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시
신경림 외 지음 / 작가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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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아침  눈을 떠보니 나는 불행해져 있었다.

     (고형렬 <파산자>/ 14쪽)


 

     2008년 <오늘의 시>는 불행을 다루고 있고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으련만 나는 달리 읽는다.  아니 이 책은 시선집이기 때문에 첫 부분에 실린 시가 여느 시집마냥 큰 의미를 두고 민감하게 읽어야 할 이유는 전연 없다.  그냥 눈 가는 대로, 이 시인이 어떠한 마음을 이 시를 쓰겠구나 어림짐작으로도 충분하다.  아니 아니다.  그냥 내가 어떻게 읽고 받아들이느냐,로 충분하다.  당연히 충분하다.  글을 읽어가는 마음은 넉넉한 그늘을 얻기 위함이라면 그렇게 읽어도 무방하다.  삶과 문학의 우위를 두고 왈가왈부 부단한 논쟁은 아무래도 내게는 썩 소용이 없다.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제도권 밖의 삶은 이래서 때때로 편안하기도 하다.

 

     고형렬님의 시 <파산자>는 물론 내가 읽은 것처럼 읽히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내 멋대로 읽고 느끼기를 즐긴다.  2008년 <오늘의 시>에서 나는 얼마나 얻었느냐, 이해했느냐보다 얼마나 여유로웠던가에 초점을 둔다.  살기 위해 죽음에 관심을 두고 삶을 풀어나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예 죽음은 시야에서 제쳐두고 행동에만 집중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일상성에 초점을 둔다.  그래야만 근거없는 절망에서 허우적대지 않기 때문이다.  어디에서 내가 왔고, 또 어디로 가고 있으며 장기알처럼 누군가가 나를 어느 판 위에 올려놓았을지 모른다는 생각은 접었다.  내가 불편하기 때문이다.

 





저는 거리를 걸어가다가 가위눌린 적이 있습니다.

질주하는 표범도 가위에 눌릴까요?

달리는 타조는?

우리는 전속력으로

정지했다.

(이장욱 <전속력>/ 133쪽)


 

     <오늘의 시>는 시 끄트머리에 '시작노트'를 두고 있다.  시집 후미에 부연으로 실린 해설과는 다른 느낌이다. 해설이 시를 옭아매듯 때때로 없으니만 못한 때가 있는데 시작노트는 시인이 직접 한 목소리가 담겨 있기 때문에 오히려 시를 더 풍성하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  

 





     이 시를 쓸 무렵, 나는 세계에 대한 감성적 인식과 지적 인식이 하나가 되는 터전에서 이루어지는 '시적 인식'을 생각하고 있었다. (...) 나는 외롭지 않았던 것이다. (허만하 <자전>의 시작노트/ 179쪽)

 


     어느 시인은 정말로 구체적 일상만을 생각하기도 하고, 또 어느 시인은 허만하 시인처럼 일반 대중에게는 드물 만한 사고에 몰두하기도 한다는 것을 '시작노트'는 보여주고 있다.  시 <자전>을 통해서 시인이 하고자 한 말뜻을 정확히 가능하기는 어렵다.  나는 어렵다.  하지만 무엇을 느낄 수 있는가는 내게도 일상적 경험이 남 못지 않게 풍부하다는 것을 인식한 뒤에야 비로소 가능했다.  다르게 다르게 쓰는 것이 시적 표현이라면 다르게 다르게 지극히 개인적으로 읽는 것도 시일 수 있다. 

 





     이시영 시인의 시집을 읽으면 우리의 의식이 눈부신 섬광에 문득 노출되는듯한 느낌이 들 때가 많다.

