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의 길 - 양장본
앤서니 기든스 지음, 한상진 옮김 / 생각의나무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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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을 어떤 식으로 바라보는가는 책을 읽는 행위에 중요한 방향을 제시한다. 기든스의 제3의 길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이기에, 현대의 문제점을 적절하게 이야기한다.

그가 제시하는 제 3의 길은 뭘까. 우선적으로 좌파와 우파를 구분하며 그 사이를 걸어가고자 하는 명백한 노릇을 하고 있다. 한상진 대담자와의 대담을 통하여 그는 6가지를 이야기 한다.

1. 정부의 재창조. 2. 시민사회 재구성 3. 정부의 규제 완화와 민영화, 시장 중심적인 신혼합경제 4.인적자원의 개발과 위험 사회에 대한 적극적인 처방으로 복지체제 개편 5.생태환경적 현대화 6.세계적 관리 운영 체제

이 여섯 가지가 그가 이야기하는 제 3의 길이 추구해야 하는 내용들이다. 그는 대안을 제시한다는 측면에서, 정부의 변화를 이야기한다. 조직과 개인의 적절한 조화를 이끌어 가야 한다는 그의 논의는 앞으로 더 지켜봐야할 논의인것 같다. 그가 말한데로 쉽게 단정지을수 있는 일이 아니고,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은 바라 볼려면 최소한 50년을 지나 봐야 알것 아니겠는가.

현재 이명박 정부가 행하고 있는 그들의 발걸음이 이전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 원리를 고취하고 있다는 측면과 그것에 대한 분석이 이 책을 통하여 이루어졌다는 것이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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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를 향한 소리없는 절규 (양장) - 빅터 프랭클의
빅터 E. 프랭클 지음, 오승훈 옮김, 이시형 감수 / 청아출판사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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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내가 느끼는 것 중의 한가지는 한국에 소개되는 사상가들이 굉장히 긍정적이라는 것이다. 그들의 긍정적인 시각은 이 사회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될것이다.

프랭클의 글은 로고테라피이다. 아우슈비츠에서 경험되어진 그의 이론은 자신에게는 합당한 이론이라고 할수 있겠다. 하지만, 나는 그의 이론이 싫다. 개인적인 의미에서만 효과적일수 있는 그의 이론은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메세지를 던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도리어 자신이 처해 있는 주변 환경을 무시하고 그것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거시적인 노력은 거의 하지 않는다.

아무리 인내하면서 끝까지 읽고 싶어도, 이런 그의 바램은 나에게 좌절만을 안겨준다. 아우슈비츠를 겪어도 그는 심리학자의 한계를 못벗어나는 것은 아닐까. 그의 이론은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것을 구하다, 도리어 불합리한 조직 사회에 대해서 마저 긍정해버리는 효과를 가져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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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zh112 2015-06-19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을 하시지 못햇다니 아쉽네용... ^^ 불합리한 조직에 대한 긍정이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잘 이해가질 않네요 또한 제 생각은 불합리한 현실을 변화시키고자한다면 `나`라는 존재가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빅터프랭클의 `의미부여`를 통해 살아감이 옳다고생각되네요 물론 독자님의 생각도 충분히 이해가갑ㄴㅣ다 ㅎㅎ 단지 좀 다른 지평을 알려 드리과 ㅇ렇게 글을 올 려봅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양장) - 빅터 프랭클의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 청아출판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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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클은 로고 테라피를 창시한 사람이다. 로고 테라피는 Noogenic Neurosis 를 설명함으로 명확해 질수가 있는데, 인간은 의미가 상실 되어졌을 때 발생하는 신경증을 일컫는 말이다. 프랭클은 인간의 상황이 어떠하든지, 그것을 맞이할 수 있는 태도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지고 있으므로, 그것을 인간의 의미와 연결 시킨다.

로고 테라피에 대해서는 석사 관련 소 논문을 작성하였기 때문에, 특별히 할말은 없다. 하지만, 읽으면서도 삶에 대한 무한한 긍정적인 상은 배울만하다.

