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 여행
김영욱 / 참세상 / 199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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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김영옥

(참세상, 1991, 총 148쪽)

 

거지여행

 

 

 


  시인 김영옥 씨는 진짜 거지다. 전국을 떠돌며 역무원에게 냉대를 받고, 종교인에게 무시를 당하고, 경찰에 쫓기고 그런 모멸을 따뜻한 가슴으로 녹여낸 시를 써서 <거지여행>에 가득 채웠다. 따뜻하다. 하지만 안쓰럽지는 않다. 그가 왜 거지가 되어 전국을 떠도는지, 그리고 그가 목격한 농촌의 피폐상을 시집에 채웠는지에 대해서는 이루 말 못할 비인간적인 사회에 대한 대항이었던 것을 알게 될 때 십분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사연 없는 인생이 없다.

 

  곡절 없는 사람이 없다. 전철에서 구걸하는 사람에게 주머니 동전을 다 꺼내어 주고, 지폐 한 장을 넣어주는 마음을 갖자. 구걸 자체가 굉장히 힘든 일이다. 감히 누가 구걸을 당당히 하겠는가. 내가 더 드릴 돈이 없으니 안타깝고, 내가 안쓰럽다. 나 역시 거지이기 때문이다. 누구라도 그렇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철옹성이라 믿는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일상의 틀이 견고하다고 확신하는가. 그렇다고 여긴다면, 그럴지도.

 

  부산형제복지원 사건이, 한 사회가 조직적으로 개인을 위협할 때 사회전반은 침묵하고 만다. 개인적인 항변으로 저항하면 광인으로 취급한다. 대부분의 안락한 일반인들은 구태여 그 항변에 귀기울이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을 이기적인 동물, 맹수라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일부분의 사람들은 귀를 기울이며 함께 슬퍼한다. 그들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비참한 줄 알면서도 희망을 생각한다.

 

  <거지여행>은 단순히 아름다운 서정시로만 읽힐 내용들이 아니다. 곳곳에 튀어나오는 성적인 농담에는 타당성이 있다. 인성이 인정받지 못할 때 사람은 본성으로 살아가게 마련이다. 공감되는 부분이 많다. 1부에 연작시 "거지여행"은  65편과 "집을 떠나던 날", "내 방황의 시작인 이곳"은 부산형제복지원이 한 개인을 어떻게 종잇장 구기듯 함부로 대했고, 그로 인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무관심 속에서 비참하게 스러져야 했는지를 증언하고 있다.  

 

  친구들과 술 한 잔 마시고 늦게 돌아가던 길, 그 인근 어디에서는 이런 비열한 일이 자행되고 있었다는 것, 세상이 무섭다. 그리고 그 무서운 세상에 사람을 위해 새벽을 열어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고맙고 감사하다.

 

 

 







집을 떠나던 날.

 

그날은 눈이 내리는 겨울밤이었습니다

 

하염없이 눈을 맞으며

 

아무도 가지 않는 밤 눈길 위에

 

두 발자국을 찍으며 진고개를 넘어갔습니다

 

때때로 부옇게 날리는 눈보라에 휩싸여

 

길을 잃고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땅에 엎드려 "하나님 맙소사"를 외치기도 했습니다

 

허리까지 올라오는 눈을 헤치고 죽기살기로 진고개를 넘었을

 

때 허기진 몸뚱아리 녹여주던 진고개 독가촌

 

한 할아버지의 은혜는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그 날부터 시작된 거지생활은

 

하늘을 이불 삼아 논두렁을 베개 삼아 들판에서

 

잘 때가 많았습니다.

 

영하 20'c내려가는 겨울날

 

들판에 쌓여져 있는 짚무덤 속에서

 

쥐와 함께 쉬기도 했던 그때의 일들ㅇ르 더듬다 보면

 

지금은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옵니다

 

어떻게 그런 생활을 했는지 모릅니다

 

다시금 수만냥을 줄테니 거지생활을 하라고 해도

 

지금은 못할 것 같습니다

 

장대비 내리는 여름 장마철

 

비를 피해 교회에 들어갔다가 쫓겨나오기를

 

몇 차례 했는지 모릅니다

 

외진 산골에서는 간첩으로 몰리고

 

역전 대합실에서 자다가 쫓겨나기도 했습니다

 

깡패들에게 심지어 꼬지돈을 빼앗기고 두들겨 맞기까지

 

한 나의 거지생활

 

말이 3년이지

 

한없이 긴 3년이었습니다.