(김경복 <포착과 응결>, 이시영 시집 <우리의 죽은 자들을 위해>/ 해설/ 274쪽)


 

     아마 나는 시집에 실린 시편 그 자체로는 김경복 씨와 같은 감상에 다다르지는 못할지도 모른다. 아니 애초에 그러한 감상을 바라지 않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의 시>는 다양한 시인들의 시 한 편을 수록하고 말미에는 비평을 싣고 있다.  시집 비평, 해설을 읽으면서 참으로 읽는이와 전문적 분석가의 시선이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한데 누가 더 가찹게 시를 읽고 있는지, 누가 더 시를 시답게 읽고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비판적 분석가의 손을 들어주기는 힘들 것 같다.

 

     2008년에 엮인 <오늘의 시>는 현재 우리 문단에, 그것도 시인들의 활동을 개괄적으로 맛볼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그리고 시 자체에만 그치지 않고 시인의 목소리, 비평가들의 목소리, 정연된 목소리를 짧게나마 들음으로써 '요즘'을 얼핏 파악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문제집 모범답안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확신 서지 않는 생각을 해 본다.  시는 어려운 것이 아니다.  문학은 그처럼 난해한 것이 아니다.  다만 그렇게 주입되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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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두력 - 지식에 의존하지 않는 문제해결 능력
호소야 이사오 지음, 홍성민 옮김 / 이레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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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두력>은 실용서다.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법을 구체적으로 기술적인 측면에 초점을 두고 기술하고 있다.  얼마나 효율적인가는 아무래도 읽는이의 책임일 것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어떠한 이득을 얻었는지, 지금 당장 장담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색다른 사고의 기술을 만난 것, 그것만으로도 우선은 신선하다.  배워 안다는 것도 좋지만 몸에 익어 좋은 습관이 된다는 것, 해서 내 삶이 좀 더 수월해졌고 만족감 또한 부픗하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실생활에 지두력을 접목시키지는 못하고 있다.  하지만 지두력에 근접한 사고 방식을 이미 내가 써오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이 <지두력>을 만난 동안이었다.

 

     우리는 일상에서 얼마나 자신의 머리로 생각할까? (머리말/ 8쪽)

 

     <지두력>은 묻는다.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우리가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생각하는지, 그 생각에 맞춰서 우리가 행동하는지, 그렇게 한 행동이 과연 목적에 가까웠는지를 따져묻고 있다.  과연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만족은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까지 묻고 있다.  그렇다면 <지두력>을 굳이 읽을 이유가 없고, 이 책에 아무런 필요성 또한 느끼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렇지 못해서 <지두력>을 붙잡았다.

 

      지두력의 본질은 '결론부터', '전체로', '단순하게' 생각하는 사고회로이다. 지두력이 높은 사람은 다양한 분야에서 수집한 정보와 기존의 지식, 그리고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환경에 적응하며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갈 수 있다. 미래에 적합한 인재에게 필요한 지적 능력이 바로 이 지두력이다.

(1장. 미래는 지두력으로 결정된다)

 

     <지두력>은 사고의 방식을 구조화해서 설명하고 있다.  제1장은 지두력이 절실한 이유, 2장(~4장)은 지두력에서 사용하는 새로운 사고법 페르미 추정법,  5장은 '결론부터 생각하는' 가설 사고력,  6장은 '전체로 생각하는' 프레임워크 사고력, 7장은 '단순하게 생각하는' 추상화 사고력.  그리고 8장과 9장은 지두력을 보완하는 방법 등으로 설명하고 있다.  페르미 추정이라는 생소한 사고법에 대한 설명이 일본 국토에 있는 전봇대는 몇 개인가, 파악하는 문제를 예로 들고 있다.  혹시 수리적인 문제를 병적으로 싫어한다면 머리에 쥐가 내릴 수도 있지만 전봇대 개수를 풀어나가는 방법은 재미있다. 그리고 <지두력> 마지막 장에서는 단순히 머리 쓰는 기술에 그칠 것이 아니라 본디 이 책의 목적이 무엇인지 환기시키고 있다. 제목에서 목적이 뚜렷이 드러난다.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감성적으로 행동한다."

