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 없이 떠나는 101일간의 세계 인물 여행 지도 없이 떠나는 101일간의 세계 문화 역사 9
박영수 지음, 노기동 그림 / 풀과바람(영교출판)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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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못 든 길이 지도를 만든다,라는 시집이 있다. (강연호, 문학세계사, 1995)  <지도없이 떠나는 101일간의 세계 인물 여행>(이하 <세계 인물>)을 읽는 동안 왜 그 시집이 떠올랐을까. 표제작에 당하는 시가 아니라 시행을 옮겨 적었던 것 같은 <잘못 든 길이 지도를 만든다>....  <세계 인물> 속에서 다루고 있는 많은 위인들 가운데 굳히 다뤄 좋을 만한 인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던 탓일까. 하지만 한 사람 꼭 알아야 할 사람 한 사람만이라도 있다면 이런 유형의 책은 필요하다.

 

     여전히 나는 한국사에 관심이 많고, 우리나라 위인들에 관심을 가지려고 애쓴다. 애는 쓰지만 실천이 없으니 절로 낙망감에 시달린다.  세계사 인물임을 분명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때로 우리나라 사람은 안 나오나 하며 목차를 훑고는 다시 읽던 부분으로 되돌아가 마저 읽고, 책장 모서리에 표기된 99일, 100일째를 보면서 너무 빨리 읽어내지는 않았나 하는 불안감도 적이 들었다.  어쨌든 이 책은 어른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아이를 대상으로 한 책이 아닌가.  하니 독서법에 쓸데없는 의구심을 버리자.  그리고 이 책은 한국 인물이 아니라 세계 인물이다.  

 

     <세계 인물>은 대륙별로 나누고 있다. 하니 그들의 정치색, 세계관, 가치관을 일목요연하게 살피기는 다소 어려울 수 있으나 우선 읽기에는 이러한 골격이 더 나을 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에게, 특히 초등학교 저학년일 경우에는 나무보다는 산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해서 산정상에서 세상을 내려다볼 기회를 주는 것도 좋을 법하다. 나무 하나하나를 살피고 앉았노라면 왠지 답답하고 갑갑증이 나 집을 뛰쳐나가고 싶다. 다 큰 어른도 생각만으로 이렇게 넌더리를 치는데, 놀기 좋은 시절 아이들이라면 오죽하겠나. 해서 <세계 인물>은 짧게, 한 인물 혹은 두 인물을 하루에 걸쳐 읽도록 배분하고 있다. 아이들의 집중력을 감안한다면 현명한 발상이다.  근접한 국가들, 중국과 일본에서 인도, 중앙아시아, 동남아까지가 우선 1장에 수록된 이야기들이다. 27인물에 37일이 할애되고 있다. 융통성 있는 시간 배분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2장은 아메리카, 3장은 유럽, 4장은 러시아와 기타 여러 나라의 인물 들을 다루고 있다.

 

    <세계 인물>을 통해서 아이들이 삶의 모범, 역할 모데를 찾아내기를 바라는 것은 아무래도 과도한 바람이다. 그것보다는 아이들이 세계 인물들에 관심을 갖게 도와주는 것으로, 주변 세계에 관심을 갖는 것으로 활용하면 좋을 성싶다. 하나의 이야기에서 다양한 생각이 도출되듯이 이 책에 수록된 많은 인물, 조바심 내지 말고 아이들에게 읽혀주자. 읽기를 싫다 하며 나돈다면 읽어주자. 그것도 싫다 한다면 지나는 말로 하루에 한 사람씩이라도 세계 위인을 귀에 익게 도와주는 것은 어떨까.  많은 인물이 거론되고 있는 책이기 때문에 학습의 방향을 종잡기에 충분한 책이다.  아이들은 어른보다 표현력이 탁월하며, 상상력에는 한계가 없다.  하지만 4지 택일형 문제와 성적 중심, 결과 지향의 교육구조에서는 탁월한 한계점, 울타리, 감옥에 아이를 가둬버리기가 수월하다.  어떻게 할까, 학습의 첫 선택은 양육자다.  잘못 든 길도 지도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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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탄생 - 현상과 실재, 인식과 진리, 인간과 자연에 던지는 첫 질문과 첫 깨달음의 현장
콘스탄틴 J. 밤바카스 지음, 이재영 옮김 / 알마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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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탄생이라... 그 처음을 말한다. <철학의 탄생>은 색인 부록까지 모두 포함하여 551쪽으로 두꺼운 전문서적에 속한다. 전반부 머리말에는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를 다루는 이유를 밝히고 그리스 철학을 개괄적으로 살피고 있다.  누구는 철학을 세상을 보는 눈이라 하고, 누구는 생각하는 힘이라고도 한다.  아마 두 정의 모두 맞을지도 모른다.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고 또 우리는 왜 살아가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에 대한 진지한 물음이 철학일지도 모른다.