 

 

 

 

 

대도시 역전마다 밤이면 찾아드는

 

거지들과 통성명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거지가 된 이유들이

 

한결같이 순박한 양심 때문임이 슬펐습니다

 

사기를 당해 알거지가 된 사람

 

나처럼 허울뿐인 복지정책에 뒷덜미맞아 거지가 된 사람

 

그래서 서로 위로하여

 

꼬지돈 모아

 

두꺼비 잡아놓고 거지고고를 추기도 했습니다

 

거지고고

 

몇달씩 세수도 안하고 목욕도 안한 몸꼴

 

거기다가 아무렇게나 자란 수염

 

너덜너덜한 옷차림으로

 

춤을 추다보면 어찌나 구경꾼들이 많이 모여들었던지

 

구경하는 사람들에게

 

"아 저기봐라 거지들이 춤을 춘다

 

아 멋진 춤인데

 

저게 거지고고로구나"라는

 

찬사를받기도 했지만

 

호루라기를 불며 달려오는 의경들에게

 

별짓거리 다 한다고 역전파출소로 끌려가며

 

멱살을 붙잡힌 때도 수없이 있었습니다

 

 

 

 

나는 흔히 집생각을 하며

 

가수 이미자씨가 불렀던 '기러기 아빠'를 부르며 눈물짓기도 했습니다

 

"엄마구름 애기구름 정답게 가는데

 

아빠는 어디 갔나 어디서 살고 있나"

 

그 애절함이 이루 말할 수 없어

 

그저 '기러기 아빠'를 밤새도록 흥얼거리던

 

때도 많았습니다

 

그놈의 부산형제복지원 때문에

 

그놈의 기독교를 빙자하여 복지사업한다고

 

수많은 사람을 채석장에 몰아 강제노역을 시킨 박인근 때문에

 

팔자에 없는 거지생활

 

추위 배고픔......

 

정말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전국 방방곡곡을 정처없이 걸어서 누비리간

 

쉽지 않았고

 

열 발가락이 다 터져 피멍이 들고

 

사타구니가 옷에 시닥거려 살갗이 벗겨져

 

걸음조차 걸을 수 없던 아픔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습니다

 

결정적으로 거지생활을 그만 두게 된 이유

 

'이래선 안되겠다

 

집으로 돌아가 나를 둘러싸고 사회에 잔존해 있는

 

온갖 불의와 싸워야겠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정신이상으로 보는 건 마찬가지였습니다

 

동네 사람들도 그렇게 보고

 

일가친척 할 것 없이 다 미친 놈으로 치부하기에

 

그 괴로움을 잊으려고 숨낳은 밤을 지새우며

 

술잔을 기울였습니다

 

깨진 건 내 몸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강릉지역문화운동단체 '새벽들'에 동참하여

 

시작 등 문화운동을 열심히 하면서

 

형제복지원의 실상을 수기로 썼습니다

 

때마침 상상도 못할 인권사각지대 형제복지원 사건이 터기게 되었고

 

저도 그 수기를 '엔터프라이즈'에 기고했습니다

 

그 후 생지옥의 낮과 밤 '부산형제복지원'을 펴냈을 때야

 

비로소 정신병자로 취급하던

 

부모형제들이 인식을 달리하게 되었고

 

마을사람들도 달라졌습니다

 

오랜 여정의 정신병자에서

 

해방되었습니다.

 

 

 

 

* 부산형제복지원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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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 2007-11-26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잘 읽었습니다. 저도 3년을 형제복지원에서 생활하였습니다.
정말......더러운 추억...아니....값진...
사실 아직 잘모르겠습니다.....사건이 터진후 모든친구들과 뿔뿔이 헤이진것이 아쉽고..
다들 어찌 지내는지...궁금하네요...
그저....지금은...그냥 추억일 뿐이네요..^^

환상의시기 2007-12-05 1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이 시집 우연찮게 읽고... 어떻게 형용을 못하겠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