 

     새로운 사고방법, 지두력.  왜 지두력이 필요한지에 대한 설명은 <지두력>은 충분히 설득력 있는 서술을 풀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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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달인 - 말 한마디로 처음 만난 사람도 끌리게 하는
도미타 다카시 지음, 박진희 옮김 / 비전비엔피(비전코리아,애플북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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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심전심을 믿는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믿은 적이 있었다.  한데 지금은 왜 믿지 않는가?  모든 존재는 지금 내가 느껴 알지 못할 뿐이지 다 그만한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내 마음 나도 모른다.  하지만 말로 글로 옮겨놓고 보면 명확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고 난 뒤에야 비로소 내가 하고자 했던 바가 무엇이었는지 뒤늦게 깨닫고 아쉬워하는 적이 참으로 많다.  말이 존재하는 이유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표현의 달인>은 실용서다.  직접 배우고 학습을 통해서 익히고, 자주 사용해 습관으로 굳혀 응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문장 하나하나는 나에게 당장 쓰일 만한 것도 있고 경원한 것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숙지해야 할 성질이라는 것을 실감한다.  각각의 문장, 에시문은 알지만 안다고 맹신하고 지낸 것들이 많다.  하지만 실생활에서는 전혀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태반이다.  모두 7개의 장으로 구성된 <표현의 달인>은 쉽게 읽히는 책이다.  하지만 쉽지가 않다.  그 이유를 집요하게 파고들어야 비로소 <표현의 달인>을 제대로 읽고 써먹는 것이라 하겠다.

 

     잘된 말 한마디의 표현이 성공과 행복을 결정한다 (머리글에서)

 

     말의 필요성에 대한 속담은 참으로 많다.  뭐가 있나 곰곰이 생각하면 늘상 먼저 떠오르는 녀석은 "천냥 빚 갚는 말이다" 실용, 실제 쓰일 만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빚 갚을 만한 말을 나는 얼마나 많이 알고 있을까.  30 평생에 느지막히 배우고 있는 말들에서도 나는 아직 빚 갚을 만한 말재주를 얻지는 못했다.  절실히 구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여태 살면서 이심전심을 필두로 고지식하게 밀고 왔던 생활은 아무래도 생존방식이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나는 사람관계가 썩 매끄럽지 못했지만 질기게 고집해왔다. 이심전심은 여전히 믿는다.  하지만 적재적소에 다듬은 듯 잘 맞는 말이란 분명히 존재하고, 그 말은 당위성을 지니고 있다.  <표현의 달인>에서 소개하고 있는 예문 하나하나는 살펴 배울 만한 내용들이다.  테크닉, 기술이다.  해서 나는 이 책을 실용서로 분류한다.  이러한 기술을 배우는 이유는 원만한 관계를 지향하는 데에 있다.  '잘된 말 한마디'를 위함은 곧 '나'를 위함이다. 세상의 중심과 끝이 '나'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고 인격적으로 대하려는 자세가 <표현의 달인>의 기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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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기행 1 펭귄클래식 17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홍성광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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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서, 기행문, 생활문의 묘미는 글쓴이의 침법 범위가 여느 문학 유형보다 더 가깝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글쓴이의 생활을 여과없이 드러나는 글, 우리는 책을 통해서 생활을 발견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여행기를 읽고 나면, 산문집을 읽고 나면 글쓴이의 다른 글을 더 찾아보기를 갈망하는가 보다. 처음 본격적으로 책읽기를 시작했던 것도 산문집을 통해서였다. 박경리 선생님의 책도 그랬고, 지금은 한창 박완서 님의 책을 그것도 산문집을 중점으로 읽어가고 있다. 그 선상에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은 낯설지만 반가운 내용이 가득 들어차 있다. 