 

     그리스인들의 작은 도시국가들은 동방 민족들의 거대한 국가들과는 달리 개인을 사소한 존재로 해체시키지 않았다. 이 사실만 보아도  우리는 개인들이 제각기 중요한 사회 단위로 기능할 수 있는 정체를 세우고자 한 그들의 의지가 매우 강했음을 알 수 있다. (...) 위대한 동방문화의 예술품들의 경우, 창작자는 드러나지 않는 익명의 존재로 머무른다. 이와 달리 그리스에서는 헤시오도스가 이미 삼인칭을 사용하여 자신을 <우주기원론>의 저자로 내세우는 방법을 개발했다. (...) 자신의 이름으로 당당하게 저작을 발표하게 되며, 자신의 저서에 대한 높은 책임감을 지니게 된다. 이러한 경쟁과 교류의 비옥한 토양 위에서 오래지 않아 철학과 과학의 씨가 싹트게 되는 것이다. (46쪽) 

 

     동양과 서양의 철학의 차이를 '이름'으로 요약하고 있다. 일면 타당한 주장으로 보인다. 동양 문화권에서, 적어도 나는 구태여 이름밝히기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잠시 좋았던 소풍으로 이 세상을 보려고 했던 천상병 시인이나 어린이날 돌아가신 박경리 선생님 역시 버리고 갈 것만 남아 홀가분하다고 말씀하지 않으셨던가. 이름은 필요하지만 절실하지 않다는 것, 그것이 아무래도 세상을 보는 관점의 차이, 즉 세계관의 차이가 아닐까. 생각지 못했던 '이름'에 대해서, 이 책을 읽는 첫머리에 깊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2장의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에 대한 개관,은 <철학의 탄생>을 읽는 데 일조를 한다. 숲에 들었다가 길만 잃고 만신창이가 되고 말 듯 글쓴이 역시 이 책의 난해함을 감안, 읽는이를 위해 배려한 것일지도, 또는 그러한 글쓰기가 정형화된 문화권에서 배우고 익히고 생각하는 법을 피부로 느껴 그랬는지도 모를 구성을 선뵈고 있다. 그리고 다음 장부터는 지역을 중심으로 해서 철학자를 소개하고 있다. 밀레토스의 탈레스, 밀레토스의 아낙시만드로스, 밀레토스의 아낙시메네스... 라는 식의 제목은 철학을 어려워하는 나로서는 밀레토스가 지역명이라는 것도 모르고, 우선 밀레토스가 사람 이름, 그리고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메네스 등은 철학 명제가 아닌가 혼동했다. 물론 책장이 넘어갈수록 혼란은 진창으로 빠져들었다. 어렵다. 왜 이렇게 어려워할까. 각각의 철학자에 대해서 미리 개관이 있었고, 구성 역시 읽는이가 혼란스러워 말기 위해서 동일한 배열을 사용하고 있는데도 혼자 읽기에는 정말 어려웠다.  읽어 공부하는 것보다 강의를 들어야 할 공부가 있는데 아무래도 철학은 혼자 해서는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분야가 아닌가, 몇 권 철학책을 읽어 이름만 어느 정도 눈에 익을 뿐 지난 역사 속의 철학자들이 하고자 하는 소리가 과연 무엇이고 그 내용이 지금 내게는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는 오리무중이다.

