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혼 불어넣기 ㅣ 아시아 문학선 8
메도루마 슌 지음, 유은경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08년 3월
평점 :
"잊어버리지 마라." 아버지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온 듯했다. (...) 할아버지는 단지를 껴안고 동굴을 나왔다. 저녁때가 다 되었으므로 미군 기지에 있는 조명들의 강한 빛줄기가 몇 개나 교차하며 해안선까지 뻗어나갔다. 여기는 이제 고향이라 부를 수 없는 장소가 되었음을 할아버지는 깨달았다.
- (브라질 할아버지의 술) 중에서
나라를 잃는 일은 고향을 잃는 것과 같고, 고향을 잃는다는 것은 어린 시절의 추억을 잃는 것. 어린 시절을 잃는다는 것은 정체성의 상실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브라질 할아버지의 술』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그 옛날 독립국이었던 류큐(현 오키나와)는 기나긴 압제와 핍박의 역사를 가졌다. 일본 본토에 오키나와 현으로 귀속되어 나라를 잃은 설움도 모자라 2차 세계대전 때에는 다시 일본의 횡포를 온몸으로 견뎌내야 했다. 포츠담 선언, 샌프란시스코 평화 조약으로 오랜 기간 미군 정하에 놓여 있어야 했던 오키나와의 역사는 남의 일 같지 않다. 일본의 역사 왜곡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현재 일본 땅에 귀속되어 있는 오키나와를 두고도 자신들의 파렴치한 행동을 감추기에만 급급한 일본의 태도에 피가 끓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오키나와 인이 자신들을 우치난추(오키나와 인이라는 말)라 하여 일본 본토인(야마톤추)과 구분을 짓는 것은 피 맺힌 역사를 '잊지 않으려는' 그들의 일념이 아닌가 생각했다.
『브라질 할아버지의 술』은 오키나와를 배경으로 한 소설집이다. 오키나와에서 나고 자란 우치난추가 썼다는 점이 흥미롭다. 나는 이 작품집에서 오키나와 인의 자존심을 읽었다. 그들이 나고 자란 바닷 내음을 맡았고, 그들을 예까지 이끌어 온 역사의 피바람을 보았다. 메도루마 슌은 소설 곳곳에 오키나와 인의 역사와 정서를 심어놓고 있다. 표제작 「브라질 할아버지의 술」에서 노인이 소년에게 그 옛날 자신의 아버지의 술 단지에 얽힌 역사적 비극을 들려주면서 손수 술 한 잔을 나누는 모습이 감동적이다. 전쟁과 죽음을 거친 술 단지의 깊은 향기가 여러 세대를 건너 전해지는 것이다.
할아버지의 얘기는 이런 식이었다. 신이 나면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이야기를 계속하면서 아와모리 3홉들이 한 병을 비우고 밭일도 내팽개쳤다. 할아버지가 내주는 파파야나 구아바, 라이치 같은 것을 먹으면서 나도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는 데 열중했다. 물론 지금이라면 아이를 상대로 허풍을 떤다고 웃어넘길 수도 있으리라. (...) 하긴 유탄에 맞아 생긴 흉터라며 보여 준 위팔과 정강이의 상처가, 그 후의 이야기에서는 은 광산에서 생매장됐을 때 생긴 상처가 되기도 하고, 또 그 다음 얘기에서는 술집에서 여러 명의 미국인을 가라테로 쓰러뜨렸을 때 칼에 찔린 상처가 되기도 했다. 그 점을 지적하자 언짢은 표정을 지었으므로 나도 더는 질문을 삼갔다.
- (브라질 할아버지의 술) 중에서
무거운 역사를 지고 있던 노인은 이제 소년에게 그 역사를 넘겨준다. 노인의 이야기는 그러므로 "밭일"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노인의 허풍 속에 역사의 진실이 살아 숨쉬고 있다는 것을 어른이 된 소년은 알았을 것이다. 어른이 된 소년은 노인이 그랬던 것처럼 '노인의 이야기'를 하면서 오키나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노인이 오랜 세월 간직해 온 술 단지에 배인 향기처럼 역사는 '기억하는 자'에 의해 멀리까지 흐르고 또 흐른다.
메도루마 슌의 소설집은 크게 두 가지 테마로 이뤄져 있다. 오키나와의 역사가 그 첫 번째 테마라면 '샤머니즘'을 토대로 한 '죽음'이 두 번째 테마라 할 수 있겠다.