 

     나는 책을 즐기지 않는다. 국내문학에 잠시 관심 있었던 중학교 3학년 시절, 토지를 집어들고 파고들었던 고등학교 3학년. 그러니까 책은 도피처였다. 해서 문학적 소양은 지극히 편파적이고 협소했다. 어울림이 좋다. 동류의 사람들과 어울리며, 나보다 더 깊이 있는 독서를 하는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서 나의 세계는 어느덧 넓어졌고 내 눈은 지독하게 고상해져 있었다. 차츰 세계 문학도 두어 권 살피며 알 만한 글쓴이의 책을 통독하게 된 것도 어울림 덕분이다.  괴테라 하면 베르테르가 반사적으로 튀어나옴에도 불구하고 나는 괴테의 대표작을 최근에야 읽었다.  그러니까 2007년에 읽었던 것이다.  괴테의 산문집, 이탈리아 기행은 좀더 괴테에게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 <이탈리아 기행>에는 산문의 특성상 그의 일상적인 삶, 사람을 보는 눈, 가치관 들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9월 11일 : 이제 언어가 바뀌는 지역인 로베레토에 도착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북쪽 지역에서는 독일어와 이탈리아어를 계속 왔다갔다 했다. 이제 처음으로 토박이 이탈리아어를 쓰는 마부를 만나게 되었다. 여관 주인이 독일어를 못하니 드디어 나의 말재주를 시험해봐야 한다. 지금부터는 좋아하는 언어가 살아나서 사용하는 언어가 되니 얼마나 기쁜 일인가. (1권 36쪽)

 

     문화는 언어를 생명으로 한다. 책을 읽으면서 갖게 된 생각이다. 언어의 벽은 참으로 크다. '그'가 내게로 들어오는 것은 대화를 통해서이다. 말 한마디 살갑게 건네는 순간 상대를 존중하게 되는 초석을 닦게 되는 것이다. 말이 분쟁을 만들기도 하지만 분명 말이 있어서 우리는 기존의 세계를 더 가치 있게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괴테는 떠난 여행의 목적이 무엇인지 행간에 분명이 밝히고 있다. 그는 분명 분방한 사람일 것이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처럼 그는 늘 떠나는 사람인 듯 각인된다. 그러나 소설에서와는 달리 이 기행기에서 그의 모습은 방랑이 아니라 여행이다. 방황이 아니라 목적이 있는 여정이라는 것을 여실히 느끼게 된다.

 

      내가 볼 때 이탈리아 사람들은 꽤 선량한 민족 같다. 내가 항상 접하게 되고 또 늘 그렇게 하기 때문에, 지금 보고 있고 볼 수 있는 것처럼 나는 아이들과 보통 사람들을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 이들의 몸매와 얼굴은 정말로 아름답다!(1권 76쪽)

 

     <이탈리아 기행>은 요일별로 구성되어 있다.  처음 읽는 책이기 때문에 2권의 분량의 기행문은 자주 허방에 빠지곤 했다.  당연지사일 것이다.  읽는 동안 자주 딴 곳을 살피고 딴청을 부리는 데에 익숙한 나는 <이탈리아 기행>을 읽는 동안에도 일관된 독서방식을 취했다.  내가 이탈리아 갈 것도 아닌데 왜 읽어야 하나, 괴테의 여행은 참으로 사치스럽구나. 한데 이 책을 읽는 목적과는 동떨어진 생각이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움찔했다.  이 책을 읽는 이유는 '생활의 방식'을 엿보고자 하는 지극히 실리적인 측면이 아니었던가.  하니 나는 이 책을 통해서 목적한 바를 달성한 셈이다.  삶을 보는, 다른 사람을 보는 괴테의 시선은 충분히 배울 만하다.  홍성광 씨의 매끄러운 번역과 읽기 편한 행간이 <이탈리아 기행>을 편안한 여행기로 읽게 도와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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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슬머리 내 짝꿍 - 저학년 즐거운 책 읽기 01
조성자 글, 남궁선하 그림 / 대교출판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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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곱슬머리는 내 짝꿍>은 나를 자극한다.  초등학교 4학년 나는 착한 아이였지만 지독스레 짝꿍이 싫었다.  지독한 냄새가 나는 짝꿍이었다.  학교 가기가 정말 싫었다.  공부 못한다고 매일 벌서기 일쑤, 선생이 참 싫었다.  하나하나 친절하게 가르쳐주지 않고는 무조건 못한다 나무라기 일쑤, 하기야 나는 워낙에 부적응 아동이었기 때문에 선생 눈밖에 나기에 충분했다.  구구단을 초등학교 4학년 때 겨우 마쳤고, 역시나 맞춤법은 늘 엉망이었다.  괴발개발 써놓은 글은 아예 그림이라 하는 편이 더 나았다. 한수 더 떠서 짝꿍은 일년 내도록 한 녀석이었는데 녀석 귀밑에는 지우개 똥 같은 때가 일관성을 유지했다.  힘들었다.  짝꿍이 입을 열면 순간 흡, 숨을 참아야 했고 숨을 참으면서 대답을 했으니 하굣길에 머리가 지끈지끈, 당연한 노릇이다.  그 녀서ㄱ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지냈다.  가까워질 수 없는 운명이었다.

