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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탄생 - 마음은 언제 탄생하여 어떻게 발달해 왔는가?
요시다 슈지 지음, 심윤섭 옮김 / 시니어커뮤니케이션 / 2009년 12월
평점 :
육체나 물질에 대립되는 개념으로 '마음'이 있다. '정신', '영혼'이라고도 하는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라 한다. 생텍쥐페리는 어린왕자의 입을 빌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다른 사람의 말이나 행동을 통해 그 마음을 짐작해 볼 수는 있지만 마음의 실체를 확증할 수는 없다. 사람들은 그래서 '마음'이라는 것에 수많은 의미부여를 해왔던 것일까.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은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 정치, 문화, 예술, 대중매체 등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인간 심리를 겨냥하고 있다. 마음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현란한 마음의 시대에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우선 '마음'의 실체를 알아야 할 것이다.
인간 마음에 대한 수많은 억측과 오해의 역사를 거친 오늘날에 이르러 마음과 뇌의 관계를 연구하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마음을 뇌의 작용으로 보는 학자들에게 마음은 더 이상 물질에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다. 정신과 의사들은 뇌스캔을 통해 환자의 뇌 반응을 지켜보면서 병을 판단하고 치료한다. (부분적이나마)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활동을 눈으로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마음'도 인간 육체의 물질작용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그렇지만 인간 '마음'은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 것 같다. 인간 정신, '마음'은 수많은 가설과 추측으로만 접근해 볼 수 있는 실정이다. 《마음의 탄생》도 그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아기는 가혹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방편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 전능인자가 활동하는 과정을 통해 마음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극단적으로 말하면 '마음이란 마음의 핵을 중심으로 다양하게 활동하는 정신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본문 중에서)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서 왔는가,라는 가장 원초적인 문제를 화두로 책은 시작된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요시다 슈지는 7백만 년이라는 아득한 시간을 거슬러간다. '마음'은 인류가 걸어온 오래된 역사의 산물이라는 명제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 '인간'이 곧 '마음'이냐. 극단적으로 말하면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마음'이 없는 육체는 살아 있는 인간이라고 할 수 없지 않은가. 그러면 결국 '마음은 무엇이며 어디서 왔는가'라는 문제이다. 요시다 슈지는 다각도로 이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진화론적 관점을 중심으로 다양한 사회현상, 문화, 역사 속에 숨겨진 '마음'의 작용을 추적하고 있다.
인간은 환경, 역사, 풍속, 관습에 의해 큰 영향을 받는 생물이지만, 누구든 보편성을 갖고 있는 생물이기도 하다. 그 보편성이 바로 사람다움이다. (본문 중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자명성 - 사람다움에 관한 내용이었다. 어머니의 양수와 일체감을 느끼던 것이 자연에서 인간으로 향하게 되었는데, 이것을 공감성(共感性)이라 한다. 공감성 덕분에 인간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화제의 다큐 '아마존의 눈물'을 보았을 때 느꼈던 감동이 공감성에서 기인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공을 뛰어넘는' 인간의 보편성, 바로 사람다움이 우리 '마음'을 두드릴 수 있었던 것이다.
진화의 규칙에서 벗어난 뇌가 커진 인류는 고기를 먹는 반칙행위를 함으로써 살아남을 수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 말은 필수불가결한 요소였던 것이다. (본문 중에서)
뇌가 커진 인류가 멸종 위기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까닭이 말, 바로 언어 사용에 있다고 한다. 그리고 언어는 '마음'을 탄생시켰다. 수렵채집생활에서 농경사회로의 전환은 인간 마음의 역사에서 변혁기라고 할 수 있다. 자연을 절대시했던 수렵채집시대에는 없던 갈등이 농경사회에서 생겨났다. 농경사회에서는 인간관계 속에서 절대성이라는 환상을 찾으려 했기 때문이다. 절대적 자연을 대신해 인간에게서 절대성을 추구하면서 "언어와 현실의 괴리"가 생겨났다. '거짓말'의 탄생이다.
부모자식 관계에서 환상을 볼 필요가 없는 이누잇 사람들에게 부모가 아이에게 가지는 감정은 그저 단순한 사실에 지나지 않는다. (...) 한편, 농경사회에서는 계속 거짓말을 해야만 살아갈 수 있다. 그것이 농경으로 살아가는 자들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우리는 항상 거짓말하지 말고 정직하게 살라고 배운다. 하지만 그렇게 배우는 이유는 우리가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농경민은 인간관계가 환상적이기 때문에, 인간관계 속에서 확증을 구하는 대화가 끝도 없이 계속된다. 우리는 서로 상대방 안에서 확증을 얻으려 하기 때문에 서로 거짓말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본문 중에서)
어떤 자식은 예쁘고 어떤 자식은 정이 덜 간다고 솔직하게 '마음을 털어놓는' 이누잇 사람들의 모습이 낯설고 충격적이면서도 한편 부러웠다. 인간에게서는 결코 얻어내지 못할 '절대성'을 위해 우리는 거짓말을 일용할 양식으로 여기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자연이라는 파트너를 잃은 농경민"의 비애를 느꼈다. (아, 자연!) 거짓과 진실이 뒤섞인 세상에서 거짓말을 못한다면 그것이 더 큰 문제이다. 이제 거짓말도 능력이라 한다.
비교적 방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데도 쉽고 재미있게 읽힌다. 요시다 슈지는 저자 후기에서 "누구든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가급적 학술 용어를 배제하려고 노력했다. '마음'은 몇몇 전문가들만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전능인자, 자명성, 디지털화, 아날로그화 등 전문용어들이 등장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 내용을 알기 쉽게 풀어주고 있기 때문에 읽는 데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다. 진화론이나 심리학, 뇌 관련 책들을 보아왔지만 이 책만큼 군더더기 없고 이해가 쉬운 책은 드물었다. 책을 통해 '마음'을 추적해나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인간이라는 것, '나'라는 것에 대해 다양한 관점을 얻을 수 있다. 아울러 마음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도 조망해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