인간은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나 바다에서 나는 생선을 먹고 자라서 바다에 의지해 살다가 죽어서는 바다 저편 세계로 가는 거라고 우타는 배웠다. - (혼 불어넣기) 중에서
살아 있는 사람의 혼이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혼 불어넣기>나 죽은 사람의 영혼을 보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이승의 상처를 이끌고>, <내해> 속에 흐르는 샤머니즘이 오키나와의 정서 일부분을 차지하는 것인지는 잘 모른다. 그렇지만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샤머니즘이 크게 낯설지 않다. <혼 불어넣기>에서 혼이 나간 고타로의 몸에 소라게가 점령하면서 결국 죽음으로 이어진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빨간색 볼펜으로 손이나 얼굴에 낙서를 하고 잠자리에 들면 바깥을 떠돌다 돌아온 영혼이 집을 못 알아보고 영영 나가버린다는 무서운 이야기를 어린 시절, 굳게 믿었던 기억이 난다. 사람이 죽기 전에 보인다는 도깨비불이나 죽은 사람의 혼이 형상으로 보이는 장면 등은 우리에게도 익숙하게 다가온다. 메도루마 슌이 보여주는 '죽음'은 삶과 뚜렷한 경계를 짓지 않는다. 삶 속에 죽음이 있고 죽음 속에 삶이 깃들어 있다. 특이할 만한 점은 삶의 장소도 죽음의 장소도 '바다'라는 것이다. 오키나와 인들에게 '바다'는 잃어버린 고향에 다름 아닐 것이다. 아픈 역사가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는 점에서 오키나와 사람들에게 '바다'가 갖는 의미는 남다를 것이다. 죽음의 순간에라도 잃어버렸던 고향의 품으로 돌아가고픈 오키나와 인들의 그리움, 한(恨) 같은 것을 나는 읽어낼 수 있었다. 작품 속 바다와 죽음의 묘사가 가슴을 치는 것은 아마도 그런 연유에서일 것이다.
가장 매력적이었던 작품은 <투계>였다. 싸움닭의 잔인성과 그보다 더 잔인한 인간의 모습을 힘 있는 필치로 그려낸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내가 주목했던 것은 '분노'였다. 싸움닭들의 싸움 장면, 그리고 그것을 흥미롭게 지켜보는 인간의 잔인성 따위는 읽어내는 이의 분노를 자아낸다. 사토하라를 향한 다카시의 두려움과 분노에서 나는 일본 본토에 대한 오키나와 인의 강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다카시가 사토하라의 셰퍼드에게 칼날 박힌 고기를 던지고 휘발유가 담긴 병에 불을 붙여 사토하라의 개와 싸움닭들을 불태우는 마지막 장면은 무서우면서도 아름다웠다.
술에 취한 남자들의 고함 소리와 여자들의 웃음소리가 땅바닥에서 뒤엉킨 두 사람을 에워쌌다. 인파 속으로 달려간 다카시는, 올라탄 남자에게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아 얼굴이 피범벅이 된 아버지를 보았다. 손가락으로 부는 휘파람 소리가 연속적으로 들려왔다. 불기운에 땀이 솟아서 고개를 들어 보니, 불타는 남양삼나무의 황금색과 주황색, 오렌지색 불기둥이 마치 다우치의 곤두선 깃털처럼 아름다웠다. 다카시는 밤하늘로 날아오른 불꽃이 집집마다 날아가 마을 전체를 몽땅 태워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투계) 중에서
"안면을 베이고 머리통이 깨져도 숨이 끊어지지 않는 다우치에게도, 그런 다우치를 묻으라고 시키는 아버지에게도, 아버지의 말을 순순히 따르고 있는 자신에게도 혐오감과 분노가 솟구쳐 내장까지 소름이 쫙 끼치는 기분"을 느끼는 다카시는 싸움에 진 닭을 불쌍히 여기는 한편 강한 분노를 느낀다. 다카시의 이율배반적 감정에서 나는 나라 잃은 설움에 소리 죽여 우는 오키나와 인의 울음을 들었다. 자기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끝내 잃어버린 자책과 일본 본토에 대한 분노가 뒤섞인 울음이었다. 브라질 할아버지의 술 단지에 배인 오래된 향처럼 역사는 우리의 핏속에 새겨져 있다. 오키나와 인들의 설움의 역사를 읽는 동안 우리 한민족(韓民族)의 아픔이 되살아났다. <투계>의 다카시가 그랬던 것처럼 아픈 역사를 몽땅 불태워버릴 수 있다면 좋을 거란 생각도 했다. 그 순간 브라질 할아버지가 술잔을 건네면서 하는 말. "잊어버리지 마라."『브라질 할아버지의 술』은 아무리 아프고 괴로운 역사라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피 흘린 역사를 잊어버리는 것은 또 한 번 나라를 잃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무책임한 일이라는 점을 일깨워주고 있다. 역사를 기억하는 일은 곧 '나'를 지키는 일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