 

    <곱슬머리 내 짝꿍>은 나를 당혹케 한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줄곧 그 친구가 떠올랐다.  지독한 냄새 때문에 생명에 위협을 느꼈던 나는 당시 매우 몸을 사렸다.  그 부자연스럽던 내 행동이 눈앞에 암암하다.  <곱슬머리 내 짝꿍>을 읽으면서 자식, 그래도  '박소미'는 적어도 냄새는 안 난다, 하면서 민성이 괜한 엄살이다, 퉁을 놓고는 했다.  아무래도 이건 글쓴이의 본래 의도와는 무관한 책읽기가 아니겠는가.  당혹하다.  민성이(주인공)는 겉만 번지르르한 윤지와 짝꿍이 되고 싶어 속으로 애를 태웠다.  본능이다.  이해는 한다.  한데 현실은 민성이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한다.  키크기로 짝꿍을 앉히는 선생의 방식이  못마땅하다.  얼마나 무책임한 학습지도인가.  아이들의 욕구를 묵살한 선생의 교육 방식에 울화가 치민다.  그러니 민성이의 부도덕한 행동은 선생에게 책임을 따져 물어야 할 것이다.   선생의 무책임한 행동이 소미는 물론이거니와 민성이, 윤지에게까지 엄청난 고통을 안겨준 결과가 되고 말았다.  민성이는 소미에게 신체적 학대, 정서적 학대를 행하는 가해자로 남겨지게 하고, 또 윤지보다 소미가 마음이 더 예쁘다는 말로 윤지에게도 상처를 안기는 행동을 하게 만들었다.  소미는 민성이 말과 행동으로 엄청난 가슴앓이를 하게 되었고, 윤지 역시 괴롭다.  나도 매우 괴로웠다.

 

     <곱슬머리 내 짝꿍>가 정말 좋은 이야기이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은 자유다.  하지만 말과 몸짓, 행동으로 마음이 표현되는 그 시점에 우리에게는 응당의 책임이 과중하게 지어진다.  그것이 현실이다.  가려 읽고 가려 행동하는 것은 결국 우리의 선택이다.  이 좋은 이야깃거리를 어떻게 읽을 것이고, 어떠한 감동, 느낌을 경험하고, 더나아가 현재 '나'에게 어떻게 접목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나의 선택에 달려 있다.  나는 여전히 냄새나는 짝꿍을 잊지 못한다.  그 아이의 이름은 잊히고 말았지만, 그 아이의 냄새는 지독했다.  초등학교 4학년이 여전히 악몽으로만 기억되는 이유는  짝꿍에게 '니 몸에서 냄새가 난다, 나는 너무 힘들다'는 말을 하지 못한 내게 문제가 있었다.  당시 나는 몸으로 그 친구를 거부했을 것이고, 그 친구 역시 내가 자신을 싫어하고 애써 멀리하려 했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곱슬머리 내 짝꿍>은 그 당시의 나를 수면으로 끌어올리는 힘을 발휘하고 있다.  매우 현실적인 이야기이고, 감정 없이 직면하기 어려운 기억을 건드리고 있다.  누군가에게 존재 자체가 거부당한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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