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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갈의 아라비안 나이트
리처드 F. 버턴 지음, 김원중.이명 옮김, 마르크 샤갈 그림 / 세미콜론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샤갈의 아라비안나이트> 샤갈? 샤갈이 쓴 아라비아나이트라고 생각은 안했다. 그렇다면 이 책이 샤갈의 소유인가, 여태 내가 알아온 아라비안나이트와는 완전 다른 내용이지 않을까 하는 또 엉뚱한 생각을 했다. 절반은 들어맞고 나머지는 역시나 엉뚱한 망상이기는 했지만 이 책은 특별하다. 왜냐하면 샤갈의 그림이 삽화로 있고, 샤갈이 직접 가려뽑은 이야기 네 편이 수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샤갈이 추상파?냐,라고 물었더니 병신이란 소리가 들렸다. 입체파다,라고 덧붙여 설명해주는 친절함에 나는 참 더럽게 그림 못 그린다로 맞받아쳤다. (논점 일탈의 오류가 아닐까.. ㅡ,ㅡ ) 그림이 참... 그렇다면 나는 어떠한 그림이 최고라고 여기는가... 딱히 말할 건덕지가 없음에도 이 책에 수록된 샤갈의 그림을 폄하한단 말인가... 자꾸 자꾸 보니 익숙해지는군... 그래도 못 그렸다. 그런다. 그렇다면 수록된 네 편의 이야기는 어떨까. <아라비안나이트> 알라딘의 요술램프, 하늘을 나는 요술담요?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놈들.. 그 정도 나는 기억을 할지 모르겠다. 물론 내 기억은 책이 아닌 만화영화였다. 태어나면서부터 tv 속에서 산 것은 아니지만 또래와 이야기에는 늘 TV에서 방영한 만화가 화제로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톰소여의 모험, 빨강머리 앤, 개구리소년, 은하철도 999 아 생각만해도 그 시절 그 화려한 영상물에 현혹되어 침 질질 흘리던 기억(물론 나는 침은 흘리지 않았다, 넋만 옴쏙 빠져나가 불그락푸르락 낯빛 바뀌는 아버지를 눈치 못채고 앉았다가 쫓겨나기 일쑤였다) 그 혼재된 기억 속에 아라비안나이트가 있었다는 것, 분명하다.
<샤갈의 아라비안나이트>에는 이야기 네 편이 수록되어 있다. 즉, <흑단마 >, <바다의여인 줄나르와 아들 바드르 바심왕>, <어부 압둘라와 인어 압둘라>, <카마르 알 자만과 보석상의 아내>. 마법과 환상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큰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기이한, 신비한 세계, 하지만 있을 법한 세계를 눈앞에 그려보이면서 <아라비안나이트>는 몰입도를 높이고 있다. 세에라자데가 목숨을 내놓고 밤마다 이야기를 풀어내며 근근이 목숨을 이어가던 것이 <아라비안나이트>이라는 것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폭군의 손아귀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야기를 고안해내고 끊어지지 않는 많은 이야기, 재미와 흥미가 있는 이야기에는 역시 '마법'이 최적절일 성싶다. 그러한 당위로 '마법', 혹은 마법의 소도구가 <아라비안나이트>에서 종종 발견되고, 우리는 이야기 속에서 새로운 도구가 등장하기를 은근히 기대하고 있다. 줄거리 있는 이야기에 사람은 쉽게 빠져들고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야기 속 누군가가 나와 비슷하다면, 이야기 속 그의 모든 일이 내 것인양 느껴지고 그의 귀추가 궁금해지게 마련이다. 처음 <아라비안나이트>는 인격장애를 지닌 폭군에게서 벗어나기 위한 목숨을 건 스토리텔링(이야기하기)였다. 폭군이 듣고 금방 내 이야기다 알아챈다면 몹쓸 것, 욱하는 성질에 세에라자데는 목이 달아갔을 것이다. <아라비안나이트>는 폭군을 구슬리는 이야기이다. 이야기의 힘은 실로 막강하다.
샤갈이 '오래된 사랑'으로 네 편을 다시 엮었지만 기존 이야기의 틀을 훼손하지 않은 듯, 세에라자데라는 화자를 그대로 살리고 있다. 그리고 이야기의 구성 역시 야화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즉 샤갈은 삽화와 이야기 배치에만 관여했을 뿐 <아라비안나이트>를 그대로 살리고 있는 것이다. 네 편의 이야기, 누군가에는 부족하다 싶을지도 모를 테지만 '사랑'이라는 주제로 천천히 읽어본다면 투박한? 샤갈의 삽화에서도 이야기를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샤갈이 그린 그림은 크레파스로 그렸다가 맘에 안 들어 뭉개버린 스케치북 같다. 그런데도 정겨움이, 포근함이, 기묘한 이 느낌.... 역시 큰 화가 샤갈이라 싶다. 그림은 모르지만, 그가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을까는 어렴풋이 느껴진다. 보편성에서 기인하는 이음줄일 것이다. 그림은 못 그렸지만 잘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