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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근영은 위험해 ㅣ 회사 3부작
임성순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1월
평점 :
품절
시뮬라크르란 진실을 감추는 것이 아니다. 진실이야말로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숨긴다. 시뮬라크르는 참된 것이다. -전도서 -4p-
시뮬라크르. 차례를 소개하기도 전에 등장하는 시뮬라크르라는 단어가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검색해보니 대략 이런 뜻이었다. 모델과 같아지는 것이 아니라 모델을 뛰어넘어 새로운 자신의 공간을 창조해가는 역동성과 자기
주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단순한 흉내와 가짜와는 구별되는 것.
실제를 보고 만들었으나 실제와는 다른 새로운 것으로 생각해야 할까?
이 소설에 등장하는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학생이자, 연예인 문근영을 판에 박은 듯이 닮은 문근영이 바로 그 시뮬라크르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작가는 문근영이 그 문근영이 아니라고 또 한번 언급한다.
이 소설은 블랙코미디 냄새가 짙게 코끝을 간질거린다. 넋 놓고 있자니
간지러움을 참을 수 없어 박장대소가 터져 나온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그 검은 곳을 뚫어지게 응시해보면 ‘이렇게 해야만 이 모든 현상이
설명되는구나.’ 라는 어찌할 수 없는 성질의 불가항력이 불러오는 공허한 감정이 폐부를 가득 채운다.
그 블랙코미디의 주성분은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각종 신조어들이다.
<문근영은 위험해>에는 총 209가지의 신조어들이 등장한다. 노란색의 다양한 형태를 가진 각주에 감동하면서, 나는 209단어 중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라는 궁금증에 색깔을 덧입힌다.
<문근영은 위험해>의 이 단어들은 젊은 감성을 자극한다.
사전적 표기법을 패러디 하고 있는 불필요하게 자세한 노란 각주의 설명은 내가 이미 알고 있는 단어들을 대할 때마다, 마치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을 받고 있는 듯한 심리적인 안정감을 불러일으킨다.
한편, <문근영은 위험해>는 대한민국이 낳은 잉여의
산물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손을 잡고 만들어낸 잉여의 개념은 소설 속 사회에 올바르게 적응하지 못한 걸스카우트 멤버. 혜영, 승희, 성순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들은 책의 뒤표지에 적힌 대로 은둔형 오타쿠, 찌질한 스토커, 조루 음모론자다. 이들은 넷 상에 뿌려지는 단어들을
정상이라는 도마 위에 올려놓는 대한민국 젊은이들의 자화상이다.
기승전병? 아니 기승병병의 에베레스트 산으로 가는 구조를 띄고 있는
이 소설은 스토리는 병맛으로 흘러가지만, 세상의 모습을 풍자적으로 드러내는 소설이었다. 그래서 인간과 사회와 미디어들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중독성 레알 갑의 SF 판타지, 미스터리, 서스펙트의 소설이었다.
문근영이 무엇인지 밝히면 썩은떡밥을 제공해버려 재미가 없어질 것
같으므로 입이 간질거리지만 참는다. 대신 그 속에 숨겨진 촌철살인의 명문장을 몇가지 옮겨본다. 힌트는 매트릭스다.
“하루 열다섯 시간씩 학교에 잡아놓는 것도 교육의 일부였고,
아이들에게 모두가 서로의 적이라고, 등수에서 밀리면 패배자라고 가르쳐 준 것도 교육의 일부였다. 또한, 다른 것은 틀린 것이라 가르쳐 준 것도
교육의 일부였다.” -79p-
“물론 고등학생 정도 되면 밝은 앞날을 위해서 시험 시간에 스스로
믿는 것과 답안지에 적어야 하는 답이 다르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80p-
“사람이 성실해야 한다는 뜻은 추가 시급은 못 주겠지만 남아서
재고파악을 하라는 소리였고, 뭐든지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는 말의 뜻은 유통기한이 지난 삼각김밥을 먹어도 좋으니 대신 오늘 30분 일찍 와서
청소한 건 급료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소리였다. 우리는 한가족이라는 말의 뜻은 이번 명절에도 나와서 근무하라는 소리였으며, 사람이 눈앞에 이익에
휘둘려서는 성공하지 못한다는 말은 이번에도 시급 인상은 없다는 소리였다.” -96p-
“정부라는 존재는 언 발에 오줌 누기와 발등에 떨어진 불 끄기 사이의
어딘가에 있었다. 그들은 국가고시를 패스한 재원들이었다. 엘리트 코스에 있으면 있을수록, 젊으면 젊을수록, 그들은 열심히 일했다. 다만 그
안에는 개개인의 노력을 순식간에 무로 화하는 놀라운 시스템이 있었다. 모두의 노력과 시도는 서로 충돌하고 상충하며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
같은 상태로 변했다. 마치 양자적 요동상태라 부르는 현상과 완벽히 일치했다. 그런 시스템 속에 있으면 똑똑하건 멍청하건 빠르건 늦건 간에 배를
바닥에 붙인 채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124p-
“한 번만 말할 거니까 똑똑히 들어. 우리가 한국 금융계에 새로운
고도의 금융기술을 보여줄 거거든. 완전 수익이 747 점보제트기처럼 날아갈거야. 그녀가 제시하는 황금빛 청사진에 작가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마치
코스피가 5천 포인트를 찍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164p-
“시스템을 붕괴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 뭔지 알아? 그건 혁명이
아니라 시스템 자체를 가속화하는 거야. 자동차 망가뜨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브레이크를 고장 내는 거지. 공산주의야말로 자본주의의 브레이크였던
셈이야.” -178p-
“상식적인 측면에서 생각해보자고. 자신이 대통령이 되려고 어떤
미치광이가 한 도시에 사람들을 고립시켜 쏴죽이라는 명령을 내리고 군인들은 상관이란 이유로 그 말도 안 되는 명령을 고스란히 수행해. 그렇게
대통령이 되어 수백 명의 죽음에 직간접적으로 책임이 있는 사람이 사형 선고까지 받았다가 풀려나. 29만 원밖에 없다고 큰소리치며 떵떵거리며 사는
게 상식적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하니?” -191p-
[네이버 북카페 서평이벤트를
통해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하였음을 알립니다.]