 

     <철학의 탄생>은 잘 씌어진 책임에는 여부가 없다.  하지만 철학의 기본적 소양 없이 읽어내기에는 무리다. 책 읽고 자가진단을 해본다. 학점은 D 정도. 아니다. 낙제다. 다시 한 번 읽어내야 할 책이다. 책장 높은 자리에 오래 꽂아두고는 무거운 숙제로 느껴야 할 시간이 느껴진다. <철학의 탄생>. 그렇다면 철학의 죽음 또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철학이 무엇인지 제대로 모르면서 나는 머리속에 뒤죽박죽 뒤섞인 철학자들이 불편해서 벌써부터 철학의 죽음을 생각한다. 내키지 않는 감정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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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향력 - 다른 사람 마음에 나를 심는 기술
크리스 와이드너 지음, 류지연 옮김, 이종선 / 리더스북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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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향력>, 소설 형식을 빌린 '자기계발서'이다.  <영향력>.  사냥꾼과 낚시꾼의 비유가 탁월, 가장 기억에 남는다.  영향력이라는 것이 설득, 설복, 굴종은 주된 목적이 아니라는 것, 진정 마음을 열기 위해서는 진심으로 다가가 낚아채야 한다는 것, 말이야 같지만 어감, 느낌이 다르다.  즉 영향력은, 내 행동의 변화, 변경은 타자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의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생각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어느 것이 더 옳을까, 더 기분 좋은 변화일까를 생각해보자.  

 

     "자, 마커스, 핵심은 바로 이거다. '내가 미끼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대체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하더군.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 만큼 성공적인 사람으로 발전할 수 없는가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내가 어떤 사람이냐!'에 달려 있지. (...) 사람들은 자네의 상품, 서비스, 언변, 아이디어 혹은 미래에 대한 비전 따위를 사는 게 아니라, 무엇보다도 먼저 '자네'라는 사람을 사는 거야. 알겠나? 그런 의미에서 '나는 어떤 미끼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필요가 있네."

(102~103쪽)

 

       <영향력>은 할머니가 손자에게 주는 선물이다. 세계적인 대부호 바비,와의 하루를 손자 마커스에게 생일선물로 주면서 이야기는 본궤도에 오른다. 영향력 학습의 표면적인 목표는 돈을 많이 벌어들이는, 즉 경영학적인 성공을 위함이다.  즉 여기서 말하는 낚시, 미끼는 즉 '나'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더 나은 사람으로 실현함에 따라 다른 사람에게 긍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뜻이다. 먼저 윤리, 도덕적인 인성을 바탕으로 두고 기술, 능력을 함양하여 사람들 사이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사소한 것들이 더 중요하다네. 그래서 나는 사소한 걸 더 집중해서 보는 편이지. 사소한 문제와 관련된 규칙을 아무렇지도 않게 어기는 사람이라면, 큰 문제도 어길 가능성이 많거든. 자네, 금액에 관한 조건은 꽤 괜찮아 보인다고 했지? 물론 내가 보기에도 괜찮네, 다만 그것이 사실이라면 말이야. 하지만 그것이 사실이라고 어떻게 믿을 수 있겠나."

(120쪽)

 

     우리는 언제 성취감을 느끼는가.  달성하고 이루었을 때 성취감과 만족감을 누리게 된다.  원대한 포부는 가슴 속에 담고 실제 계획은 구체적이고 간단해야 한다. 실패는 좌절과 무기력을 선사한다. 어떻게 하겠는가. <영향력>이 우리에게 귀뜸해주는 내용은 간단하다. '나'에서부터 시작하여 '나로' 돌아오는 것, 결국 우리는 누군가에게 영향력을 발휘하고 싶는 말, 그 주장의 이면에는 '나'가 바라는 바를 수월하게 이루고 싶다는 다른 뜻이 드리우고 있는 것이다.

 

