쥘과의 하루
디아너 브룩호번 지음, 이진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어느 평화로운 아침, 잠에서 깨어난 알리스는 남편(쥘)이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소파에 앉아 창 너머를 바라보고 있는 남편의 모습은 죽었다고 하기에는 너무 자연스럽고 생생하다. 남편의 죽음, 갑작스러운 이별을 마주하고 알리스는 담담하다. 여느 날처럼 샤워를 하고 커피를 마신다. 샤워를 하면서도 알리스는 남편이 죽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 받아들일 수 없다. 소파에 앉아 잠깐 눈을 붙이고 있는 듯한 평온한 남편의 모습은 죽음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창 너머에는 눈이 내리고, 부지런한 누군가 눈 치우는 소리가 들린다. 알리스는 쥘이 매일 아침 읽던 신문을 들여온다. 그리고 쥘 옆에 앉아 신문을 읽는다. 차갑게 식어가는 쥘에게 말을 건다. <쥘과의 하루>는 어느 날 갑작스럽게 남편을 잃은 여자의 하루를 그리고 있다. 쥘을 향한 알리스의 말, 허공을 치는 혼잣말은 시간(時間)을, 쥘의 죽음을 유예시키고 있다.

 

   <쥘과의 하루>라는 제목에도 드러나듯이 작품을 구성하는 중심 모티브는 '시간'이다. 남편의 죽음으로 알리스의 익숙한 일상은 덜커덕, 급제동이 걸린다. 홀로 남편의 죽음을 독차지하고 앉아 그에 대한 증오와 사랑을 털어놓는 알리스의 모습에는 익숙한 시간을 잃어버린 자의 상실감과 시간을 붙들고 있는 자의 힘이 교차한다.

 


   그는 죽지 않았다. 그녀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 한. 그는 살아 있다. 그녀가 원하는 한. 아직 그에게 못 다한 말이 너무 많았다. 하루가 지나는 동안 하나씩 떠오를 것이다. (25쪽)


    

   알리스의 독백은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를 아우르는데, 그의 독백, 정체된 알리스의 시간 속으로 들어와 익숙한 일상을 깨워주는 것이 이웃집 소년 다비드이다. 소년은 매일 오전 10시가 되면 쥘과 바둑을 두었다. 자폐증을 가진 이 소년은 어김없이 10시가 되면 바둑을 두러 온다. 삶과 죽음, 일상과 비일상이 뒤죽박죽 된 알리스의 시간의 균형을 유지시켜 주는 역할을 다비드가 하고 있다. "밤이에요. 이제 자야겠어요." 소년의 정확한 시간관념은 알리스를 '밤', 자야 하는 시간에 데려놓는다. 알리스는 잠이 든다. <쥘과의 하루>는 알리스가 깨어난 아침부터 잠자리에 들어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날 때까지의 짧은 시간 동안을 그리고 있다.   

 

   로랑 모비니에의 <이별 연습>이라는 소설이 있다. 정부(情婦)와 동행 중 교통사고를 당해 식물인간이 된 남편을 향해 혼잣말을 하는 청소부 아내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쥘과의 하루>를 읽으면서 나는 자꾸 <이별 연습>이 떠올랐다. 알리스나 <이별 연습>의 청소부 아내에게 '혼잣말'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그것은 남편을 향한 것이기보다는 시간이 축적한 모든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는 치열한 몸부림 같은 것은 아니었나. 다시 살아가기 위한 그 몸짓은 그러므로 숭고하다.


 

 

  "이제 모든 것이 달라지겠죠. 그래도 살아 있는 당신보다 죽은 당신을 떼어버리는 게 나한테는 더 쉽네요. 당신이 피와 살로 된 여자의 수중에서, 내 삶에서 떠나는 걸 보느니 차라리 환히 빛나는 천사의 손에서 사라지는 게 더 나아요." (66쪽)

 



   가장 익숙했던 무엇이 갑자기 사라진다면 누구든 그동안의 '시간'이 붕괴되는 경험을 한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뒤엉키고 '나'의 자리는 위태로워진다. 알리스는 그 위기를 독백이라는 형식으로 극복하고 있다. 일상에 뚫린 크고 검은 구멍을 가슴속에 쌓아두었던 말로 메우고 있는 그녀의 이별 연습을 지켜 보는 내내 나는 숨을 죽이고 있었다. 알리스의 하루는 우리가 겪었거나 앞으로 겪을 시간이라는 점에서 누구에게나 울림이 깊은 작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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