또 한가지는 희망을 잃어버린 인간을 살아야 할 이유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 희망은 어느 순간에도 놓아서는 안되는 마지막까지 버려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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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와 교육과정 - 제2판
Elliot W. Eisner 지음, 박승배 옮김 / 교육과학사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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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isnerd의 인간이 학습을 할때 일어나는 인지 과정에 대한 내용을 적고 있다. 그는 영상의 표상을 통하여 인간을 보다 효율적인 학습을 한다고 이야기 한다. 감각의 표상을 해석하고 이해한다. 비유적으로 드러나는 표상들의 문해력들은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내용을 이전이라는 동의했겠지만, 솔직히 지금은 그다지 동의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커리큘럼이라는 단어에서 묻어나는, 너무나도 제도적인 냄새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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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없는 사회
이반 일리히 지음, 심성보 옮김 / 미토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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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유럽의 세계에 대한 해석의 틀을 기준으로 볼때, 산업 혁명을 기준으로 의무 교육에 대한 필요는 요청되었다. 자본주의 시대에 대한 이해와 분업화에 따른 순종적인 인간(manipulative person)을 길러 내는 것이 필요로 되어졌기 때문이다.

이때 지배세력들은 놀라운 것을 발명하였는데, 그것은 학교 제도이다. 그들은 교육이 가지고 있는 학습자 중심을 따라 움직이는 학습의 형태를 부정하였다. 학교를 통하여 커리큘럼을 제공함으로써, 국가가 원하는 내용과 방식을 학습자의 머리에 주입시켰다. 이것은 교육이 아니다. 이반 일리히는 이것을 'schooling' 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현대를 들어서는 학교는 일종의 교육의 동의어가 되어버렸고, 모든 교육이라는 것이 학교화를 통해서만 일워진다고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그 결과는 정부의 거대한 예산 낭비의 부분을 지적하기도 하지만, 이반 일리히가 보기에는 그것은 지엽적인 문제이다. 초중고등의 학교화 결과는 사회의 수치 측정 가치의 신화를 창출해내는데 있다. 이것은 인간을 재단하고, 인간이 가지고 있는 창조적인 모든 특성을 박탈하는 계기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학교는 12년이라는 길고 긴 시간을 통하여 학생들을 사회에 맞게 재단 하는 과거 의례화의 기능을 어느때보다 강력하게 한다. 그것은 신화의 기능이었고, 중세시대의 가톨릭의 기능이었다면, 현대는 학교가 그 기능들을 대신하고 있다.

학교화가 결국 유도하는 것은 모든 가치의 제도화를 통하여, 제도의 최정점에 있는 자로 하여금 이 사회를 보다 효율적으로 유지하도록 하는 인간 권력을 충족시키는데 그 기여를 하고 있으며, 사람들로 하여금은 학교화 세뇌를 통하여 자신의 처지를 깨닫지 못하도록 한다. 그리고는 철저하게 순종적인 인간 그리고 조작가능한 인간(manipulative person)을 길러내는데 그 목적을 둔다. 이것은 학교를 벗어나서, 모든 제도와 가치를 부정해야 한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이에 대한 대안은 무엇일까? 그것은 학습이라는 단어를 각 개인에게 돌려주는 학습망(educational web)을 형성하는 것이다. 그룹을 토의 하도록 하고, 기술이 필요한 자에게는 학습 기관을 통하여 만남을 통하여 기술 전수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반 일리히의 이러한 일련의 주장들은 학교는 이 지배 계급의 헤게모니를 유지하도록 하는데, 가장 정점이며, 근본적인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schooling 과 education 은 동일한 단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학습은 학교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가정과 자연속에서도 일어나는 것이 학습이다. 이러한 모든 학습의 환경을 학교로만 제한하는 것은 전문가를 필요로 한다고 주장하는 이 사회의 억지스런 주장에 길들여진 결과이다. 우리는 학습의 주권이 나에게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제도화 되어진 가치 판단에 모든 부정을 할 결의가 있어야 한다. 좀 더 나은 교육의 본질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이 사회의 헤게모니를 지닌 자들과 싸울 결의가 있어야만 가능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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