     최근 읽는 화술책, 화법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주 거론된다.  <수사학>.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시학>은 익히 들어 알고 있지만 <수사학>이라는 것도 있구나....  하면서 또 꽤나 어렵겠다 지레짐작으로 겁을 먹는다.  읽다가 덮어둔 <시학>.  하지만 어렵다고 여겼던 내용을 직접 강의를 듣거나 가까운 사람에게서 설명을 듣는다면 상황은 완전 뒤짚힌다.  혼자 골방에서 읽는 것과 실제 현장에서 체험하는 것의 차이일 것이다. <영향력>에서 언급하는 수사학 역시 낯설지만 읽어두어야 할 내용일 것이다.  소설 형식의 이야기체로 씌어진 <영향력> 하지만 너무 쉽게 읽히는 것은 아닌가, 또 나는 소설 형식이라 너무 쉽게 책장을 넘긴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가볍게 읽고 덮어버릴 책은 세상에 없을 듯하다. 읽는 내가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에 따라서 책은 달리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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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갈의 아라비안 나이트
리처드 F. 버턴 지음, 김원중.이명 옮김, 마르크 샤갈 그림 / 세미콜론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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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갈의 아라비안나이트> 샤갈? 샤갈이 쓴 아라비아나이트라고 생각은 안했다. 그렇다면 이 책이 샤갈의 소유인가, 여태 내가 알아온 아라비안나이트와는 완전 다른 내용이지 않을까 하는 또 엉뚱한 생각을 했다. 절반은 들어맞고 나머지는 역시나 엉뚱한 망상이기는 했지만 이 책은 특별하다.  왜냐하면 샤갈의 그림이 삽화로 있고, 샤갈이 직접 가려뽑은 이야기 네 편이 수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샤갈이 추상파?냐,라고 물었더니 병신이란 소리가 들렸다. 입체파다,라고 덧붙여 설명해주는 친절함에 나는 참 더럽게 그림 못 그린다로 맞받아쳤다.  (논점 일탈의 오류가 아닐까.. ㅡ,ㅡ ) 그림이 참... 그렇다면 나는 어떠한 그림이 최고라고 여기는가... 딱히 말할 건덕지가 없음에도 이 책에 수록된 샤갈의 그림을 폄하한단 말인가...  자꾸 자꾸 보니 익숙해지는군... 그래도 못 그렸다.  그런다.  그렇다면 수록된 네 편의 이야기는 어떨까.   <아라비안나이트> 알라딘의 요술램프, 하늘을 나는 요술담요?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놈들.. 그 정도 나는 기억을 할지 모르겠다.  물론 내 기억은 책이 아닌 만화영화였다.  태어나면서부터 tv 속에서 산 것은 아니지만 또래와 이야기에는 늘 TV에서 방영한 만화가 화제로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톰소여의 모험, 빨강머리 앤, 개구리소년, 은하철도 999 아 생각만해도 그 시절 그 화려한 영상물에 현혹되어 침 질질 흘리던 기억(물론 나는 침은 흘리지 않았다, 넋만 옴쏙 빠져나가 불그락푸르락 낯빛 바뀌는 아버지를 눈치 못채고 앉았다가 쫓겨나기 일쑤였다) 그 혼재된 기억 속에 아라비안나이트가 있었다는 것, 분명하다.

 

     <샤갈의 아라비안나이트>에는 이야기 네 편이 수록되어 있다.  즉, <흑단마 >, <바다의여인 줄나르와 아들 바드르 바심왕>, <어부 압둘라와 인어 압둘라>, <카마르 알 자만과 보석상의 아내>.  마법과 환상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큰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기이한, 신비한 세계, 하지만 있을 법한 세계를 눈앞에 그려보이면서 <아라비안나이트>는 몰입도를 높이고 있다.  세에라자데가 목숨을 내놓고 밤마다 이야기를 풀어내며 근근이 목숨을 이어가던 것이 <아라비안나이트>이라는 것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폭군의 손아귀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야기를 고안해내고 끊어지지 않는 많은 이야기, 재미와 흥미가 있는 이야기에는 역시 '마법'이 최적절일 성싶다.  그러한 당위로 '마법', 혹은 마법의 소도구가 <아라비안나이트>에서 종종 발견되고, 우리는 이야기 속에서 새로운 도구가 등장하기를 은근히 기대하고 있다.  줄거리 있는 이야기에 사람은 쉽게 빠져들고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야기 속 누군가가 나와 비슷하다면, 이야기 속 그의 모든 일이 내 것인양 느껴지고 그의 귀추가 궁금해지게 마련이다. 처음 <아라비안나이트>는 인격장애를 지닌 폭군에게서 벗어나기 위한  목숨을 건 스토리텔링(이야기하기)였다.  폭군이 듣고 금방 내 이야기다 알아챈다면 몹쓸 것, 욱하는 성질에 세에라자데는 목이 달아갔을 것이다. <아라비안나이트>는 폭군을 구슬리는 이야기이다. 이야기의 힘은 실로 막강하다.

