책의 왼쪽은 한글, 오른쪽은 소설을 영어로 번역하여 동시에 읽을 수 있도록 출간되었다. 소설은 아주 짧지만, 내용이 주는 여운은 의외로 길다. 

1년에 한 권 정도의 소설을 정기적으로 출간하는 소설가 P씨가 있다. P씨는 얼굴과 성별을 공개하지 않은채 5만명 정도의 팔로워를 보유한 SNS 계정을 보유하고 있지만,  SNS에 개인적인 견해나 이야기는 일체 공개하지 않고 오로지 아무 의미 없는 여행사진이나 자신의 카메라 사진을 아주 드문드문 한번씩 올리는 식으로 계정을 운영한다. 최근엔 사회비판 요소를 담은 스릴러 한권을 출간한 참이다. 그런데 그 소설을 읽은 사람들이 소설속에 나오는 인물들의 표현방식이나 이야기 전개방식을 문제삼아 여성폄하의 시선을 가진 작가라느니, 장애인 차별주의자라느니, 불륜을 아름답게 포장했다느니 하는 식의 비판을 내놓기 시작한다. 드문드문 올라오던 비판의 글에도 작가가 묵묵부답으로 대응하자, 어느 날 출판사가 직접 나서서 대응에 나서보지만, 그런 분위기에 휘발유를 들이부은 꼴이되고 만다. 점점 거세지는 작가에 대한 비난들에 P씨는 결국 해명글을 남겨보지만, 꼬투리잡을 거리만 제공하는 꼴이다. P씨는 사람들의 비난에 영향을 받아 다음 소설에서는 사람들의 비난을 받을 구실이 적은 평면적이고, 희망적인 방향으로 이야기를 바꿔나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미 불붙은 비난을 피해갈 순 없다. 작가는 어떻게 이 난관을 극복해나갈 것인가. 

소설을 보면서 소름돋았던 점은 작가가 이렇게 하든 저렇게 하든 비난할 거리는 언제나 존재한다는 것이다. 소설 속에서 아무리 모든 관계를 조율해서 좋은 이야기를 쓰더라도 이야기 속의 장치상 소외받는 인물이나 비난할만한 요소는 어떻게든 찾아낼 수 있다. P씨가 대응을 하면 하는대로, 안하면 안하는대로 모든 것이 조롱거리가 된다. 이런 상황에서 창작자는 어떻게 해야 제대로 대응하는 것일까. 건전한 비난인지, 비난을 위한 비난인지 어느 순간 알수 없게 되버렸다. 뒤쪽에 나오는 작가의 창작노트를 보면 구병모 작가도 소설을 쓸 때 소설의 이야기와 인물간의 관계에 관해서 많은 고민을 한다고 한다. 이야기를 만들다보면 인물관계나 긴장감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소모되는 인물들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삶과 소설은 엄연히 다른 법인데, 삶에서 특정 이야기를 뽑아내어 소설을 쓰는 사람들은 과연 어느 선에서 사회의 도덕률을 맞춰야 할지 고민되는 지점도 분명 있을 듯 하다.  거기다 물어뜯을 거리가 나타나자 하이에나처럼 덤벼들어 덮어놓고 비난하는 사람들의 반응도 너무 리얼해서 진짜 인터넷상의 댓글을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인터넷 세상이 되면서 작가들이 독자의 목소리를 바로 들을 수 있는 통로들이 많아졌다. 이 리뷰도 어쩌면 구병모작가가 바로 읽을 수 있는 독자의 반응일 테니까. 작가가 소설을 통해 꼭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게 있다면 독자들의 반응에 일희일비 하지 말고 밀고 나갔으면 좋겠다. 어차피 이 세상에서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이야기는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실제 세상이 매끄럽지 않은데, 소설 속에서는 누구도 상처받는 사람없는 세상이길 바란다면 그 얼마나 어불성설이며, 그렇게 현실이 반영되지 않은 이야기를 누가 읽을 것인가. 어딘가 불편한 이야기 속에서 또 한번 삶을 생각해볼 수 있게 하는 것도 소설의 역할이다. 

소설이 아무리 막장이라도 과연 현실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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