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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고 놀라지 마시라
케빈 마이클 코널리 지음, 황경신 옮김 / 달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누군가를 보는 바로 그 순간, 우리 또한 누군가에게 보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가 이 보이는 세계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완전히 신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우리의 눈은 다른 눈과 결합한다.
ㅡ 존 버거, 『본다는 것의 의미』
어머니 손을 잡고 읍내 장터에 나가면 어디서 그 많은 사람들이 나왔나 싶을 정도로 북적였다. 장날을 기다려 그간 수확한 농작물을 바리바리 싸들고 나온 사람, 손때 묻은 돈을 들고 장터 구경을 나온 사람, 그들을 따라나선 아이들. 수많은 사람들 틈에서 어머니 옷깃을 꽉 쥐고 있으면 손에는 땀이 배어나왔다. 그때 내 키는 어머니 허리에 겨우 미치는 꼬맹이였다. 설탕옷 입은 뜨거운 핫도그를 베어먹으면서 내 눈은 여기저기 머물렀다. 그러다 내 시선이 한곳에 고정되었다. 목을 쳐들지 않으면 얼굴이 보이지 않는 어른들 틈에서 내 눈에 들어온 것은 검은 고무 다리를 끌며 길바닥을 누비는 사람이었다. 그때 내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몹시 놀랐다는 것만 기억한다. 나는 그를 오랫동안 쳐다봤던 것 같다. 그는 시선을 땅에 두고 있었다. 나중에 나는 그런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실제로 다리가 없거나 장애를 가진 사람들도 있지만, 다만 구걸을 위해 다리 없는 사람 시늉을 한다는 말을 어른들에게 들었다. 나는 경악했다. 어린 나이에도 나는 그들이 불쌍했다. 멀쩡한 두 다리를 그런 식으로 욕보이다니. 정말로 병신 같았다. 맨땅에 헤딩이라도 하려는 듯 고개를 푹 숙이고 시선을 감추던 벌레같은 굽은 등이 눈에 선하다.
서두를 조금 불편한 이야기로 시작했다. 이제 안심해도 될 것이다. 지금부터 내가 소개하려는 사람은 굉장히 긍정적이고 유쾌하며 열정적인 건강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케빈 마이클 코널리'는 스물다섯의 청년이다. 두 다리가 없다. 태어날 때부터 없었다. 좌우 상칭 무지증이라고 한다. 처음 그의 사진을 보았을 때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머리와 팔이 있지만 마치 토르소처럼 허리만 댕강 남은 그 모습에 놀라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케빈은 어릴 때부터 놀라움 담긴 시선을 받아왔다. 그를 향한 시선에 담긴 감정은 대부분 경악과 연민, 호기심, 공포였다. 그런 시선을 받으면서 케빈은 세상의 시선을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방식을 익혔다. 그런 긍정적인 마음 자세가 없었더라면 케빈은 집 밖에도 못 나갔을 것이다. 그런데 또 한 번 놀랍게도, 그는 다리 있는 사람들도 하기 힘든 레슬링이나 스키를 즐기고 <x게임>에 출전해 입상까지 한다.
누구에게나 크고 작은 삶의 전환점이 있다. 난생 처음 스스로 번 돈을 쥔 케빈은 여행을 결심한다. 그리고 역시 난생 처음 가족의 도움이 미치지 않는 세계에 홀로 자신을 던진다. 낡고 냄새나는 스케이트보드 하나에 몸을 의지한 채 더 넓은 세상 속으로 향했던 그 시점이 케빈의 삶에서는 하나의 전환점이 된다. 자신을 잘 알고 아껴주는 사람들로 둘러싸인 작고 안전한 울타리를 떠난 케빈은 불편하고 불쾌한 시선으로 가득한 세계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된다. 단지 다리가 없다는 이유로 동정의 시선을 던지고, 시선만으로도 모자라 돈까지 던지는 사람들에게서 케빈은 상처를 받는다. 아무리 시야가 넓고 융통성이 있는 사람이라도 결국 자기 세계 안에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다. 자기 눈에 비친 두 다리 없는 작은 몸뚱이를 받아들이는 그들 마음까지는 케빈도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이국의 붐비는 거리에서 케빈은, 그의 표현대로 하자면, 그들에게 복수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낸다. 그에게 꽂히는 무수한 시선들을 피하기만 했던 케빈이 생각해낸 그 방식은 이렇다. 자신도 그들의 반응을 포착하고 관찰하기로 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카메라를 이용해 그들의 시선을 포착하고 수집하면서 자신과 세계 사이에 놓인 거리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법을 익히게 된다.
《나를 보고 놀라지 마시라》는 케빈이 포착한 다양한 사람들의 시선이 담겨 있다. 그리고 케빈이 그들 시선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솔직하고 유쾌한 문장으로 그려진다. 다시 그 어린 시절 장터로 돌아가서, 병신 시늉하던 고무다리 아저씨를 떠올린다. 그는 왜 시선을 땅에 박고 있었을까. 눈앞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들고 나는 붐비는 그 장터에서 왜 그는 굽은 등과 푹 숙인 고개 아래로 시선을 감추고 있었을까. 책을 읽으면서 나는 문득문득 그 고무다리 아저씨를 생각했다. 맨땅에 헤딩하던 그는 다른 사람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이 두려웠을 것이다. 세상의 눈동자에 비친 자신을 바로 보는 것을 피했던 것이다. 검은 고무 아래 감춰진 두 다리, 멀쩡한 두 다리가 있음에도 자신이 병신이라는 것을 생각하기 싫었을 것이다. 그런데 물론 이것은 나의 시선이고 나의 생각일 뿐 실제로 그 사람이 왜 맨땅에 헤딩하듯 고개를 땅에 처박고 눈을 내리깔았는지는 모를 일이다. 케빈이 포착한 사람들의 시선에 내 시선을 포개면서 나 또한 이들 중 하나가 아니었나 반성을 하게 되었다. 또 누군가는 나에게 그런 편협한 시선을 던졌고, 던질 것이라는 사실도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것도. 이 다양한 세계, 무수한 시선들 속에서 '나'를 잃지 않으면서 '너'를 포용하면서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케빈의 삶, 그리고 그 안에서 그가 포착해낸 다양한 시선들은 많은 생각을 던져 준다. 그래서,
케빈, 너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네 눈에 비친 나를 보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