 

      샤갈이 '오래된 사랑'으로 네 편을 다시 엮었지만 기존 이야기의 틀을 훼손하지 않은 듯, 세에라자데라는 화자를 그대로 살리고 있다. 그리고 이야기의 구성 역시 야화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즉 샤갈은 삽화와 이야기 배치에만 관여했을 뿐 <아라비안나이트>를 그대로 살리고 있는 것이다. 네 편의 이야기, 누군가에는 부족하다 싶을지도 모를 테지만 '사랑'이라는 주제로 천천히 읽어본다면 투박한? 샤갈의 삽화에서도 이야기를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샤갈이 그린 그림은 크레파스로 그렸다가 맘에 안 들어 뭉개버린 스케치북 같다. 그런데도 정겨움이, 포근함이, 기묘한 이 느낌.... 역시 큰 화가 샤갈이라 싶다. 그림은 모르지만, 그가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을까는 어렴풋이 느껴진다. 보편성에서 기인하는 이음줄일 것이다.  그림은 못 그렸지만 잘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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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비테의 자녀교육법 - 올바른 교육이념과 철학을 제시한 가정교육의 바이블
칼 비테 지음, 김락준 옮김 / 베이직북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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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살면서 가장 큰 보람을 느끼는 때가 언제일까. 아무래도 낳아 기르는 맛? 그렇다고 낳아 길러 먹어버리면... 안 되는 것이 인간 도리이다. 양육과 사육은, 그러니까 먹고 안 먹고의 차이가 아니겠는가. 그러니 <칼 비테의 자녀교육법>을 읽는 동안, 아침에 2층 난간에서 멀리 닭장을 내려다보면 닭사료를 바가지에 담아 들고 다니는 아버지가 계시다.  유심히 본다.  아버지는 어쩌면 나를 사육한 것이요, 닭은 양육받고 있는 것이 아닐는지요. 잠에 어린 눈으로 아버지 하는 양을 보면서 한참 서 있다가 순간 눈이 마주치고, 휙 나는 돌아서 계단을 내려왔다. 정수기 물이 필요해서 아래층 아버지 집에 기생하는 나는 그럼... 사육도 해당되지 않는 터, 이런 이런 어쩌면 사육되는 것이 때때로 속편할 수도 있겠고나 생각도 한다.

 

     루소의 <에밀>이 먼저 연상되는 것은, <에밀>의 유명세도 한몫 톡톡히 하겠지만 내가 가장 처음 읽은 책, 그리고 잠깐 경도되었던 책이 <에밀>인 탓일 것이다. 페스탈로치에 대해서도 <자녀교육법>에서는 잠시 언급되고 학회에서 두 학자 중 어느 인사에 비중을 두는지도 소개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전연 학술적이거나 고리타분하지 않다. 칼 비테 자신의 아이를 양육하면서, 그것도 평균적인(정상, 비정상을 구별하지 않고 싶다) 육체 혜택을 얻지 못한 자녀를 양육하면서 스스로 겪고 경험한 이야기를 이야기체로 서술하고 있다. 처음 아이를 배태하고, 낳고, 기르는 과정이 <자녀교육법>에는 눈에 보이듯,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해서 읽는이는 칼 비테의 곁 가까이 서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럼에 따라 혹 자녀를 키우는, 태중에 아이를 보살피는 사람 가리지 않고, 아울러 아이를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만한 책이 바로 <자녀교육법>이다.   '부모라면 한번쯤 꼭 읽어보아야 할 가정교육이론의 고전'이라고 형용하고 있지만, 이 수식언은 수정해야 한다. '사람이라면'으로 고쳐야 한다. '사람이라면 한번쯤 꼭 읽어보아야 할' 책이 <자녀교육법>이다. 

 

     <자녀교육법>에는 모두 11개의 큰 장으로 틀을 짜고 있다.  이 책에서 소개되는 내용은 여기저기서 읽어 배웠던 내용과 중복된다. 아니 중복이 아니라 강조되고 있는 내용이다. 그만큼 양육에 중요한 사실을 제시하고 있는 것, 명념해야 한다. 지능발달의 최적기(3장), 칭찬하기 중요성(11장) 등은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이다. 것뿐만이 아니라 아동 양육에서 주의사항까지 세목별로 제시함으함으로써  아이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주고 있다. 아는 것이 전부일 수는 없지만, 수시로 배우고 익히는 것이 실생활에 얼마큼의 도움이 되는지 이미 살면서 실감한다. <자녀교육법>만으로 아이를 이해하고 올바르게 양육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할지 모른다. 하지만 한 아이를 인격체로 보고 사회화를 돕는 데에 양육자가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자녀교육법>의 이점을 활용한다면 더없이 값진 선물로써 <자녀교육법>을 대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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