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는 눈동자
알렉스 쿠소 지음, 노영란 옮김, 여서진 그림 / 청어람주니어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뱅글뱅글 돌아가는 검은색이 밤을 떠오르게 했다. 전축의 바늘은 숨을 거둔 누군가의 얼굴 위에 새겨진, 깊은 주름 사이를 흘러내리는 눈물처럼 밭고랑을 만들며 돌아가고 있었다. (본문 중에서)


  

 

   할머니의 죽음에서 이야기는 시작하고 있다. 열세살 소년 윌리엄과 동생 비올렛이 할머니의 '죽음' 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은 잔잔한 공감을 끌어낸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 앞에서(개미나 날파리의 죽음도 괜찮다) 골똘한 표정으로 물음을 쏟아내던 작은 아이였던 때가 누구에게나 있었을 것이다. 할머니가 '벌'로 변했다고 믿는 비올렛과 그런 동생의 믿음을 지켜주려는 윌리엄의 태도는 우리를 아이의 마음으로 물들인다. 할머니가 죽어서 벌이 되었건 물고기가 되었건 분명한 사실은 이제 할머니를 다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 빈자리는 할머니의 꿈 같은 이야기들과 노래로 채워질 것이라는 동화 같은 암시로 끝을 맺는다.


 

   마치 시간을 가로지르는 목소리처럼 노래는 계속됐다. (본문 중에서)


 

 

   삶과 죽음, 거짓과 진실,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대립구도를 팀버튼 감독 특유의 환상 기법으로 풀어낸 영화 <빅피쉬>는 내가 좋아하는 영화다. 죽어가는 아버지의 진실을 찾는 여정에서 아들이 발견한 것은 '꿈의 세계'였다. 늑대인간, 거인친구가 등장하는 아버지의 모험담을 지긋지긋해하던 아들이 재미없고 시시한 현실에 빛을 더해주는 '꿈'의 귀중함을 알아가는 과정이 감동적이다.

 


  할머니는 확실히 최고의 이야기꾼이었다. 비록 할머니의 하루 일과는 비슷비슷했지만, 할머니는 그 평범한 일상을 동화로 바꾸어 놓을 줄 알았다. (본문 중에서)


 

   <노래하는 눈동자>에 등장하는 '할머니'는 <빅피쉬>의 허풍쟁이 아버지를 연상케 한다. 평생 고무줄 공장에서 일했던 할머니의 이야기 속에 고무줄은 등장하지 않는다. 북치고 노래하는 멋진 아가씨가 고무줄을 대신하고 있다. 윌리엄과 비올렛은 그 멋진 아가씨에게 환호를 보냈지만, 할머니와 그 멋진 아가씨는 아무 연관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땅에 벌을 묻어주면서 윌리엄은 할머니가 남긴 꿈 같은 이야기들과 실제 할머니의 삶을 생각하게 된다. 할머니의 꿈과 실제 삶의 간극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 소년은 한 뼘 더 성장한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죽음'은 놀라운 일이다. 미지의 것이라는 데에서 오는 공포와 죽은 이가 남긴 현실의 구멍을 메우는 일까지 극복해야 할 문제가 많다. 우리에게 '이야기'가 남아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이야기'는 우리를 위무하고 격려한다. 살아갈 힘, 상처를 회복할 여지를 준다. 동생의 눈동자에서 '노래하는 할머니'를 보았던 것처럼 윌리엄은 살아가는 곳곳에서 할머니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발견할 것이다. 이야기의 힘을 느낄 것이다. 숲속 작은 벌의 무덤에 한 줌의 흙을! 흙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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