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탄생 - 현상과 실재, 인식과 진리, 인간과 자연에 던지는 첫 질문과 첫 깨달음의 현장
콘스탄틴 J. 밤바카스 지음, 이재영 옮김 / 알마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탄생이라... 그 처음을 말한다. <철학의 탄생>은 색인 부록까지 모두 포함하여 551쪽으로 두꺼운 전문서적에 속한다. 전반부 머리말에는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를 다루는 이유를 밝히고 그리스 철학을 개괄적으로 살피고 있다.  누구는 철학을 세상을 보는 눈이라 하고, 누구는 생각하는 힘이라고도 한다.  아마 두 정의 모두 맞을지도 모른다.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고 또 우리는 왜 살아가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에 대한 진지한 물음이 철학일지도 모른다.

 

     그리스인들의 작은 도시국가들은 동방 민족들의 거대한 국가들과는 달리 개인을 사소한 존재로 해체시키지 않았다. 이 사실만 보아도  우리는 개인들이 제각기 중요한 사회 단위로 기능할 수 있는 정체를 세우고자 한 그들의 의지가 매우 강했음을 알 수 있다. (...) 위대한 동방문화의 예술품들의 경우, 창작자는 드러나지 않는 익명의 존재로 머무른다. 이와 달리 그리스에서는 헤시오도스가 이미 삼인칭을 사용하여 자신을 <우주기원론>의 저자로 내세우는 방법을 개발했다. (...) 자신의 이름으로 당당하게 저작을 발표하게 되며, 자신의 저서에 대한 높은 책임감을 지니게 된다. 이러한 경쟁과 교류의 비옥한 토양 위에서 오래지 않아 철학과 과학의 씨가 싹트게 되는 것이다. (46쪽) 

 

     동양과 서양의 철학의 차이를 '이름'으로 요약하고 있다. 일면 타당한 주장으로 보인다. 동양 문화권에서, 적어도 나는 구태여 이름밝히기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잠시 좋았던 소풍으로 이 세상을 보려고 했던 천상병 시인이나 어린이날 돌아가신 박경리 선생님 역시 버리고 갈 것만 남아 홀가분하다고 말씀하지 않으셨던가. 이름은 필요하지만 절실하지 않다는 것, 그것이 아무래도 세상을 보는 관점의 차이, 즉 세계관의 차이가 아닐까. 생각지 못했던 '이름'에 대해서, 이 책을 읽는 첫머리에 깊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2장의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에 대한 개관,은 <철학의 탄생>을 읽는 데 일조를 한다. 숲에 들었다가 길만 잃고 만신창이가 되고 말 듯 글쓴이 역시 이 책의 난해함을 감안, 읽는이를 위해 배려한 것일지도, 또는 그러한 글쓰기가 정형화된 문화권에서 배우고 익히고 생각하는 법을 피부로 느껴 그랬는지도 모를 구성을 선뵈고 있다. 그리고 다음 장부터는 지역을 중심으로 해서 철학자를 소개하고 있다. 밀레토스의 탈레스, 밀레토스의 아낙시만드로스, 밀레토스의 아낙시메네스... 라는 식의 제목은 철학을 어려워하는 나로서는 밀레토스가 지역명이라는 것도 모르고, 우선 밀레토스가 사람 이름, 그리고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메네스 등은 철학 명제가 아닌가 혼동했다. 물론 책장이 넘어갈수록 혼란은 진창으로 빠져들었다. 어렵다. 왜 이렇게 어려워할까. 각각의 철학자에 대해서 미리 개관이 있었고, 구성 역시 읽는이가 혼란스러워 말기 위해서 동일한 배열을 사용하고 있는데도 혼자 읽기에는 정말 어려웠다.  읽어 공부하는 것보다 강의를 들어야 할 공부가 있는데 아무래도 철학은 혼자 해서는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분야가 아닌가, 몇 권 철학책을 읽어 이름만 어느 정도 눈에 익을 뿐 지난 역사 속의 철학자들이 하고자 하는 소리가 과연 무엇이고 그 내용이 지금 내게는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는 오리무중이다.

 

     <철학의 탄생>은 잘 씌어진 책임에는 여부가 없다.  하지만 철학의 기본적 소양 없이 읽어내기에는 무리다. 책 읽고 자가진단을 해본다. 학점은 D 정도. 아니다. 낙제다. 다시 한 번 읽어내야 할 책이다. 책장 높은 자리에 오래 꽂아두고는 무거운 숙제로 느껴야 할 시간이 느껴진다. <철학의 탄생>. 그렇다면 철학의 죽음 또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철학이 무엇인지 제대로 모르면서 나는 머리속에 뒤죽박죽 뒤섞인 철학자들이 불편해서 벌써부터 철학의 죽음을 생각한다. 내키지 않는 감정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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